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가 가톨릭에서 배울 것

불교가 가톨릭에서 배울 것

 

출처 :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과 함께 찾아온 민족해방, 그 뒤로 75년이 가까워오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특히 이 기간 동안 종교 인구와 그에 따르는 교세가 급변하여 주류 종교의 위치가 완전히 바뀌게 된 점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례일 것이다. 1945년~1953년 ‘불교‧유교‧대종교‧천도교‧개신교‧가톨릭의 6대 종교’, 1954년~1960년 ‘불교‧ 개신교‧ 천도교‧ 가톨릭‧ 유교의 5대 종교’, 1961년~1965년 ‘불교‧ 개신교‧ 가톨릭‧ 천도교의 4대 종교’ 시대를 지나게 되면서 토착 종교 중 유교‧ 대종교‧ 천도교가 주류에서 밀려나 불교만 살아남고, 1966년부터는 ‘불교‧개신교‧가톨릭의 3대 종교’ 체제가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종교  분포 변화로만 보면 이 기간은 ‘유교‧ 대종교‧ 천도교’ 등 토착종교의 침체 또는 몰락과 개신교 ‧ 가톨릭의 급성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된 배경에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기독교(개신교와 가톨릭) 우대 정책이 있었던 것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미군정과 그를 이은 이승만 정권 기간 동안에 고위 공직자 임용과 군종장교 제도‧ 방송사 설립‧ 미국 원조물자 배분 등에서 특혜를 누리게 해주어 국교에 가까운 ‘유사 국가종교’의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하였기 때문이다. 특히 1951년 초에 시작된 군종장교 제도를 기독교에만 도입하고 그 중에서도 개신교의 압도적인 우위를 인정해주어 5‧16쿠데타 이후로 그 위력이 나타나게 되면서 1966년도에는 ‘국방장관, 육군‧해군‧공군 참모총장과 해병대사령관, 주월한국군사령관’ 등 군 수뇌부 전체가 개신교인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비록 최근에 최대 신도 숫자를 자랑하는 제1종교의 자리를 내주었다고 하지만 불교가 아직까지 이른바 ‘3대 종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최근에는 이 ‘3대 종교’ 중에서 불교가 침체 국면에 들어가고 개신교도 성장을 멈추어 빠르게 하락세로 돌아선 반면에, 가톨릭은 특히 사회 엘리트층 사이에서 신뢰를 얻으면서 성장을 이어가고 있어서  “멀지 않은 시기에 가톨릭이 제1종교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는 반면에(가톨릭 쪽) 다른 종교들의 부러움(또는 우려)을 사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에서 이웃종교인들의 눈에는 가톨릭 특혜로 보일 수밖에 없는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하면서 불교계 일부에서는 심지어 ‘숭천억불(崇天抑佛)’이라는 볼멘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가톨릭이 이런 위상을 지키게 된 데에는 로마제국 이래 2000년 동안 쌓인 교회 제도의 기반이 탄탄한 데에다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될 경우 정식 대사관을 두고 있는 로마교황청을 비롯한 가톨릭 국가들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다른 종교에 비하여 체계적인 사제 양성 시스템을 일찍부터 확립하였고 유신 시절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면서 국민들 사이에서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낸 것이 주효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가톨릭이 이 땅에 들어온 이래 “지난 2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교단분열을 겪지 않았고, 해방 후 지금까지 내부의 정치적‧신학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교단분열로 이어질 만한 심각한 장기적 내분을 겪은 바가 없었던 점”이 가장 중요한 성공 요인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물론 그들도 주교회의 의장 선출과 정치‧사회문제 등을 둘러싸고 이른바 진보와 보수 사이의 심각한 갈등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그것이 교회 밖으로 드러나는 일이 드물며 그 갈등 때문에 사법부의 판단을 구하는 소송전이 벌어지는 것은 상상할 수조차 없다. 숱한 갈등과 분규 때문에 막대한 삼보정재를 허비했던 불교계가 이런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노선갈등을 분열로 이어가지 않고 안에서 소화해 내는 가톨릭의 길을 배워야 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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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