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으로서의 보존가치를 지닌 남북의 자연유산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참 낯설고 긴 이름이다. 이는 1933년 일제강점 하에 있던 한반도에 처음으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도입된 법령으로 자연유산이 포함되어 있다.

세계유산으로서의 보존가치를 지닌 남북의 자연유산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참 낯설고 긴 이름이다. 이는 1933년 일제강점 하에 있던 한반도에 처음으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도입된 법령으로 자연유산이 포함되어 있다. 6·25전쟁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은 결국 남북이 이념과 사상의 합의를 이루지 못해 분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있지만 전쟁의 포성이 멈춘 때부터 한반도의 자연유산은 평화를 향해 다시 새싹이 움트고 있다. 우리가 그간 갈 수 없었던 북녘의 자연유산은 어떻게 변했을까? 시간을 거슬러 그 제도부터 살펴보자.


01.양강도 이명수 폭포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02.단양군 도담삼봉 전경 ⓒ국립문화재연구소



세밀하게 분류한 자연유산의 제도

남한(편의상 남한과 북한으로 표기)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을 통해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1946.4.29.)」,「보물·고적·천연기념물보존령 시행규칙(1946.4.29.),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 시행수속(1946.4.29.)」을 제정하게 된다. 그리고 1955년에 ‘명승지와 천연기념물을 보호하고 관리하는 데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으니 남한보다 발빠른 행보를 보인 셈이다. 이는 천연기념물 명승제도에 얽힌 일본잔재를 뿌리 뽑고자 하는 북한의 의지표명의 일환이었다.

그러면 북한의 자연유산인 명승지와 천연기념물의 지정대상은 어떨까?

먼저 자연풍치가 전형적이고 희귀하고 독특하며 시공간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지형 또는 지물,

둘째로 정착 또는 희귀동물 가운데서 학술적 및 관상적으로 특이한 종이거나 의의가 있는 동물,

세 번째는 학술적 및 풍치상 고유한 특성을 가진 식물이 해당하고

네 번째는 지리, 지질학적 형성조건과 자기의 고유한 특성을 유지하고 있는 호수, 온천, 화석, 광석, 로두 등을

지정대상에 포함하고 있다(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명승지, 천연기념물 보호법(2011)).


최근에는 문화유물과 자연물로 구분되던 문화재를 ‘민족유산’이라는 명칭으로 통합하여 물질유산과 비물질유산 자연유산으로 구분했다. 물질유산은 현재 남한의 문화유산에 해당하고, 비물질유산은 무형유산, 자연유산은 우리의 자연문화재에 속한다. 특히 민족유산보호법(2015)에서는 명승지와 천연기념물을 통칭하여 자연유산으로 보고 있다.


남한의 문화재보호법에서 자연유산에 해당하는 것은 현재, 기념물의 한 유형으로 속해 있다. 첫 번째, 기념물의 종류에는 사적지와 특별히 기념이 될 만한 시설물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 두번째, 경치가 좋은 곳으로서 예술적 가치가 크고 경관이 뛰어난 명승, 세 번째로 동물(서식지, 번식지, 도래지 포함), 식물(자생지 포함), 지형, 지질, 광물, 동굴, 생물학적 생성물 또는 특별한 자연현상으로서 역사적·경관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천연기념물로 지정 관리된다.


이 중 명승과 천연기념물이 자연유산에 해당된다. 그러나 북한에서 특히 강조하는 역사적 유래에는 우리와 다른 면이 있다. 바로 주체사상과의 연관성인데 위의 기준보다 앞서는 항목이 바로 인간 역사창조물과 혁명전적지, 혁명사적지 등이다. 이는 김일성부자와 관련된 대상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북한이 기존 문화유물보호법(1994)에서 역사유적과 역사유물 위주의 물질유산에서 범주를 확대하여 비물질유산과 자연유산을 별도 독립시킨 민족유산의 도입과 비교해 보면 남한은 최근에 와서야 기존 문화재보호법에서 자연유산을 차별화하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자연유산 조직

북한의 자연유산을 담당했던 국가차원의 기존조직은 문화보존지도국인데 이는 남한의 문화재청에 해당한다. 이 기구 아래 천연기념물 지도처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후 민족유산법으로 개정되면서 관리기구의 명칭도 민족유산보호지도국으로 개정되었다. 남한의 문화재위원회와 유사한 역할을 하는 민족유산보호위원회도 비상설기구로 두고 있다. 북한의 지방조직으로는 지방 행정 및 경제지도위원회와 도천연기념물관리소가 천연기념물을 관리하고 있다. 남한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모두 문화재보호법으로 문화재청이 총괄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에서 해당 문화재의 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향점이 확연히 다른 남북의 자연유산 보존관리

최근 남한에서는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규제만 하는 것에서 탈피해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주 대상으로 떠오르는 것이 자연유산이다. 그럼 다시 북한의 사정을 들여다 보자.


북한 천연기념물의 보호관리에 관한 규정(1990)을 보면 ‘천연기념물들을 잘 보호 관리하고 이용함으로써 나라의 자연풍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며 그들 속에서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교양을 강화하는 데 이바지함’이라 적혀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주체사상 및 사회주의제도가 내면에 깔려 있는 사회주의적 애국주의 교양이다.


