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에 숨겨진 은밀한 매력, 오 마이 갓 Gat!

‘갓’은 순수한 한국말이며 한자로는 ‘립(笠)’ 또는 ‘입자(笠子)’로 쓴다. 갓은 넓은 의미로 모자(대우)와 차양(양태)이 있는 것을 말한다.

갓에 숨겨진 은밀한 매력, 오 마이 갓 Gat!

2019년 방영된 드라마 <킹덤>의 반응은 놀라웠다. 특히 외국인은 조선시대 모자인 ‘갓’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각종 리뷰에는 ‘좀비와 모자에 대한 드라마’, ‘팬시한 모자, ‘아름다운 모자’ 등 좋은 반응이 이어졌다. 또 사람들은 영어의 ‘신(God)’과 같은 발음인 ‘갓’ 을 ‘Oh, My Gat’ 등의 언어유희로 즐기기도 했다. 사실 이러한 관심은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1900년대에 조선을 방문했던 외국인들은 갓을 쓴 조선 사람들을 ‘의장(儀裝)을 갖춘 범선’, ‘모자의 나라 사람들’ 등으로 부르며 책과 신문에 기록을 남겼다.


01.갓의 모정에는 '정꽃'으로 불리는 장식이 들어간다. ©국립대구박물관



흑립, 너는 어디서 왔는 갓

‘갓’은 순수한 한국말이며 한자로는 ‘립(笠)’ 또는 ‘입자(笠子)’로 쓴다. 갓은 넓은 의미로 모자(대우)와 차양(양태)이 있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갓’이라고 하면 대부분 조선시대 모자인 흑립(黑笠)을 떠올리지만, 갓은 이미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나타날 만큼 역사가 매우 오래된 모자이다. 5세기 고구려 감신총 벽화에는 패랭이 형태의 검은 갓을 쓴 채 말을 탄 사람이 그려져 있다. 신라와 백제 고분에서는 갓과 모양이 다르지만, 다양한 형태의 관과 관모류가 출토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갓은 실물자료로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15세기 김진, 16세기 김시습의 초상으로 그 모양을 유추할 수 있다. 고려와 조선 초기의 갓은 모자의 꼭대기가 둥근 형태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갓[흑립] 모양은 조선 중기 때 비로소 등장하였다.

조선시대는 갓의 아름다움이 활짝 꽃피었던 시기였으며, 그중에서도 흑립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갓이다. 흑립은 먹칠과 옻칠을 여러 번 하여 선명하고 맑은 검은색을 띤다. 검은색을 통과한 빛은 흰색의 도포와 어우러져 세련되고 우아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의장(儀裝)을 갖춘 범선’이란 표현은 바로 이 같은 옷차림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02, 03.갓의 양태가 넓을수록 멋이 있다고 여겼다. ©국립대구박물관

04.갓끈은 갓을 고정하는 역할을 하지만 옥, 마노, 호박, 산호, 수정 등 장식적인 갓끈도 있었다.

서애 류성룡 문중 소장 ©국립대구박물관  /  05.보물 류성룡 종가 유물 중 갓 ©문화재청



선비들의 필수 아이템에서 중절모까지

선비의 덕목 중 하나인 ‘의관정제(衣冠整齊, 의관을 바르고 가지런하게 하다)’는 유교적 가치이자 전통적인 몸의 개념을 담고 있다. 성리학 이론에서 정신과 몸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몸은 유교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선비가 상투를 올리고 망건을 착용하며, 갓을 쓰는 일련의 과정은 유교 문화와 조선의 자부심으로 나타났다. 조선 후기 학자인 조재삼의 『송남잡지』와 이익의 『성호사설』에는 상투의 유무에 따라 오랑캐를 구분했고, 『연행록』에는 망건과 갓을 쓰는 유교적 의관제도가 청나라에 비해 조선에 잘 계승되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편 1895년(고종32)에 발표된 단발령은 조선을 뒤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단발령은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한편으론 몸과 정신이 동등한 위치에 놓이는 계기가 되었다. 즉, 몸과 정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유교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신체의 일부인 몸과 머리를 독립적인 개체로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외국에서 들어온 제도는 몸을 인식하는 데 새로운 변화를 보였으며, 모자를 패션으로 인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단발령 이후 서양의 양복과 중절모가 유행하면서 갓은 점점 작아지고 중절모와 비슷한 형태로 변했다. 두루마기 같은 전통 한복에 서양식 중절모를 착용하기도 했다. 두루마기와 중절모 차림은 다소 낯선 모습이었지만 새로운 문화와 전통이 자연스럽게 섞이는 과정이었다.

06.기품과 절조의 미학을 보여주는 갓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국립민속박물관

07.조선시대의 붉은색 갓, 주립 ©온양민속박물관

08,09.갓을 보관하는 다양한 형태의 갓집도 있다. ©온양민속박물관



갓, 독창적인 매력을 쓰다

조선시대의 갓이 대중성과 더불어 독특한 조형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재료와 제작 방식에 있다. 갓의 재료로는 흔히 말총을 떠올리지만, 사실은 말총과 대나무를 섞어 만든다. 특히 조선시대의 갓은 대우(모자)와 양태(차양)를 따로 제작하여 조립한다. 갓에 다양한 재료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제작 방식 때문이다. 초기 국립대구박물관의 갓은 대우와 양태 모두 대나무를 사용했다. 하지만 대나무를 다루는 방법은 쉽지 않았다. 선비들이 몸가짐을 조심하더라도 가는 대나무실을 엮어 짠 갓은 문에 걸려서 부서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나무로 가는 실을 만드는 공정 또한 꽤 까다로운 일이었다. 이에 사람들은 대나무를 대체할 재료를 찾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말총이다.


말총은 이미 탕건과 망건을 만드는 재료였기 때문에 조선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재료였다. 머리카락과 비슷해서 질기고 탄력이 있기 때문에 갓을 만드는 데도 매우 적합하다. 이렇게 말총으로 갓을 만들게 되면서 점차 늘어나는 갓의 수요에 맞춰 갓의 표준화와 대량생산이 가능할 수 있게 되었다. 양태는 머리카락만큼이나 가는 대나무실을 씨실과 날실로 엮고, 사이에 비스듬히 빗대를 꽂아 견고하게 만든다. 조선의 장인들은 이를 더 발전시켜 이 위에 명주실이나 비단을 올리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렇게 하면 양태는 더 견고해지고, 표면은 대나무와 또 다른 독특한 질감이 느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갓의 아름다움은 은근하게 드러나는 멋스러움에 있다. 선과 선이 겹치면서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고, 가는 대나무 사이로 빛이 들어와 아른거리는 색감을 만든다. 특히 갓의 조형미는 양태의 곡선미에 있다. 양태의 선은 가운데 부분으로 가면서 봉긋하게 올라왔다가 완만하게 아래로 떨어진다. 갓의 평평한 모정에 숨겨 있는 정꽃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어떤 문양인지 보이지 않는다. 착용자만이 느낄 수 있는 은근한 멋이다. 이렇듯 갓은 조선시대 남성들의 예의 갖춤이자 늘 함께했던 아이템이다.

10.경주최부자댁의 갓집 ©경주최부자댁   11.경주 최부자댁 소장 갓 ©국립대구박물관
출처:민보라(국립대구박물관 학예연구사)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