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존재

세상의 모든 존재

 

불교에서는 존재와 인식을 매우 중요시 하는데, 그 존재를 일러 일체(一) 또는 법(法)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법은 다르마(Dhama)로서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살바(salva)로서 일체존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체를 법 또는 일체법이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일체존재의 구성요소를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계의 존재는 지수화풍(地水火風)의 사대(大)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가운데 인간은 또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의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세상은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인간과 자연계는 다시 육근(六根)과 육경(六境)으로 설명됩니다. 이 둘은 나와 나의 바깥 경계를 구분하는 요소인데, 이 둘의 요소를 합쳐서 십이처(十二處)라고 부릅니다. 십이처 가운데 육근(六根)은 오온(五蘊)을 다른 측면에서 분석한 것인데, 우리의 몸과 정신을 가리킵니다.

 

즉 육근은 우리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로서 안이비설신의 (眼耳鼻舌身意)를 말합니다. 이는 눈과 귀, 코, 혀, 몸, 뜻[마음, 정신)을 가리키는데, 육근 가운데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는 오온의 색온(色蘊)에 해당하며, 나머지 의근(意根)은 오온의 수상행식(受想行識)에 해당합니다. 즉 인간의 몸과 정신을 오근과 의근, 그리고 색온과 수상행식(受想行識)의 사온(四溫)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육근(六根)과 오온(五蘊)은 우리의 감각기관과 감곽작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육근과 오온이 우리의 감각기관과 감각작용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 대상은 무엇일까요? 그 대상을 육경(六境)이라고 합니다. 육경은 여섯 가지의 바깥 경계를 일컫는 것으로,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말합니다. 이는 감각의 대상이자 감각의 객체에 해당합니다. 즉 우리의 몸과 정신으로 느끼게 되는 대상으로서 눈의 감각대상은 색(色- 물체)이며, 귀의 감각대상은 성(聲-소리)이고, 코의 감각대상은 향(香-냄새)이며, 혀의 대상은 미(味-맛)이고, 몸의 감각대상은 촉(觸-촉감)이며, 뜻 의식의 대상은 법(法 - 일체와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육근과 오온을 통해 육경을 대상으로 온갖 업을 짓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체존재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변합니다. 그래서 무상(無常)한 것이라고 합니다. 고정불변 하는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운 사람이라 해서 영원히 미운 것이 아니며 좋은 사람이라 하여 항상 좋은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너도 변하고 나도 변합니다. 일체가 무상하기 때문입니다.

무상(無常)의 진리는 우리로 하여금 집착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영원한 것이 없기 때문에 그 어디에도도 머무는 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싫다 좋다. 밉다 사랑한다는 경계 또한 두어서도 안됩니다. 모두가 부질없는 것입니다. 집착도 무상이오 싫은 것도 좋은 것도 영원하진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생멸변화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그 어디에도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집착은 고통의 원인이라고 부자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집착을 버리는 방법은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진리를 체득하는 것입니다. 이 무상(無常)을 달리 표현하면 세상 모든 존재는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말입니다. 영원하지 않고 변한다는 것은 일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를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무아(無我)는 내가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 고정된 내가 없다, 내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수시로 변하고 무상하여 영원하지 않으므로 고정된 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고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어떠한 것에도 집착해서는 안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집착으로 인하여 고통을 일으키고 번뇌와 갈등, 대립을 일으키게 됩니다. 『금강경』에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말인데 어디에도 머물지 말고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는 마음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집착하는 마음자락에서 사랑은 증오로 돌변하고, 애정은 원망으로 변하며, 은혜는 원수가 되기 십상입니다.

 

세상 모든 존재가 다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공연히 속을 끓여서 마음을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 무상한 것에 속상해하지 마십시오. 속이 상하면 자신을 먼저 병들게 합니다. 분노로써 폭언과 폭력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불선(不善)이고 악업(惡業)입니다. 일체 존재에 대해 방하착(放下著) 하십시오. 모두 아래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법경 정사 (총지종 밀교연구소장/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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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