영릉

우리 조상들은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드는 법이 없이 깊은 생각과 뜻을 가지고 움직였다. 연지를 지나면 금천에서 맑게 흐르는 냇물에 모든 나쁜 기운을 씻어버리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영릉 (여주 세종대왕릉)

청명한 가을 햇살을 가르며 영릉으로 향했다.

평일이지만 주차장엔 벌써 많은 차들이 쉬고 있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매월 마지막 수요일이라서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입구에는 국적을 알 수 없는 건물이 가로막고 서서 매표소와 커피점, 전시관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왕이면 근사한 전통 한옥으로 지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조그만 생각이 바뀌어 큰 것을 얻을 수 있는데, 건물을 짓기 전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이 부족한 것 같다.

물론 따지자면 거슬러 올라가서 70년대에도 수많은 혼란을 겪은 곳이다. 그 당시에는 문화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아서 권력자의 치적에 더 집중하는 시대였다. 그동안 많이 복원이 되었지만 아름드리 나무까지는 원상복구가 어렵다. 군데군데 큰 소나무를 다시 심고 지주대를 세워 놓았지만 울창하게 우거지는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능제의 원칙에 따라 진입공간, 제향공간, 능침공간으로 나누는데 이제 슬슬 들어가 보자. 울창한 송림 사이를 걸어간다는 최면 속으로 가다보면 새로 지은 산뜻한 한옥의 재실이 보인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옛날 재실이 낡아 보이긴 하지만 훨씬 정감이 더 간다.
좀 더 가면 연못이 나온다. 반듯한 네모로 된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이 떠 있다. 바로 방지원도이다. 동양사상의 천원지방을 결합한 것으로 음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자손이 번성하기를 기원한다. 이런 것을 통해서 정신적인 쇄뇌의 교육을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무엇 하나 허투루 만드는 법이 없이 깊은 생각과 뜻을 가지고 움직였다. 연지를 지나면 금천에서 맑게 흐르는 냇물에 모든 나쁜 기운을 씻어버리고 마음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경건하게 금천교를 건너면 된다.

그래도 혹시 아직까지 사악한 기운이 들어오지 말라고 홍살문이 500년 넘게 버티고 서 있다. 그 옆에는 판위를 깔아 놓았다. 임금이 그 자리에서 네 번 크게 절을 올리고 참도로 걸어간다. 참도는 혼령이 가는 神道신도는 조금 높게하고, 임금이 걸어가는 御道어도는 낮게 하여 구분을 하였다.

그 길에는 매끈하고 반듯하게 다듬지 않은 박석을 깔아 놓았다. 경복궁이나 종묘에도 반드시 박석이 있다. 우리나라는 원래 잔디로 조경하는 풍습이 없다. 박석을 깔아서 걸음걸이 조차도 잘 살피고 조심히 하라는 조고각하의 의미이다. 그래서 정자각으로 도착하면 동입서출의 원칙에 따라 동쪽 계단으로 오른다. 임금이 선왕의 혼령을 모시고 제향을 올린다. 혼령은 신교를 건너서 신로를 따라 능침에 자리한다. 그리고 임금은 서쪽계단으로 내려온다. 참도 좌우에는 수라간과 수복방이 있고 정자각 옆에 비각이 있다. 정자각은 丁자형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인 명칭이다. 임금이 제향하는 공간이 장방형으로 되었는데 가운데 부분에 홍살문쪽으로 익랑을 달아서 신하들이 제향하는 공간을 만들어서 건물이 丁자 모양으로 생기게 된 것이다.

영능은 세종의 비 소헌왕후와 합장릉이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옮겨왔다.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가 19세에 요절하고 그다음으로 책봉된 해양대군(예종)의 부인도 산후병으로 17세에 세상을 떠났다. 세자빈은 바로 한명회의 딸이다.

세조는 그런 어수선한 사태를 선대의 능침에 비유해서 각별히 신경을 곤두세웠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를 이은 예종이 옮기게 되었다. 18년만에 대모산의 영릉을 막상 열어보았지만 우려한대로 나쁜 자리는 아니었다. 또한 여흥은 궁궐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고 신하들의 반대가 많았다. 결국은 여흥으로 지금의 자리에 천장을 하고 여흥을 여주로 바꾸었다. 세조의 뜻에 따라 석곽을 쓰지 않고 회격(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한 것)으로 만들었다. 난간석도 간소화 되고 혼유석 아래 고석도 5개에서 4개로 줄였다. 따라서 무인석 문인석도 왜소하게 되었다. 합장임을 알 수 있는 혼유석이 2개로 되어있다.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지 않고 문자로 표현하였다.
멀리 북성산을 안산으로 안고 포근하게 잠이 들었다. 청룡과 백호도 가을볕에 나른하게 졸고 있는 듯하다.


        사진 정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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