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겨울, 서른네 번의 손이 가야 맛볼 수 있는 황태

오래도록 한국인의 삶이 되어 시와 노래가 된 생선. 머리부터 꼬리, 내장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명태. 옛말에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고 했다. 한국인이 즐기는 생선으로 명절이나 제사, 잔칫날에 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매서운 겨울, 서른네 번의 손이 가야 맛볼 수 있는 황태

한국인에게 친숙한 생선 명태를 겨울에 눈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며 말린 것을 황태라고 한다. 눈이 오지 않고 포근한 날이 계속되면 검은빛의 먹태가 된다. 강원도 진부령에는 황태덕장이 있다. 옛날처럼 덕장에서 눈과 바람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말리는 것은 똑같지만 예전에는 개울물에 씻어 널어 말렸다면 요즘은 환경오염 때문에 바로 냉동 창고로 직행했다 기온이 떨어지면 널어 말린다.

오래도록 한국인의 삶이 되어 시와 노래가 된 생선. 머리부터 꼬리, 내장까지 버릴 것 하나 없는 명태. 옛말에 ‘맛 좋기는 청어, 많이 먹기는 명태’라고 했다. 한국인이 즐기는 생선으로 명절이나 제사, 잔칫날에 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명태는 가진 이름도 많다. 바다에서 잡았을 때는 생것 그대로라 하여 생태라고 부른다. 이를 얼리면 동태, 말린 것은 북어, 건명태, 줄여서 건태라고도 한다. 생태를 겨울에 눈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말린 것은 황태이다. 말리다 땅에 떨어지면 낙태, 말리면서 서로 붙어 상품가치가 없는 찐태, 부서진 것은 파태, 크기가 큰 것은 대태, 중간 크기는 중태, 작은 크기는 소태라 부른다. 눈이 오지 않고 포근한 날이 계속되면 검은빛의 먹태가 된다. 이를 흑태라고도 한다. 반만 건조한 것은 코다리라고 부른다.


황태 두드리기

계절과 잡는 방법, 성장단계에 따라 불리는 이름도 다르다.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은 것은 추태, 동짓달에 잡으면 동지태이다. 그물로 잡으면 망태, 낚시로 잡아 올리면 조태라고 한다. 어린 명태는 노가리라고 하여 애주가들이 즐기는 술안주이다.

1949년 11월 24일 수산경제신문(水産經濟新聞)의 1면에는 ‘「명태」 대풍어!, 주문진 근해서 어획전 활발’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동해안의 명물인 명태는 예년에 드문 대풍어로서 주문진 근해에서는 활발한 어획전이 전개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풍어가 크게 기대되고 있다. 지난 20일 하루에 주문진 어업조합의 명태어위탁판매고는 약 14,000여, 시가 약 7백만 원으로서 예년에 드문 최고기록을 타나내고 있다.”라는 내용이다. 기사를 통해 당시 동해안 주문진의 활발했던 명태 잡이의 풍경을 실감할 수 있다.

겨울이 되면 일손이 더욱 바빠지는 진부령. 사람들이 눈과 바람을 맞아가며 명태를 말리는 황태덕장이 있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를 따라 들어서는 굽이굽이 길목마다 황태요리 식당이 줄을 서 있다. 그중 43년째(2018년 기준) 황태요리를 하고 있는 연영숙(여, 65세) 명인을 만나보았다.

옛날에는 바닷가에서 명태 배를 떼게고 할복해서 작업해 가지고 거진 앞바다에서 넘어와요. 그러면 여 근처 개울물에 이, 삼 일을 담가 두었어요. 바닷물에 살던 명태가 염기가 빠지면서 민물에 퉁퉁 불잖아요. 그렇게 걸면 스펀지처럼 통통해지죠. 그런 상태에서 얼면 폭신폭신하게 잘 나왔어요. 육, 칠십 년대만 해도 그렇게 했죠. 지금은 그렇게 못해요. 환경오염 관계로 개울에 담그지도 못하고 냉동 저장창고에 보관했다가 크리스마스 지나 영하 십오도 내려가면 꺼내서 덕장에 널어요.
옛날처럼 덕장에서 눈과 바람을 맞혀가며 얼렸다 녹였다를 반복하여 말리는 것은 똑같다. 그래도 민물에 씻어 널던 그 맛은 덜해졌다고 한다. 모양도 그때만큼 예쁘지도 못하다. 환경변화에 따른 기온 차도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삼사 개월 동안 서른네 번의 손이 가야 황태가 된다는 덕장 지기들의 믿음과 정성이다.

숙성된 구이용 황태 / 황태국


연영숙 씨의 고향은 익산이다. 남편 안응우(68세) 씨와 결혼하여 산골에서 살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하였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남편은 고향으로 가자고 했다. 첩첩산중에서 보따리를 세 번이나 쌌다. 친정어머니가 생각이 나서 보따리를 들고나오다가 애 울음소리에 주저앉고, 어떤 날은 마음먹고 도망가려다가 차가 안 와서 도망도 못 갔다.

눈이 오기 시작하면 열흘씩 오는 이곳, 하룻밤에 2m 이상 오는 날에는 열흘 이상 갇혀 살아야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억척스러운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빨간 고무장갑을 끼고 도로에 나가 팔을 내둘러서 군인 트럭을 세웠다. 고생스러웠던 날들이었지만 추억이 되었고 그녀의 시가 되었다.

어머니의 밥상처럼 그녀가 차려준 저녁상 위의 황태국은 구수하고 깊다. 국물이 배인 황태 살도 부드럽다. 그녀에게 조리법을 살짝 물어보았다.

여기 다들 황태국을 끓이지만, 집마다 틀려요. 저희는 황태 채를 볶지 않고 끓여요. 물에 황태가 잠길 정도로 두었다가 들기름을 넣고 오래 끓여요. 팔팔 끓기 시작하면 불을 줄여서 은근히 더 끓이면 사골국처럼 맛이 나지요. 그때 물양을 맞춰서 인제 감자를 한 바가지 쓸어 넣고 왕소금을 약간 넣고 먹을 때 파만 넣으면 돼요. 감자를 넣고 끓였기 때문에 구수한 맛이 나는 거예요.
화려한 그 무엇도 들어가지 않는다. 황태와 물, 들기름, 감자, 파, 소금이 전부이다. 덕장에서 직접 황태를 말리고 손질하는 남편은 남들보다 몇 번의 정성을 들인다. 그와 그녀의 깊은 손맛이 비법인가 보다. 그녀에게는 사십 년 넘은 옹이 백인 소나무 방망이가 있다. 젊은 시절의 손때가 박혀있어 버리질 못한다. 시내가 꽁꽁 얼어있는 진부령의 마지막 버스를 탔다. 차창 너머 앳된 얼굴의 새댁이 웃으며 지나간다.

용바위식당 연영숙(여, 65세) 씨는 황태요리 명인이며 시인이다. 남편 안응우(68세) 씨와 43년째 황태를 말리며 다양한 황태요리를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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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