또 명승지의 보호관리 및 이용에 관한 규정(1990)에는‘나라의 명승지를 잘 보호 관리하고 이용함으로써 우리 당 자연보호정책의 정당성과 우리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을 내외에 널리 선전하고, 또한 나라의 자연풍 치를 더욱 아름답게 하고 근로자들과 청소년 학생들의 민족적 긍지와 자부심을 높여주며 그들의 문화정서 생활을 보장하는 데 이바지 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나타난다. 이는 체제우상화를 위해 문화예술을 적극 활용하고 이를 위해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을 결합시키는 데 자연을 주체의 요구대로 개조시키고자 했던 정책목표가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에 비해 남한은 천연기념물의 보존관리에 예술적, 경관적, 학술적 가치를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03.동해 해수욕장 ⓒ북경대 세계유산센터   04.하늘에서 바라 보는 진도 바다 길 전경 ⓒ국립문화재연구소



가치를 보존하려는 의지에서 출발한 자연유산 지정현황

남한의 문화재로 지정된 자연유산의 현황은 총 579건 중 천연기념물이 464건, 명승이 115건에 해당한다. 천연기념물 중 동물(101건), 식물(267건), 지질·광물(85건), 천연보호구역(11건)이 차지한다.


북한의 2008년 기준 통계에 의하면 북한의 명승은 223건이고 천연기념물은 469건에 달한다. 북한의 현재 지정건수는 국경폐쇄로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어 확인할 길이 없으나 연대를 거슬러 볼 때 남한보다 지정건수가 상회했음을 알 수 있다. 남한과 비교할 때 북한의 천연기념물은 남한의 명승에 해당하는 명소인 지리적 요소가 천연기념물에 포함되어 있으며 분단 이전 지정된 남한지역의 천연기념물도 현재의 지정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북한의 천연기념물로는 평양시의 산벚나무와 전나무, 옥류능수버들, 김일성이 직접 심었다는 평양 문수봉이깔나무까지 포함되어 있다. 동물로는 수달, 시베리아 호랑이, 사향노루 등이 있으며 북한의 명승지는 조선시대부터 이름난 백두산과 금강산, 묘향산, 칠보산, 구월산 등이 있다. 또 평양과 개성, 원산, 남포, 사리원, 함흥지구 등에 주로 분포되어있다. 최근에는 세계유산등재를 위해 등재기준에 걸맞은 자연유산만을 국제기구 통계자료로 제출하는 경향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남과 북이 아름다운 우리 국토의 금수강산을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는 정책의 목적은 다르다 해도 자원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태도가 동일하다는 것에는 큰 가치가 있다. 남한의 문화재보호법과 문화재 정책은 중국 등 주변 국가에 비해서 강력한 보존관리 체계를 갖춘 것으로 이름나 있다. 북한의 경우도 명승지의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긍정적인 신호로 평가된다.



또 다른 자연유산, 전통정원, 원림

남한 명승의 문화재 지정기준에는 정원, 원림을 지정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최근 자연유산법 제정에 전통 조경이 포함된 것과 관련하여 북한의 2011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으로 채택된 ‘원림법’에는 ‘사람들의 문화정서 생활과 환경보호의 요구에 맞게 여러 가지 식물로 아름답고 위생문화적으로 꾸려놓은 녹화지역’으로 정의하고 있으며(제2조), 원림의 조성과 보호 관리는 전 인민적인 사업으로 사회주의 애국주의 교양을 강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제4조). 북한은 전통 정원을 다른 말로 조선식 공원이라 부르고 있다.


조선식 공원은 우리나라 강산의 아름다운 풍치와 우리 인민의 고유한 문화정서 생활감정이 반영된 자연식 공원으로서 우리 선조들이 먼 옛날부터 정원을 꾸리고 원림을 조성한 전통적인 형성수법을 계승 발전시킨 것임을 밝히고 있다. 특히 북한은 모든 면에서 우리 것을 지키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반면, 북한의 자연유산 정책 내면에 있는 주체사상으로 인한 피해도 뉴스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이 1970년대부터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천연바위 곳곳에 우상화 글귀를 새겨 넣고 있는데 이 때문에 금강산, 묘향산 같은 명산 중에서도 경치가 뛰어난 곳들에는 우상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돌이킬 수 없도록 훼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그간 국토분단을 통한 민족적 단절을 만들어왔다. 서로 다른 역사와 사건을 겪어왔고 당장 공감대 형성도 어렵다. 반으로 쪼개진 국토의 자연유산을 보존하는 데도 목적과 방법이 달랐지만 보존정책의 성과는 모두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남한의 강력한 문화재보호정책은 북한에도 적용가능하다.



유산전문가들은 통일이 되면 한반도가 이어진 자연유산이 최고의 세계유산감이라 했다. 북한이 선행했던 민족유산의 개념도 남한의 자연유산법이 제정되고 나면 남북한의 자연유산보존관리 체제도 비로소 균형을 이루게 된다. 이제 북한도 한 개인을 위해 칭송되는 자연이 아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또 우리나라 찾아올 세계인들을 위해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보존관리 할 책임감을 가지고 서로 합리적인 자연유산 보존과 활용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글, 사진. 신현실(우석대 조경학과 교수,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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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