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히로부미, 조선 침략이 포함된'근대 일본'의 설계자이토 히로부미는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1907년 헤이그사건 이후'정미7조약'을 강요하고 고종을 퇴위시키는 등 일본정부를 대표해 한국침략을 진두지휘하다 안중근에 의해 사살당한
철저함 위해 새로움을 추구하다법고창신, 추사 김정희의 파격적 창의김정희의 추사체를 기(), 고(怪), 졸(出) 하다고 한다. 조선 최고 금석서화가 추사가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필법으로 썼기 때문이다. 당시 선비들은 시서화일치(時善一致)를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 (安東 鳳停寺 極樂殿)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2018년 6월에 “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황진이 한민족 최고의 팜므파탈...조선 중종 때 개성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는 정확한 생존연대는 알 길이 없다. 서경덕, 벽계수 등과 교류한 것으로 보면 중종 때 사람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녀가 상대한 사람들의 일화로 보아 1520년대에 태어나서 1560년대쯤에 생을
갑신정변의 주역 김옥균, 상해에서 쓰러지다.상하이에서 자객의 총탄에 피살당한 풍운아 김옥균의 일생.1894년 3월 28일 오전 중국 상하이 미국 조계 안의 일본 여관 동화양행 2층의 객실에서 울린 세 발의 총탄이 한 사나이를 쓰러뜨렸고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자주
국보 제14호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永川 銀海寺 居祖庵 靈山殿)영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던 영축산의 준말로 부처님의 세계를 상징한다. 영산전은 바로 부처님의 세계이기에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부처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 된다. 거조암 영산전이 바로 부처님의
우직하고 순박한 소처럼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빗속을 소두 마리가 서로를 의지하며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73년 전인 1948년 12월, 기축년(己丑年)을 앞두고 서울 동화화랑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던 화가 정종여가 그린 <기축도(圖)도 1)의 모습이다. 이 그
근대음악문화재에서 찾은 우리의 소리와 역사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된 제797호 『대한제국애국가』(1902년 제작, 2020. 10. 15. 등록)와 제474호 『광복군가집 제1집』(1943년 제작, 2011. 8. 24. 등록)은 모양새의 차이와 41년이라는 제작 연도의
마음이 맑은 사람은아무리 강한자에게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약한자에게도쉽게 휘말리기 마련입니다 당신이 후자이거든 차라리 아무것도보이지 않는 까만 마음이 되십시요 까만 조가비가 수많은 세월동안 파도에 씻기어 하얀 조가비가 되는 것처럼 자꾸만 다듬어 맑음을 이루십시오 맑음이 되려면 먼저최초의 자신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가치관이 분명하고그에 따르는 품행이 명백한 사람은 어느 경우든 자신을 되찾기 마련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를 잃지 않는사람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의젓한
조상님께 새해인사를 드리는 설 차례제례의 절차와 풍습차례는 달이나 계절, 해가 바뀌어 새로운 계절이 찾아왔음을 조상에게 알리면서 계절음식과 명절음식을 올리는 의례다. 설 차례는 설날에 올리는 차례로 새해를 맞아 조상님께 인사를 올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제물로 떡국
잡귀야! 물럿거라! 설날 어린 아이도 원샷하는, 도소주(屠蘇酒)옛 문헌 [고사촬요]의 방식으로 도소주를 재현하는 모습. 오두거피, 대황, 거목, 완계, 천초, 계심 등으로 술을 빚는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는 술술이란 성인들에 한하여 즐길 수
예藝와 흥興, 신명 나는 한국 전통음악에 어우러지다 인간은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일생의 대부분을 소리를 듣고 그 소리에 반응하는 데 할애한다. 세상을 보는 눈은 눈꺼풀을 닫아 보고 싶지 않은 것을 차단할 수 있지만, 소리를 듣는 귀는 뚜껑이 없기에 항상 열려 있다.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에 담은 신라인의 염원과 이상향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경주 얼굴무늬 수막새는 ‘신라의 미소’로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수막새 중에서 유일하게 손으로 빚은 것으로 당시 우수한 와당기술이 집약된 문화재이기도 하다. 1934년 일본인에게
왕의 위엄을 쌓아 올린 한양도성, 오랜 빗장을 풀다닿지 않는 것들은 애틋한 그리움을 만든다. 이는 문화유산이 가진 공통된 가치일 지도 모른다. 닿을 수 없지만 우리에게 남겨진 문화유산을 매개로 그 시대를 더듬어 상상하고 소통하며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그 귀한 가치를 가
언택트 시대의 소통 역사적 인물들의 편지교통이나 통신기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조선시대에 편지는 상대와 의사소통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직접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거리와 시간의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편지는 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수단이 되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