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9 – 나주 영산강

잉어 구워준 효부 며느리 이름을 딴 영산강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9 – 나주 영산강

우리나라 곳곳에는 다양한 이름의 마을들이 있다. 그 마을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서로 다른 도시에 똑같은 동 이름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한 인물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지명을 낳기도 했다.

지명의 유래를 유형별로 나누어 그중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지명들을 살펴보았다.

방방곡곡 “효자 효녀” 들이 넘치는 나라

전국 어느 지역이나 효자동, 효자촌 등의 지명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충효사상을 높이 기렸던 전통문화에 기인하며, 특히 임금과 관련된 ‘충’은 서민과 거리가 있는 덕목이지만 ‘효’는 부모가 있는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덕목이기에 전국적으로 다양한 미담과 설화가 퍼져 있다. 아픈 부모를 위해 시체의 목(알고 보니 산삼)을 잘라 바친 아들(강원도 춘천시 효자동과 거두리), 한겨울에 숭어를 구해온 효자(경남 거제시 연초면 효촌), 호랑이도 감동시킨 효자(경북 포항시 남구 효자동), 뱀알로 아버지의 병을 고쳐드린 달래(전북 고창군 성송면 뱀내골), 개고기가 먹고 싶다는 노모를 위해 호랑이로 둔갑해 개를 잡아 온 아들 (전북 진안군 용담면 범바위), 삼을 캐어 부모님의 병을 고친 오누이(울산시 서부동 삼밭골), 꽃적을 구워 시아버지를 공양했던 며느리(대전 중구 문화동 꽃적마을), 원님의 구슬을 잃어버린 시아버지가 밥을 못 먹고 시름시름 앓자 잉어를 구워드린 정노인의 며느리(전남 나주시 영산강), 잉어를 스스로 뛰쳐나오게 한 효자(충북 음성군 삼성면 이양골) 등 효자, 효녀, 효부의 사연이 다양하고도 많다.



잉어 구워준 효부 며느리 이름을 딴 영산강

옛날 옛적 나주에 사는 정노인은 근심 걱정이 없었다. 고을 원님이 불러 물어도 근심 걱정이 없다고 하니 원님은 구슬을 선물로 주고, 뱃사공에게 부탁해 구슬을 잃어버리도록 일을 꾸몄다. 강에서 구슬을 잃어버린 정 영감은 걱정이 되어 밥을 먹지 못했고, 걱정된 큰며느리 영산은 잉어를 사서 통구이를 해드렸다. 그런데 잉어 배 속에서 구슬이 나왔다. 그 이야기를 들은 원님은 이 모든 일을 자신이 꾸몄다고 시인하고, 정노인에게 후한 상을 주었다. 정 노인은 강변에 며느리의 이름을 딴 영산서원을 지어 후학을 가르쳤고, 그때부터 사람들이 강 이름을 서원 이름에서 따 영산강이라 불렀다.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은 담양군 용면 용연리 용추봉에서 발원하여 담양호에 잠시 모인다. 이후 영산강의 이름을 얻어 금성천과 합류하여 담양읍을 지난다. 담양읍을 지나며 봉산면에서 중암천과 합류하여 광주시를 지나 광산구에서 장성호에 머물렀다 장성군을 지나온 황룡강과 만난다. 나주시에 이르러 지석천과 장성천 그리고 영산천을 차례로 받아들여 영산포구에 이른다. 이후 영산강은 만봉천과 문평천 그리고 고막원천을 차례로 합류하여 함평군을 지나 영암군에 접어들어 삼포천과 영암천 그리고 망월천을 만나 비로소 목포시 앞바다에 이른다. 옛날에는 지금의 영산강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현재와 같이 영산강으로 불린 데는 전설이 전한다.



정 노인의 며느리 이름을 딴 전라남도 나주시 영산강


옛날에 나주에 정 노인이 살았다. 정 노인은 세상에 부러운 것이 없고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분이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지 자신은 5남매를 낳아 모두 출가시키고 효자·효부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딸과 사위가 있으니 근심이 없음을 강조했다. 하루는 고을 원님이 정 노인을 불렀다. “그대는 근심 걱정이 없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인가?” 하고 물었다. 정 노인은 “황송합니다만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원님이 “고을 원인 나도 근심이 있는데, 그대는 어찌 근심이 없는가?”하고 묻자 정 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까지 지내온 이야기를 이야기했다. 정 노인의 말을 듣고 난 원님은 감탄하여 “좋은 일이구려. 내가 기념으로 소중히 여기는 구슬을 줄 것이니 잘 보관하시오. 그리고 구슬이 보고 싶으면 그대를 부를 것이니 그때 가지고 오시오.” 했다.

