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의성군 첩첩 오지의 왕실과의 인연이 많은 사찰로서, 지장보살의 원력이 큰 사찰로 인정되어 왕실에서 어려움을 피해 찾을 수 있는 길지의 사찰로 알려진 곳이었다.
의성 지장사 地藏寺
경상북도 의성군 첩첩 오지의 왕실과의 인연이 많은 사찰로서, 지장보살의 원력이 큰 사찰로 인정되어 왕실에서 어려움을 피해 찾을 수 있는 길지의 사찰로 알려진 곳이었다.
지장사는 과거에는 직지사의 말사였으나,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의 말사이다.
도로 옆에 숙종대왕 친필을 쪼아 만든 지장사 표석의 선돌이 선명하게 길을 안내해 준다. 왼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골짜기로 약 1㎞ 정도 올라가면 지장사가 있다. 절집에 오르는 오르막길 양옆으로 서로 마주 보며
드문드문 서 있는 정겨운 돌탑들은 주변의 돌을 그냥 쌓은 것이 아니라 석탑 양식으로 크고 작은 돌을 탑신과 옥개석으로 구분해 쌓아 놓아 올라가는 내내 운치가 있다.
지장사에는 전하는 사지나 문헌은 전혀 없고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7세경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절을 둘러싼 용요산 龍腰山 곳곳에서 출토되는 유적이나 아랫마을에 기왓골(지장사를 지을 때 기와를 굽던 마을)이나 지통골(한지를 만들던 마을)이란 지명을 볼 때 대중과 선승 선객들이 많아, 쌀뜨물이 아래 계곡까지 뿌옇게 내려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의 큰 사찰이었다.
창건 당시에는 극락전, 응진전, 의향각, 청풍루, 산신각, 칠성각, 일주문과 10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사찰이었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사실은 알려지지 않는다. 1637년(인조 15) 세완 대사가 중건하였고, 1652년(효종 3)에는 영인 대사가 극락전을 중창하였다. 1666년(헌종 7)에 영산전, 1677년(숙종 3)에는 청풍루가 중창되었고, 1680년에는 법선이 영산전을 중수했다. 1752년(영조 28) 희묵(熙默)이 영산전을 관음전이 있던 자리로 옮겨서 건축했고, 1765년에는 신열(神悅)이 청풍루를 중수하였다. 1838년(헌종 4) 성우(性宇)와 영일(永一) 등이 법당과 누각을 중수하였으며, 1847년 영송(影松)이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861년(철종 12)에는 운악(雲岳)이 영각을 세웠고, 1872년(고종 9)에 혜운(惠雲)이 응향각을 중창하였다. 1996년에 명부전을 새로 지었다. 1722년(경종 2)에 용안(龍眼) 성징(性澄)이 작성한 상량문 복장문(腹藏文)에 의하면 그 해에 법선(法禪)스님이 불화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매월 음력 초하루에 정기 법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부처님 오신 날, 성도절, 우란분재일 등 불교 명절에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지장사에는 승려 2명과 신도 약 200명이 있으며, 신도회를 조직하여 신행과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사찰 경내에는 중앙에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 있고, 극락보전, 응진전, 비로전, 명부전이 일직선상에 건축되어 있다. 그리고 의향각, 청풍루, 명부전, 삼성각, 법당, 요사채, 선방, 찻방 등의 전각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과거에는 10개의 암자를 거느렸지만, 지금은 성적암과 도장암이 있다. 현 주지 스님의 원력으로 곳곳이 깔끔하게 정비 되고 있었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극락보전 불단 위에는 18세기 중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아미타삼존좌상으로 아미타부처님을 주존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아미타삼존좌상 뒤로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으며, 옆 벽면에는 신중탱화와 칠성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주존 이신 아미타부처님불단 위로는 장엄한 닫집과 용두마리가 부처님을 호위하고 있다.
지장사 후불탱화는 대웅전 본존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다. 하단의 화기(畵記)는 일부 마멸되어 전문(全文)를 알아볼 수 없지만 ‘광서이십갑□사월초십일□공이십이일점□□봉안우용□산지장사연화질□…증명포운(光緖二十甲□四月初十一□供二十二日點□□奉安于龍□山地藏寺緣化秩□…證明抱雲)……’라 기록되어 있다. 1894년(고종 31)에 제작된 것이며, 광서 20년 다음 판독되지 않는 한자는 ‘갑오(甲午)’을 임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불 좌우 협시 보살로는 문수, 보현, 지장, 관음 등 4대 보살을 배치하였으며, 석가모니불의 무릎 아래쪽 협시 보살 옆으로는 사천왕(四天王)이 자리하여 주불을 호위하고 있는 구성이다.
지장사 신중탱화는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인 신중들을 그린 그림이다. 신중탱화는 법당의 중심부에서 좌우측 벽에 봉안되는데, 지장사 극락보전 본존의 왼쪽 방향인 북쪽 벽에 걸려있다. 제석(帝釋),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여러 신중(神衆)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기로 일부가 소실되긴 했지만 지장사 극락보전에 함께 봉안되어있는 후불탱화와 동일 연대의 작품으로 판단되고 있어 1894년(고종 31)에 조성된 조선 후기 불화임을 알 수 있다.
극락보전 앞마당에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3층 석탑이 있다. 원래는 지장사 경내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 산기슭에 있었으나, 수년 전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 왔다고 한다.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조선 후기 건축물로 내부에는 석가여래 좌상과 4대 보살, 16나한상이 있다. 삼성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맞배지붕 건물이다.
1996년에 새로 지은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법당의 주불은 지장보살이며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였으며, 후불탱화로는 지장보살 뒤에 지장탱화를 봉안하였다. 명부전은 일반적으로 주불전을 향해 우측편에 위치한다.
비로전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6호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쌍호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원래 월소리의 진산인 옛 무례산(옛 물안산)의 동남쪽 중턱에 위치한 이름이 전하지 않는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나, 지금은 지장사 전각에 봉안되어 있다. 자연적 풍화 및 인위적인 훼손까지 더해져 불상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멸 되었고, 세부적인 표면 조각도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지권인(智拳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불상의 비례나 얼굴 표현, 투박한 옷 주름, 사각형 대좌의 도식화된 연꽃 무늬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그 밖의 문화재로는 숙종 친필의 지장사 현판이 있으며, 1715년(숙종 41)에 시주공덕비와 하마비(下馬碑)를 세웠으나 지금은 하마비만 남아 있다. 지장사는 숙종대왕과 언제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기록이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다. 1699년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돌 때 이곳으로 피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숙종대왕이 다녀간 후 1715년(숙종 41) 하마비와 시주 공덕비가 세워졌으며, 1882년 고종의 왕후인 민비가 임오군란을 피해 이곳까지 피난을 왔다가 말이 비석 앞에서 꼼짝을 안하자 칼로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는 하마비도 만만찮은 '역사의 현장'이다. 명성황후의 축원문이 1970년대까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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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