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0년의 기다림 1,350일의 긴 여정쪽샘 44호분 신라 공주묘

쪽샘 44호분은 신라 왕의 무덤이 줄지어 있는 대릉원과 인접한 곳의 지름 30.8m에 달하는 큰 고분으로, 2014년 5월 9일부터 2023년 6월 30일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무덤 1기에 소요된 총 발굴일수 1,350일, 발굴조사에 투입된 연구원 누계 5,961명, 현장근로자 누계 10,669명의 길고 대단한 여정이었다.

1,550년의 기다림 1,350일의 긴 여정쪽샘 44호분 신라 공주묘

사적 경주 대릉원 일원은 4~6세기 신라의 왕과 왕족, 귀족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현재까지 1,200여 기가 넘는 무덤이 확인되었고 앞으로 조사를 통해 그 수는 계속해서 늘어날 전망이다. 대릉원 일원은 6개 지구로 구분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쪽샘지구’이다. 쪽샘 44호분은 신라 왕의 무덤이 줄지어 있는 대릉원과 인접한 곳의 지름 30.8m에 달하는 큰 고분으로, 2014년 5월 9일부터 2023년 6월 30일까지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무덤 1기에 소요된 총 발굴일수 1,350일, 발굴조사에 투입된 연구원 누계 5,961명, 현장근로자 누계 10,669명의 길고 대단한 여정이었다.


                                목조구조물 설치, 무덤 구덩이 굴착


대부분 고대 무덤이 그렇듯이 무덤 주인공을 특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지만 발굴조사와 연구를 통해 축적된 여러 단서로 쪽샘 44호분 무덤 주인공이 묻혔던 시간, 신분, 성별, 나이 등을 추정할 수 있었다. 먼저 쪽샘 44호분의 위치를 보면 황남대총, 천마총 등 신라 왕이 잠들어 있는 대릉원과 접해 있다. 또 무덤 지름이 30.8m로 지금까지 조사를 통해 드러난 대릉원 일원 고분군 내 1,200여 기의 무덤 중 약 30번째에 해당하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금동관, 금귀걸이, 가슴걸이 등 주인공이 착용한 장신구의 형태와 수량에서 최상위 신분임을 알 수 있으며, 주인공 주변에 함께 묻었던 유물 중 금동신발, 돌절구·공이, 철솥과 청동솥, 바둑돌 및 비단벌레 장식 말다래는 신라 왕 또는 왕비의 무덤으로 보는 황남대총 남·북분의 유물과 형태, 재료에서 매우 닮아 있어 왕, 왕비와 밀접한 사람, 즉 왕족으로 볼 수 있다. 주인공이 놓인 공간을 둘러싸면서 4명 이상의 순장자(殉葬者)가 함께 묻힌 흔적 또한 신분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 44호분 내 봉토부, 덧널부에서 불에 탄 나무편[木炭] 등이 여러 곳에서 출토되었는데, 나무편에 남아 있는 방사성 탄소를 측정해 무덤 축조 연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무덤과 유물,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을 통해 약 1,550년 전인 5세기 후반 이 무덤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신라 왕은 소지마립간(479~500)이다. 또 무덤 내부 부장품에 남아 있던 주인공의 두개골편이 일부 분석되었지만 나이, 성별 등을 추정하기는 무리였다. 그러나 주인공이 착장한 장신구의 위치를 통해서 키는 약 130cm로 볼 수 있었다. 다른 신라 무덤 출토품과 비교했을 때 크기가 작은 장신구와 금동신발은 주인공이 미성년임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출토 유물을 볼 때 화려하고 많은 장신구를 착용한 점, 금동관과 굵은고리 귀걸이를 하고 있는 점, 칼, 갑옷, 투구, 말갑옷 등과 같은 무기류가 전혀 출토되지 않는 점 등을 통해서 여성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를 볼 때 무덤의 주인공은 신라 왕족의 미성년 여자로, 10세 전후의 신라 공주인 것으로 추정된다.

                      01.목긴항아리 행렬도 추정 복원도 02.덧널 설치와 돌무지 쌓기 03.무덤 붕괴 후 단면 모습


지난 10년간의 발굴조사와 조사 과정에서 진행된 융복합 연구를 통해 한국 고고학사의 획을 그을 만한 성과가 쏟아졌다. 그중 가장 큰 성과는 고대 신라 지배층의 무덤으로 독특한 구조를 보이는 돌무지덧널무덤의 전체 구조와 축조공정, 축조기법이 밝혀진 첫 조사 사례라는 점이다. 44호분의 무덤을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무덤을 만들 자리를 선정하고 나무 말뚝과 끈 등을 이용해 타원형을 그려 무덤을 쌓을 범위를 표시한다. 다음 무덤 중심을 기준해서 동심원상으로 3~4열의 나무 기둥을 세운다. 기둥열 위로는 방사상으로 긴 나무를 걸쳐 놓았고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물의 표면에 가로 방향의 긴 나무를 약 4열로 엮어 완성하였다. 무덤 중앙에 네모난 구덩이를 파는데 이곳은 주인공과 부장품을 안치할 덧널[木槨]을 만들 공간이다.

