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부르는 노래, 아리랑

우리가 아리랑에 ‘한민족의 노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이다.

누구나 부르는 노래, 아리랑

민요 조사를 할 때 민요를 불러주셨던 분들에게 자주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그 노래도 모리믄 사람인가?’,  ‘아리랑도 못하는 사람이 있당가?’ 아리랑은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부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예를 들어 강원도 정선에서는 ‘정선 사람은 모두 아라리를 부를 줄 안다’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나 부르는 노래’, 그것이 아리랑이다.

1896년 선교사 헐버트가 서양악보로 처음 채보한 아리랑 악보 ©문경 옛길박물관



모든 이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노래

아리랑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아리랑을 모르는 외국인도 많지 않다. 예전 세계의 음악학자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찾다가 결국 아리랑을 불렀던 적이 있다. 그처럼 쉽게 뇌리에 남겨지는 노래, 가사가 쉽고 반복적이어서 익히기 쉬운 노래가 아리랑 이다. 모두가 알고 함께 노래할 수 있지만 제대로 알기는 힘든 것이 또한 아리랑이다.

우리는 아리랑을 ‘민족의 노래’라고 부르며, 남북한이나 한민족이 함께하는 자리에서아리랑을 노래할 때면 이유 없이 울컥하며 그 감동을 나누기도 한다. 과연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 노래를 그렇게 부르고,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일까?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아리 아라리오’ 같은 가사가 들어 있는 노래를 우리는 아리랑이라고 부른다. 현재 아리랑이라는 제목이 붙은 노래는 130곡이 넘지만 이 수치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새로운 아리랑이 만들어지고 있고, 또 어떤 아리랑은 불리지 않아 없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896년 아리랑의 악보를 처음으로 만든 선교사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는 “이 노래는 즉흥곡의 명수인 한국인들이 끝없이 바꿔 부를 수 있도록 만들어졌지만, 후렴구는 바꾸지 않고 부른다.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밥과 같은 존재로 언제나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헐버트가 아리랑 악보를 만들 당시에도 아리랑은 누구나 부르던 민요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130곡이 넘는 아리랑을 만든 것은 헐버트의 이야기처럼한국인들이 끝없이 바꾸어 부르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이다.

바꾸어 부른다는 것은 가사를 바꾸거나, 지역의 특성에 따라 선율을 바꾸거나, 음악을 꾸미는 시김새나 표현을 바꾸는 것 등을 포함한다. 그래서 음악적으로 큰 변화가 없더라도 자신의 가사를 붙이고 감정을 담아 노래하면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아리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리랑의 전승 방식은 전승자들의 창의성과 주체적인 향유가 돋보인다는 점에서 중요한 무형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아리랑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살아 있는 생명체이며,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것이다.

02.1952년 미국 ROYAL ROOTS 음반회사에서 발매한 SP 음반 Ah-Dee-Dong Blues. 6.25전쟁 때 미국 재즈연주자인 오스카 페티포드는 1951년 공연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화장실에서 통역관이 휘파람으로 부르던 아리랑의 멜로디에 매료돼 재즈풍으로 편곡해 음반을 발매했다.  ©아리랑박물관

03.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 김남기  ©정선아리랑 문화재단



공감대를 형성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다


아리랑 악곡의 수가 많다고 하지만 실제로 음악적인 유형으로 묶어 보면 몇 곡으로 정리할 수 있다. 우측 위의 지도 와 같이 전국적인 아리랑 유행과 확산을 만든 계기는 나운 규의 영화 <아리랑, 1926>이었다. 이 영화는 지주와 소작, 일제강점기의 고난을 직간접적으로 다루면서 주제곡으로 아리랑을 활용한 무성영화였다. 민족적 슬픔을 담은 영화의 소재와 주제곡 아리랑의 만남은 폭발적인 유행을 이끌었고 그 결과 전국적인 지역별 아리랑 생성에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20세기 초 불행한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한민족의 강제 이주와 함께 아리랑은 세계 각처로 퍼져 나갔다. 그 당시 고국을 떠난 이들은 아리랑을 모국의 노래, 망향의 노래로 기억했다. 그래서 아리랑은 슬픈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공통의 감정을 불러일으켜 공감대를 형성케 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우리가 아리랑에 ‘한민족의 노래’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이다.

04.아리랑의 역사를 담은 정선 아리랑 박물관 상설전시실 ©아리랑박물관

05.관현악으로 재구성된 남도 아리랑 ©국립국악원 아카이브



아리랑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면서 시대성을 담아내고 있어 21세기에도 현재의 노래로 살아 있다. 그리고 민족의 노래로서의 공동체성과 개인의 창의성을 발현케 하는 개방성과 유동성, 정서를 표출하고 소통하는 도구로서의 무형문화유산적 가치 등을 인정받아 2012년 12월 5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되었고, 2015년 국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06.영화 ‘아리랑’ 포스터 ©문화재청   07.진도 아리랑 마을 ©진도군청

 


흔히 국가무형문화재라 하면 대표적인 보유자가 전승하는 형태를 떠올리게 되지만 아리랑은 ‘누구나’ 부르는 노래이 므로 보유자나 전승 단체가 없는 종목 지정 문화재로 지정 되었다. 현재 아리랑을 전승하는 단체는 100여 개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아리랑을 만들어 확산·전승하고 있다. 종목 지정은 ‘누구나 부르는 아리랑의 정신’을 이어받아 더 많은 이가 자신만의 아리랑을 만들고 즐기기를 원하는 정책적 기반이다.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아리랑은특정 인물이나 특정 단체의 것이 아닌 ‘누구나’의 아리랑이어야 하며, 종목 지정 문화재 정책은 아리랑을 만들고 부르고자 하는 모든 이를 응원해야 할 것이다. 김혜정(경인교육대학교 음악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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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