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 전 신라인의 생생한 몸짓과 표정 토우(土偶)에 담긴 희로애락 인형의 꿈

땅속에 묻혀 있던 신라 토우(土偶)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6년 5월.

1500년 전 신라인의 생생한 몸짓과 표정 토우(土偶)에 담긴 희로애락 인형의 꿈



땅속에 묻혀 있던 신라 토우(土偶)가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26년 5월. 그때 천년고도 경주의 황남동 대형 신라 고분 사이에선 인부들이 경동선(慶東線) 경주역 확장공사에 필요한 흙을 채취하고 있었다. 고분 주변의 흙을 파서 약 1km 떨어진 경주역 현장으로 옮기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소형 고분[石槨墓, 돌덧널무덤]들이 확인됐고 고분 내부에서 토기와 토우가 쏟아져 나왔다. 신고를 접수한 조선총독부는 곧바로 발굴 조사에 들어갔다. 토우는 대부분 토기에 붙어 있는 상태였다. 특히 굽다리 접시[高杯] 뚜껑의 손잡이 주위에 많이 붙어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이들 토우를 1926년 7월 개관한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국립경주박물관의 전신)에서 전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려진 신라의 자그마한 흙인형 토우. 이후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 경주 황남동과 용강동 지역의 고분과 월성로 고분군, 손곡리 물천동 생산유적, 쪽샘지구 고분에서도 지속적으로 토우가 발굴되었다.

토우는 흙으로 만든 인형을 말한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보면 동물이나 생활도구 등을 본떠 만든 것도 토우의 범주에 들어간다. 신라 토우는 대부분 5, 6세기에 만들어졌다. 크기는 2~10cm. 신라 토우는 토기에 장식물로 붙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물론 독립적으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인물을 표현한 토우에는 신라인의 일상이 다채롭고 흥미롭게 표현되어 있다. 상투 튼 남자, 저고리를 입은 여자, 사냥하거나 고기 잡는 사람, 춤을 추는 사람, 짐을 나르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곡예를 하는 사람, 물동이를 옮기는 사람, 지팡이를 짚고 있는 사람, 가면을 쓴 사람 등이다.

인물을 형상화한 토우를 보면 그 다채로움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여타의 유물이나 기록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라인의 일상적 모습이다. 5cm 내외의 인형에 담긴 이 일상의 모습엔 생동감이 넘친다. 신라인의 몸짓과 표정의 특징을 잘 짚어내 표현했기 때문이다. 항아리를 지게에 지고 있는 사람의 토우, 봇짐을 메고 있는 사람의 토우를 보면 그야말로 당시 경주를 오가면서 만나는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모습의 토우를 보면 신라 사람들의 흥과 멋이 절로 느껴진다.

일상의 몸짓이 다양하다 보니 토우의 얼굴 표정 또한 다채롭다. 단순하지만 생생하게 다가온다. 할아버지 얼굴 토우를 보자. 쓱쓱 주무른 흙덩이에 눈과 입을 슬쩍 파놓고 수염 몇 가닥 그어 노인의 얼굴을 완성했다. 단순한 형태의 토우지만 노인의 푸근한 얼굴이 그대로 살아서 전해온다. 노래하는 토우, 연주하는 토우도 흥겹고 익살맞은 감정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금령총에서 출토된 배 모양 토기에 붙어 있는 남성 토우는 쓱 내민 혓바닥 하나로 노젓기의 피곤함을 보여준다.

몸짓과 표정의 표현 방식도 매력적이다.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표정과 내면은 어떤지 등을 최소한의 표현으로 절묘하게 드러냈다. 얼굴만으로는 성별과 표현이 잘 구별되지 않지만 신체적 특징을 과장해 분명한 구분을 두고 있다. 얼굴에 표정이 없다 해도 상체를 쪼그려 엎드린 모습이나 머리를 푹 숙인 자세만으로 주인공이 슬픔에 빠져 통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표현 덕분에 자그마한 신라 토우에는 시종 사실적인 생명력이 넘친다.

   00.국보 토우장식 장경호 2점 중 계림로 30호 무덤 출토 유물

   01.국보 토우장식 장경호 2점 중 노동동 11호 북쪽 무덤 출토 유물

국립경주박물관에는 국보로 지정된 토우 장식 항아리가 2점 있다(국보 토우장식 장경호). 말 그대로 토우가 붙어 있는 항아리로, 모두 완형으로 발굴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경주 노동동에서 출토된 것으로, 항아리 목 부분에는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지팡이를 든 사람, 성기가 강조된 사람이 빙 둘러가며 장식되어 있다. 특히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이 3쌍이나 붙어 있어 무척이나 이채롭다. 개구리와 뱀의 만남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다른 하나는 경주 계림로 30호분에서 출토된 것으로 알려진 토기이다. 높이 34cm인 이 항아리의 목 부분엔 5cm 내외의 토우가 여러 점 붙어 있다. 가야금을 타고 있는 배부른 임신부, 온몸으로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남녀, 성기가 과장된 남성, 개구리 뒷다리를 물고 있는 뱀 그리고 새, 개구리, 물고기, 거북(또는 자라) 모습의 토우가 목 주변을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두 개의 토기에 붙어 있는 토우 가운데 사람들의 눈을 가장 사로잡는 것은 단연 사랑을 나누는 남녀 토우다. 한 여성은 엉덩이를 내민 채 엎드려 있고 그 뒤로 한 남성(머리와 오른팔이 부서져 있다)이 과장된 성기를 내밀며 다가가고 있다. 적나라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보는 이의 낯을 뜨겁게 하는데, 막상 그 주인공인 여성은 고개를 돌려 우리를 바라보며 히죽 웃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이다. 충격적이라고 해야 할까,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까


    어떻게 이런 토우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우선 토우가 무덤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토우는 무덤의 부장품이었다.


성은 쾌락이고 욕망이면서 동시에 생명의 탄생으로 연결된다. 성기를 과장하거나 성행위를 드러낸 모습으로 토우를 만들어 무덤에 넣었다는 것은 죽은 자의 영생을 갈망하고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토우가 만들어질 수 있었을까? 우선 토우가 무덤에서 발견됐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토우는 무덤의 부장품이었다. 신라 토우는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이는 제의용일 개연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일까. 토우는 탄생과 죽음에 관한 모습도 많이 담고 있다. 신라인은 탄생의 순간과 죽음의 순간을 모두 토우에 담아 시신과 함께 묻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신라인에게 삶과 죽음은 하나였음을 알 수 있다.

탄생이나 죽음과 관련해 토우에 나타난 몸짓과 표정은 강렬하고 때로는 직설적이다. 드러누운 채 다리를 벌리고 있는 배부른 여성, 출산 직전 또는 출산 중인 여성, 시신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죽음을 슬퍼하는 여성…. 죽음을 슬퍼하는 여성 토우를 보자. 고개를 숙인 채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죽은 자의 어머니일 수도 있고 아내일 수도 있으리라. 그 앞에는 죽은 이의 얼굴을 가린 것으로 보이는 작은 천 조각이 놓여 있다. 이 토우를 보면 많은 생각이 밀려온다. 저 토우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것일까. 그것은 분명 철학적 성찰의 과정이었을 것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부터 삶과 죽음의 성찰까지 신라 토우는 늘 신선하게 다가온다. 보고 나서 돌아서려 하면 다시 발길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토우를 감상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거기 1,500년 전 신라인의 표정과 몸짓이 하나하나 살아 있기 때문이다. 출처 : 이광표(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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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