이후로 본격적인 돌무지덧널을 만드는데 주인공과 부장품이 있는 공간은 2개의 덧널을 놓고 동시에 먼저 설치한 나무 구조물 안을 냇돌로 채웠다. 돌의 수량이 자그마치 5톤 트럭 200대 분량이다. 돌무지덧널을 만든 뒤 곽 안에 관을 놓고 주변으로는 부장품을 안치하고 무덤 동쪽에 있는 제단에서 공주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다음 흙으로 돌무지덧널을 덮어 봉토를 만들고 봉토 가장자리에는 둘레돌을 돌렸다. 끝으로 둘레돌 바깥으로 작은 냇돌을 깔고 큰 항아리와 다양한 형태의 그릇들을 놓고 여러 해에 걸쳐 제사를 지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제사 공간에서는 주인공이 말을 탄 모습, 사람들이 사슴, 멧돼지 등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 여러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진 그릇도 출토되었다.

황남대총, 천마총, 금관총 등의 발굴조사는 봉토와 돌무지 구간 일부만 조사하였기 때문에 그동안 몰랐던 다양한 정보, 즉 나무를 세우고 엮은 구조, 돌무지를 쌓는 과정과 기술, 돌무지와 봉토 간 만드는 순서와 기법, 봉토와 둘레돌을 만드는 순서와 기법,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서 행해진 의례 흔적 등이 쪽샘 44호분에서 처음으로 드러났다. 또 지질학, 토목학 전문가와 함께 학제간 융복합 연구를 실시하여 축조 재료의 특성을 찾고, 돌무지덧널무덤의 축조 과정과 축조 이후 붕괴 과정을 과학적으로 증명함으로써 신라 무덤 연구의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였다는 점도 큰 성과이다.

              04.가슴걸이 05.금동관 출토 삼색 비단 06.말다래 재현품 07.금동관 주변 출토 머리카락



무덤 안을 발굴하면 출토되는 것은 토기, 장신구, 무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실제로 무덤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 뼈, 치아 등 주인공이 누구인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것, 나무로 만든 관, 덧널, 기둥과 같은 구조물, 나무 그릇들, 주인공이 입었던 옷이나 시신을 덮었던 천과 가죽, 제사를 할 때 사용했을 각종 의례용품, 제사 때 쓰인 음식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유기물(有機物)은 오랜 시간 온도, 습도, 흙에 의해 전체 또는 부분이 썩어 눈으로는 구분하기 힘들다. 하지만 장신구 등 금속 표면에 부착된 채로 남아 있는 경우가 있다. 또 시신의 배 부분에 있는 흙을 분석하면 기생충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통해 식생활이나 질병 정보도 알 수 있다.

                 쪽샘 44호분 주인공의 주요 장신구와 착용 재현도


44호분 조사는 국내에서 매우 드물게 약 200건의 유기물 자료를 발굴 과정에서 유기물 분석 전문가가 직접 참여하여 출토 현황조사, 수습, 분석하였다. 세 가지 색을 사용한 비단, 산양털로 실을 뽑아 만든 직물, 동물 가죽과 직물을 함께 사용해 만든 옷감, 직물에 붉은색과 자주색을 띠는 부분은 각각 꼭두서니와 자초라는 식물을 이용해 염색한 것 등이 ‘최초’로 밝혀졌다. 또 주인공의 머리 부분에서 추출된 유기물 다발은 사람 머리카락임이 밝혀졌는데 머리카락을 직물과 같은 유기물로 묶고 장식한 모습도 국내 발굴 자료에서 처음 확인되었다.

특히 이번 조사·연구 성과의 백미(白眉)는 천마총 말다래 이후 50년 만에 새로운 형태의 신라 말다래가 유기물 분석을 통해 드러나게 된 점이다. 말다래는 말 안장 양쪽으로 늘어뜨린 사각형 판 모양의 장식으로 말을 탈 때 진흙이 튀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로 쓰인다. 대나무를 가로 세로로 엮은 직조물 바탕에 앞뒤로 마(麻)직물을 붙이고 다시 앞면에는 2겹의 비단을 붙였다. 가장 바깥 면에는 비단벌레 날개 딱지로 만든 하트 모양 장식을 꽃잎 모양으로 배치하고 꽃잎 가운데는 금동 달개를 달아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이처럼 쪽샘 44호분의 1,350일간의 발굴조사와 연구는 오랜 기간 체계적인 계획과 꾸준한 실행, 다양한 학문과 연계한 분석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고대 무덤의 축조부터 매장까지 전 과정을 보여준 사례이다. 44호분이 남겨준 수수께끼는 지금까지 밝혀낸 것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앞으로 수행할 다양한 연구 성과는 ‘경주 쪽샘 44호분 발굴조사보고서’에 수록할 예정이다.  글. 정인태(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사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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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