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말의 해를 맞는 지금, ‘터우’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본다
지축을 흔드는 우렁찬 소리 철마야 달려라!
절개형 증기기관차 ‘터우’는 ‘지축을 흔드는 우렁찬 소리’로 시작하는 노랫말을 현실로 보여주는 존재였다. 6·25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홀로 살아남아 철도의 역사와 함께 자리를 옮겨온 이 기관차는 이제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되었고, 다시 한번 바퀴를 굴릴 날을 기다리고 있다. 붉은 말의 해를 맞는 지금, ‘터우’의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 본다.

00.터우형 증기기관차 왼쪽
1980년 3월 국립철도고등학교에 입학해서 맨 처음 배운 것은 “늦을라 어서 뫼자 철도학교로” 이렇게 시작하는 교가였다. 그리고 두 번째로 배운 것이 “지축을 흔드는 우렁찬 소리 철마야 번개같이 밤낮을 달려”로 시작하는 〈철도의 노래〉였다. 그리고 교정 한쪽 강당 옆에는 실제로 철마가 자리를 잡고 있었으니 그 이름은 ‘터우’였다.
‘터우’의 정식 이름은 국가등록문화유산 터우5형 증기기관차 700호이며, 여객과 화물열차에 모두 사용됐던 범용 동력차이다. ‘터우’라는 이름은 ‘텐 휠러(ten wheelers)’에서 따온 것으로, 광복 이전에는 일본식으로 ‘테호’라고 불렀다. 철도에는 바퀴의 배열 형태로 동력차를 분류하는 관례가 있다. 증기기관차의 바퀴는 대개 세 가지 종류로 구성돼 있는데, 맨 앞에서 기관차가 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전륜(前輪), 동력이 전달되는 동륜(動輪), 운전실을 받쳐주는 후륜(後輪)이 그것이다. 터우형은 4-6-0 방식인데, 전륜이 4개, 동륜이 6개인 반면에 후륜이 없다. 모두 10개의 바퀴로 이뤄진 차종이어서 ‘텐 휠러’ 즉, ‘터우’라고 부른 것이다.
철도박물관에는 모두 32대의 차량이 전시돼 있는데, ‘터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철도 현장에서 운행을 종료한 후 박물관에 들어왔다. 그런데 ‘터우’에는 좀 특별한 사연이 있다. 1935년 10월 1일 철도국은 용산에 철도박물관을 세웠다. 그곳엔 철도학교와 철도도서관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까이에 최신 설비를 갖춘 철도병원이 있었고, 철도차량을 정비하고 개발하고 생산하는 경성공장도 있었다. 또한 용산역은 경원선의 출발역이자 대륙으로 향하는 철도물류의 허브였다.
용산의 철도박물관엔 다양한 유물과 함께 대한제국 황제가 탔던 귀빈차와 객차, 화차 등이 전시되었다. 개관 직후 연말쯤에 철도국은 회심의 역작을 선보였는데, 경성공장에서 제작한 절개형 ‘터우’였다. 절개형이란 애니메이션 〈마징가Z〉에 나오는 ‘아수라 백작’처럼 차량의 반을 갈라 한쪽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게 하고, 나머지 반쪽은 내부 구조를 훤히 볼 수 있게 만든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불을 때는 화구를 벗어난 불과 물의 기운이 어떻게 증기가 되어 실린더로 들어가는지, 기운을 다한 증기가 어떻게 연돌을 통해 대기로 빠져나가는지 그 흐름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터우’에는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기관차 하부에 모터를 설치해 전기를 흘려보내면 그 육중한 동륜이 회전하도록 만든 것이다. 멈춰 서 있는 차량의 바퀴를 돌리려면 레일과 띄워 놓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 운전실 밑에 받침을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까 전륜과 운전실 하부 받침이 기관차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구조인 것이다.
01.운행 당시 터우형 증기기관차 02.차체 하부 동륜과 연결된 모터 03.터우의 오른쪽 면. 절개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철도의 요람이자 메카였던 용산은 6·25전쟁 때 집중 폭격 대상이 되었다. 그때 철도박물관도 전소되고 ‘터우’만 겨우 살아남았다. 세월이 흘러 1980년대 나라의 형편은 좋아졌지만 철도산업은 사양화에 허덕였다. 철도청은 경영을 개선하기 위해 철도고등학교 폐지와 한강로3가 63번지 일대의 철도교육단지 매각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1985년 철도전문대학과 교육원이 의왕으로 이전했고, 학교 옆을 지키고 있던 ‘터우’ 역시 용산을 떠났던 것이다.
‘터우’가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박물관에서는 이 기관차를 박물관 구내로 들여와 복원하는 계획을 추진했다. 오랜 세월 구동하지 않았기에 이제는 전설처럼 되어 버린 ‘터우’의 고유 기능을 온전히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한 소년의 오랜 소망이었다. 그런데 그 시점에 철도박물관 시설을 개선하기 위한 대규모 용역이 착수되면서 차량 이동 계획이 전면 보류되었다. 그리고 2025년 철도박물관 신축계획이 확정되었고 2030년 개관을 목표로 설계공모도 시작되었다. 2026년 붉은 말의 해가 밝았다. 새해엔 ‘터우’의 본격적인 복원에 앞서 정밀조사를 수행하려고 한다. 골격은 여전히 탄탄한지, 닦고 기름 치면 다시 바퀴를 굴릴 수 있을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긴 세월 침묵 속에 갇혀 있던 철마가 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증기를 뿜어낼 것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벅차오른다. 출처 : 배은선(철도박물관장) | 사진제공 한국철도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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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