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 불심의 나라- 티벳

고원 불심의 나라- 티벳 자치구 다양한 생활문화

 

ㅡ티벳의 문화ㅡ

티벳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므로 세계의 지붕이라고 하며.

또 사계절 내내 주위의 산들이 눈에 덮여 있기 때문에 눈의 나라라고도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공기는 매우 맑으며, 넓고 높은 산과 온통 눈으로 장식된 아름다움 풍경과, 맑고 시원한 물, 호수 등을 가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큰 강물의 수원이 대부분 티벳에 있기 때문에 티벳인들은 그 강물이 사자의 입, 코키리의 입, 공작새의 입, 말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다 한다.

 

예전에 티벳은 전 지역이 물로 덮여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고 점차 물이 줄어들어 산과 계곡이 생겨났을 때 그곳에는 야생동물과 새들만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관세음보살님의 축복으로(알룽쩨탕)의 한 바위 밑에서 아버지인 보살 원숭이와 어머니인 바위 귀신이 교합하여 많은 원숭이들을 낳았는데 이들에게 점점 지혜가 생겨나면서 인간으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이 바로 최초의 티벳 민족이라고 하며, 이들은 야생동물과 마차가지로 숲에서 나무열매를 먹고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 살았다. 초기에는 40개가 넘는 소왕국이 있었다고 한다.

 

B.C.127년 냐티젠뽀 그가 최초의 티배트 국왕으로 (율부라강)이라는 왕국을 세우고 주위의 소왕국들을 모두 통합하였다.

AD 433년 티배트인들에게 처음으로 불교가 전해졌다고 한다.

티벳은 중국공산당이 1949년에 침입해서 점령하기 전까지 거의 2,000년 동안 독립국가로 존재해 왔다. 티벳은 중국과 인도사이의 아시아 심장부에 위치해 있으며 전체 국토면적은 2백5십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른다.

티벳에는 이웃나라들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와 생활방식을 가진 티벳인들이 살고 있다.

티벳인들은 독특하고 풍부한 문화와 영적 전통, 고유의 언어와 방대한 양의 문학과 더없이 훌륭한 예술작품을 발전시켜 왔다. 수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티벳문화의 전통은 인류에게 정교하고도 귀중한 유산이다.

 

남쵸 호수 ( 나무춰,納木錯 )

하늘호수라 불리는 티벳의 남쵸호는 해발 4,740에 위치, 세계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대형호수이다.

동서의 길이 70km, 남북의 폭은 30km, 면적은 1,940평방km에 이른다.

나무(納木)은 ‘하늘’, 춰(錯)는 호수를 뜻하니까 ‘하늘호수’ 인것이다

아름다운 보석이 창탕초원에 박혀있는 듯한 매혹적인 호수 경치와

아름다운 전설들 때문에 수많은 여행자들과 순례자들이 이곳에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녠칭탕구라산에 있는 눈과 얼음이 녹아 이 호수를 형성하였다.

호숫가에 드넓은 초원은 물과 풀이 무성한 북부 티베트 지역을 대표하는 천연목장으로 야생 동물의 천국이기도 하다. 호수 한가운데 5개의 조그만 섬이 있고, 5개의 반도도 있다. 그 중 쟈시반도가 가장 큰데, 쟈시사원(扎西寺)과 종유동, 석림(石林), 자연적으로 형성된 다리등 카르스트 지형에서 볼수 있는 경관들을 볼 수 있다.

 

티벳 문화는 매우 다양하고, 티벳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는 기쁨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들은 고정된 형식과 틀에 얽매이지 않고 개성적으로 살며, 무슨 일에서든지 자유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인간으로 태어난 이 생을 붓다의 가르침을 깨닫기 위한 수행에 바친다.

결코 물질을 추구하거나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생을 허비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랜 세월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자신의 잠재적인 진화 가능성을 꽃 피우기 위해, 내면의 빛에 따르는 지적인 삶을 살아 왔다.그리하여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티벳 문화의 독특한 아름다움은 죽음이 늘 현존하고 있다는 생생한 깨달음과, 그 깨달음에서 비롯된 자유로움에서 분출된 현상이다.

 

깨달음을 얻기 전에 죽는 것,

즉 인간 상태로 존재하는 동안 얻을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잃어버리고 원하지 않는 비참한 상황에 수없이 반복하여 태어나는 것은 그야말로 비극 중에 비극이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깨달음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길을 따르지 않고 살다 죽은 사람의 상태는, 죽으면 완전히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아니면 죽자마자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보다 훨씬 더 비참하다.

그런 사람은 지옥이나 연옥에 떨어질지 모르며,

그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없는 고통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티벳 사람들은 이렇게 시작도 끝도 없이 돌아가는 삶의 연속이라는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본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 즉 다음 생에 처할 상황에 대한 두려움을 결코 무시하지 않는다.

이런 믿음은 자기 인생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느끼도록 한다. 티벳 사람들의 진한 종교성과 영성은,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고원 지대의 눈 덮인 산이 아니라 바로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보다 깊은 영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티벳 사람들은 죽음을 오히려 삶에 밀접하게 관련된 힘으로 보는 법을 배웠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죽음을 악하고 무자비한 것으로만 여기지는 않는다.

오히려 착하게 살도록 하는 힘, 즉 바람직한 태도와 선한 행동을 강화시키는 힘으로 본다.

또한 죽음 자체를 삶과 동떨어진 별도의 절대적인 실재로 여기지도 않는다.

죽음조차도 이렇게 상대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티벳 사람들의 정신적인 태도는 항상 현존하고 있는 자유, 즉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근거로 존재하고 있는 자유에 관련하여 죽음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티벳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나 항상 죽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처해 있는 삶의 상황, 그리고 깨어 있는 상태의 감각과 그 감각이 인지하는 대상들이 견고한 실재로 존재한다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 내가 하는 행위, 나의 느낌,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것은 그 자체로서 변하지 않는 본성[自性]을 갖고 있는 실체가 아니다.

우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몰두하고 있는 자기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은 언제든지 무로 돌아갈 수 있는 잠재적인 무이다. 만약 지금 죽는다면 그 모든 것이 당장 해체되고, 기억에서 사라지고, 우리의 손에서 떠난다. 그 모든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떠나 텅 빈 마비 상태가 될 것이다.

 

죽음의 가능성이 현존하고 있음을 늘 기억하며 사는 사람은 상상을 뛰어 넘는 자유를 누린다.

그런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라도 자신의 본성은 언제나 자유라는 사실을 안다.

그리고 모든 혼란은 이 세상을 고정된 속성을 가지고 있는 실체로 보는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이해한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깊은 자유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은 보통 습관에 따라 본능적으로 움직이지만, 깨달음을 얻은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완전히 그의 자유의사에 따라 행동한다. 죽음에 대한 이런 고차원적인 이해는 자신을 '비우고 죽이는 지혜'를 인격화시킨 무시무시한 죽음의 신 야마와 관련되어 있다.

모든 것을 종결시키는 죽음의 신 야마에 대한 명상을 통해 만물의

'비어-있음'[空性]을 철저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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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