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필 뒤에 숨은 군주의 덕성

가짜는 화폭에 그려진 형상들이고, 진짜는 그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다

정조 필 <파초도> 뒤에 숨은 군주의 덕성

조선 초기 문신 신숙주는 「화기(畵記)」에서 ‘가짜로써 진짜를 끌어 낸다(因假形而奪眞)’라고 말했다. 진짜를 가지고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가짜로써 진짜를 끌어낸단 말인가?  얼른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말의 함의는 진리이다. 그렇다면 그림에서 가짜는 무엇이고 진짜는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가짜는 화폭에 그려진 형상들이고, 진짜는 그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이다. 이것을 우리는 보통 화의(畫意)라고 부른다. 화의를 정확히 읽어 내는 일은 결국 화가의 성품과 입장, 그에 따른 조형 의지를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보물 정조 필 파초도 ©문화재청



겉에 가려진 진성(眞性)을 바라보다

정조는 파초, 국화, 매화 등을 소재로한 그림을 남겼지만, 실생활에서는 화초에 뜻을 둔 적이 없었다. 사사로운 것에 마음을 뺏겨 큰 뜻을 상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화훼 공물(貢物) 제도조차 없애려 했다. 그러나 화훼 농민의 삶을 불쌍히 여겨 형식만은 유지한다는 뜻으로 가을 국화와 여름 석류 분(盆)을 조금 사두게 했다.

특별히 석류를 가까이한 것은 아름답다거나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꽃 피고 열매 맺고 익는 절후가 벼농사와 부합하기 때문이었다. 인간 이산(李祘)을 둘러싼 것 대부분은 개인 취향이나 정서 표출이 아닌 군주로서 공적(公的) 자아의 발현이었다.

정조는 화초에 뜻을 두지 않았지만, 영물시(詠物詩) 짓기는 즐겨 했다. 경사 때나 출행(出行)중에 잠시 쉴 때마다 시를 읊고 신하들에게 화답게 할 정도로 시 짓기를 좋아했다. 그는 영물시를 지을 때 감성적 미사여구보다는 대상이 지닌 교화와 도덕적 의미 표출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성향은 어릴 때부터 이미 나타나고 있었는데,


다음은 정조가 세손 시절 춘저(春邸)에 머물고 있을 때 지은 「섬돌의 파초(계초, 階蕉)」라는 시이다.

庭苑媚春蕪 정원에 봄풀이 아름다우니
綠蕉新葉展 푸른 파초가 새로 잎을 펼쳤네
展來如箒長 펼쳐 나오면 길기가 비 같으니
托物大人勉 사물에 의탁해 대인 되길 힘써야지
- 홍『재전서』 제2권, 「춘저록(春邸錄)」 2, 시

정조는 파초에서 대인(大人) 군주의 덕을 발견하고 자신을 스스로 경계하고 훈계하는 말로 이 시를 끝맺었다. 파초의 생태적 속성을 자기 수양의 방편으로 삼은 것이다. 대인은 할아버지 영조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어린 세손에게 요구했던 군주의 모습이었다.

맹자는 대인이란 갓난아이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으로서 지혜가 밝고 도덕적 인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정조가 어릴 적부터 숭상해 마지않았던 주자 (朱子)는, 만약 갓난아이 마음을 잃어서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거나 이익과 손해를 따진다면 이는 곧 소인이 되고 만다고 했다.


파초의 대인적 풍모를 사랑한 정조

파초는 자랄 때 새로운 심이 같은 곳에서 나와 활짝 펼치고, 다시금 돌돌 말린 새잎이 돋아나 앞서 펼쳐진 잎의 뒤를 따른다. 새심으로 새로운 덕을 기르고, 이내 새잎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펼치는 형국을 드러낸다. 정조가 파초를 그림 주제로 삼은 것은 맑은 기색에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하는 그 모습이 대인과 군주의 덕성과 비슷해 좋아하기를 그칠 수 없었던 까닭이다.

파초는 오랜 시간을 통해 일반화된 인문적 해석과 유교 성현들의 행적과 관련된 상징성을 띠고 있다. 예컨대 고일(高逸)한 분위기, 덧없는 인생, 파초우성(芭蕉雨聲), 초엽제시(蕉葉題詩) 같은 것이 그것이다. 다양한 상징성이 부여됐음에도 정조는 감성적 측면보다 파초의 대인적 풍모와 자강불식의 상(象)을 사랑했다.

보물 정조 필 <파초도>는 제작 시기를 확실히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萬機(만기)’라는 주문 방인의 뜻을 새겨 볼 때 섭정 시기가 아니면 왕위에 오른 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는 ‘만기’가 임금이 천하의 막중한 정치를 총괄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파초도>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알려진 <묵매도>에 찍힌 ‘萬機餘暇(만기여가)’라는 주문 방인도 <파초도> 제작 시기를 가늠하는데 또 하나의 증거가 된다.

‘만기여가’는 왕이 천하의 막중한 직무를 수행하면서 잠시 틈을 내어 여가를 즐긴다는 뜻이다. 만 가지 나랏일에 애를 쓰는 와중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쉬면서 노일(勞逸)을 조절 하는 것도 현명한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 중 하나인 것이다.

<파초도>에 그려진 파초는 가짜다. 가짜라고 한 것은 그것이 전혀 가치가 없거나 무의미하거나 허위라는 뜻은 아니다. 그 자체가 진성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과 방편에 불과한 것이므로 그렇게 말하는 것뿐이다. 정조가 파초를 그린 것은 파초 그 자체가 아름다워서도 아니고 더구나 그림 솜씨를 자랑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다만 대인의 품격과 군주의 덕성을 지닌 파초가 군사(君師), 개혁 군주를 지향하는 자신의 공적 자아를 의탁할 수 있는 이상적 소재였기 때문이다. 보물 정조 필 <파초도>의 진성과 화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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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