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永川 銀海寺 居祖庵 靈山殿)

영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던 영축산의 준말로 부처님의 세계를 상징한다. 영산전은 바로 부처님의 세계이기에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부처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 된다. 거조암 영산전이 바로 부처님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국보 제14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永川 銀海寺 居祖庵 靈山殿)

영산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했던 영축산의 준말로 부처님의 세계를 상징한다. 영산전은 바로 부처님의 세계이기에 이곳을 참배하는 것은 부처님의 세계를 만나는 것이 된다. 거조암 영산전이 바로 부처님의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은해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1년(809) 혜철국사가 지은 절로 처음에는 해안사라 하였다고 하며 석가모니불상과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창건 뒤 수차에 걸친 화재로 여러 건물이 중창·개건(改建)을 거듭하였으며, 현존하는 가람(伽藍)은 그 대부분이 근세에 건립된 것들이다.

오백나한전으로 더 알려진 은해사 거조암(居祖庵) 영산전(靈山殿)은 국보 제14호이다, 지금도 많은 불자들이 오백 나한상을 만나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 영산전은 고려 우왕 원년(1375)에 처음 지었고,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거조암 일주문을 지나 영산루 아래 계단을 오르면 신라의 삼층 석탑 뒤편에 단아하고 편안하게 자리한 당우가 거조암의 중심 건물이 영산전이다.

앞면 7칸·옆면 3칸 크기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부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영산전은 고려말·조선초 주심포 양식의 형태를 충실하게 보여주고 있어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 영산전은 불규칙하게 채석된 장대석(長臺石)과 잡석(雜石)으로 축조되어 측면 중앙에 간단한 돌계단을 가진 비교적 높다란 기단 위에 선 길쭉한 건물이다. 가구(架構)는 간략한 수법으로 되었으며, 측면 중앙간을 형성하는 두 개의 고주(高柱)와 그 앞뒤의 평주(平柱)에는 뚜렷한 배흘림이 있다.

고주와 평주는 퇴보로 연결되어 평주 위의 공포에 의하여 퇴보 안끝이 받쳐져 이것이 주심도리를 받치게 되고, 출목(出目)으로 된 첨차는 퇴보 끝을 받으면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고주머리에는 뜬창방(昌枋)을 돌리며 기둥 위에는 주두(柱頭: 대접받침)를 두고 역시 포작(包作)으로 대들보 끝을 받아 대들보 끝은 중도리를 받쳤다.


대들보 중앙에는 키가 큰 사다리꼴 부재 위에 이중으로 된 포작을 올려 마룻도리를 받치게 하였다. 이 마룻도리는 역시 안으로 굽은 솟을합장으로 받쳐지고 있고, 천장가구는 전혀 없어 주심포집의 한 특징인 연등천장[椽背天障: 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으로 되었다.


이 건물의 세부를 보면 주두나 소로가 다포집과 같은 형태로 된 것 이외에는 주심포집 양식의 초기적인 형태를 충실히 나타내고 있는 매우 중요한 유구(遺構)이다. 즉 공포의 살미첨차 끝이 거의 수직으로 잘렸고 첨차 하단의 S자형 곡선이 2단으로 꺾인 매우 간단한 선으로 되었으며 대들보 또는 퇴보의 단면이 주심포집 양식의 특징 그대로 되었다.
다른 건물에서는 그 유례를 보지 못하는 이 건물에 있어서의 특징적인 양식으로서는 평주 위에 놓인 공포 형태와 마룻도리 위에 놓인 일종의 포대공의 형태를 들 수 있다.

평주 위의 공포에서 그 살미첨차가 주두 밑 기둥머리에서 나오는 것은 다른 것에서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첨차 밑에 겹쳐 다시 헛초공으로 이 첨차를 받쳐 마치 매우 키가 큰 첨차처럼 되어 있는 것은 특이하다. 이것은 이 출목첨차의 길이가 보통 볼 수 있는 건물의 그것보다 길게 나왔기에 이를 보강하기 위한 특이한 처리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또, 대들보 중앙에 놓여 일종의 포대공으로 된 마룻대공은 높직한 사다리꼴 위에 이중으로 된 포작이 있다. 아래쪽 포작의 첨차는 퇴보 끝의 특이한 형태의 보머리를 거꾸로 한 것 같은 형태로 되었고 위쪽 포작의 첨차는 약간의 변화를 준 역사다리꼴 판상(板狀)으로 되었으며, 이 포대공의 세부는 물론 전체의 형태도 다른 것에서 그 예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 건물의 공포의 형태나 마룻도리를 받는 솟을합장의 곡률[曲率: 굽은 정도]이 작은 점 등으로 보아 적어도 전라남도 강진의 무위사극락전(無爲寺極樂殿, 국보 제13호)보다 오래된 양식임에는 틀림없다.


영산전은 작은 자연석을 자연스럽게 쌓아 올린 축대위에 정면 7칸, 옆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이 있고, 좌우로 두 칸에는 제법 큰 살창이 있다. 옆쪽에는 위, 아래로 살창이 있고, 뒷면에는 작은 살창이 가운데 칸에 하나만 있다. 이것은 산에서 내려오는 찬 기운과 습기를 막는 효과가 있고, 앞쪽과 옆쪽의 너른 창으로 바람이 통할 수 있는 구조다. 팔만대장경을 모신 장경판전이 바로 이러한 구조다.


부처님 좌우로 ㄷ자 형태의 단을 두르고 526분의 석조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그 표정이 각기 다르다고 한다. 모든 나한들에게 이름을 붙였으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일 듯하다. 실제로 이곳을 찾는 이들은 나한마다 놓인 접시에 돈과 사탕, 음식 등을 공양하고 있다. 100원 동전 하나씩 놓아도 52,600원이고 쌀 한줌이라도 적지 않는 양이다. 사탕 하나씩 올려도 몇 봉지는 될 듯하다. 이러한 기도가 1,000년이 넘는 세월을 영산전을 지켜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로 살창을 통해 내부의 나한상을 만날 수 있다.



건물의 기둥은 공포를 하나씩 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공포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느낌을 주고 있다. 공포에는 큰 도리가 길게 올라 앉아 있다.

사람 인(人)자 형태의 맞배지붕 아래 기둥과 들보가 드러나서 단아한 모습이 드러나고 있어서 편안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고려의 건물인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에서도 그러하다.



출입문으로 들어가면 영산법회를 그린 후불탱화 앞에 광배가 있는 석가모니불과 왼쪽에는 미륵보살, 오른쪽에는 제화갈리보살이 계신다.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을 나와서도 작은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았을 뿐이지만 옛 조상의 그 마음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