정 노인이 물러나자 원님은 이방을 불러 여의주를 강물에 빠뜨리도록 지시했고. 이방은 사공에게 일러 일을 실수 없도록 처리하게 했다. 정 노인이 배에 오르자 사공은 배를 강 가운데로 몰면서 “노인장, 원님이 무슨 선물을 주셨습니까?”하고 물었다. 순간 정 노인은 놀랐으나 사공이 “뭘 그리 놀라세요! 고을 사람 모두 알고 있습니다.”라는 말에 안심했다. 배는 어느새 강 한가운데에 이르렀다. 그런데 사공이 자꾸만 구슬을 보여 달라고 졸랐다. 정 노인은 깊이 간직했던 구슬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려놨다. 그러자 사공은 몹시 놀란 눈을 하고는 “세상에 이런 구슬이 다 있군요!” 하면서 가까이 와서 구슬을 만져보더니 그만 배에서 넘어지면서 구슬을 놓쳤다. 구슬은 위로 높이 오르더니 강물 속으로 풍덩 빠졌다. 사공은 강물 속에 몇 번이나 잠수하여 찾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정 노인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큰 근심을 갖게 되었다.

사공으로부터 구슬을 강 속에 빠뜨렸다는 보고를 받은 이방은 이를 원님에게 전했다. 원님은 이방에게 한 달 후에 여의주를 가지고 오라고 전하라고 얘기했다. 이방으로부터 전갈을 받은 정 노인은 밥도 못 먹고 자리에 누웠다. 함께 사는 큰 며느리 영산은 밥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누워만 계시는 시아버님이 걱정이 되었다. “아버님 어디가 편치 않으신지요?” “아니다.”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내가 무슨 걱정이 있겠니.” 정 노인은 답답했다. 원님의 구슬을 강물에 빠뜨렸다고 말을 하자니 자식들이 걱정할 것이고, 원님이 구슬을 가져오라는 날은 점점 다가오니 만사가 귀찮았다. 이때 잉어 장수가 찾아와서 팔다 남은 잉어 한 마리를 사라고 했다. 며느리는 밥을 제대로 드시지 못하는 시아버지께 구워드리려고 잉어를 샀다. 그리고는 잉어를 통째로 구워 시아버지께 드렸다. “아버님, 좀 잡수세요. 그렇게 안 잡수시면 저희들도 밥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오냐, 나 때문에 너희들까지 걱정을 시키다니 정말 안 됐구나.” 정 노인이 억지로 일어나 밥상을 받았다. 젓가락을 들고 잉어를 뜯는 순간, 깜짝 놀랐다. 잉어 배 속에 강물에 빠뜨렸던 구슬이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럴 수가!” “아버님, 무슨 일이세요?” 그제야 정 노인은 자식들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는 큰며느리 영산에게 “네 덕분이다. 고맙구나!” 하고 칭찬하였다.

한 달이 되어 정 노인은 원님을 찾아가서 구슬을 내놓았다. 그러자 원님이 너무 놀라며 이방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차린 원님은 “혹시 이 구슬을 잃어버리지 않았는가?” 하고 물었다. 이에 정 노인은 사공에게 보여줬다가 잉어 배 속에서 찾은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러자 원님은 “과연 당신은 고민이 없는 분입니다!” 칭찬을 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자신이 꾸몄다고 숨김없이 얘기했다. 그리고는 후한 상으로 주었다. 기쁨 마음에 집으로 돌아온 정 노인은 잉어를 잡은 영산강 옆에 글방을 세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서당 이름을 큰며느리의 이름을 따서 영산서원이라고 지었는데, 이로 인해 후대 사람들은 강 또한 영산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이영식 나주문화원, 박영준. 한국의 전설1. 전라남도 문화공보담당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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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