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암 마애보살상 왜 흰 칠을 하였을까

조선인에게는 익숙했던 하얀 불상

옥천암 마애보살상 왜 흰 칠을 하였을까

짙은 녹음 사이로 형안(炯眼)을 드러낸 순백의 보살상. 옥천암 마애보살상의 이질적이면서도 신비로운 하얀 빛깔은 조선을 찾은 이방인들에게는 생경한 호기심의 대상이었으나 당대 조선인들에게는 당연하고도 익숙한 신앙의 풍경이었다. 단순히 황금빛 도금을 대신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그 자체로 완결된 장엄의 한 형태였을까.



01.옥천암 마애보살상 Ⓒ정진영


북한산 끝자락 홍제천 산책로를 걷다 보면 옥천암의 새하얀 마애보살상을 마주하게 된다.1)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전하는 이 보살상은 조선 시기 어느 시점에 머리카락과 눈, 입술, 보관 등의 장신구를 제외한 몸 전체를 백색 분으로 덧칠했다. 푸른 자연 속 이질적인 흰 빛깔 때문이었을까. 20세기 초 서울을 방문했던 서양인들은 옥천암 보살상의 모습을 사진과 그림에 담았고 그들이 느낀 인상을 글로 빈번히 기록했다.2), 3) “참으로 그림 같다”, “와 볼 만한 가치가 있다”라는 호평과 “부처 같지 않다”, “정신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는 혹평까지, 그들의 감상평은 실로 다양했다.

반면 이런 시선으로 옥천암 보살상을 바라본 조선인의 기록은 좀처럼 확인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당연한 부재일지 모른다. 백색 분으로 온몸을 단장한 불상은 당시 조선 곳곳에 자리했던 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했던 일상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초 사찰 경내를 촬영한 사진에서는 백색 불상과 금색 불상이 한 전각 안에 나란히 봉안된 모습을 어렵지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 유명한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과 불국사의 쌍둥이 금동불상, 옥천암 보살상과 자주 비견되는 보타사의 마애보살상 모두 한때는 백색을 띠고 있었다.

02. 1901년 E. Burton Holmes 촬영 사진 ⒸE. Burton Holmes, Burton Holmes Lectures 10, 1901, p. 87

03. 1925년 Elizabeth Keith 채색목판화 Ⓒ국립문화유산연구소, 『미국 오리건대학교 조던슈니처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2015, p. 156


언젠가부터 우리는 불상에 칠해진 흰 가루를 ‘호분(胡粉)’이라고 불렀다. 또한 조개나 굴 껍데기를 풍화시켜 얻은 것으로 이해해 왔다. 그러나 18세기 실학자 이덕무(1741~1793)는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합분(蛤粉)’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중국 명대 기술서인 『천공개물(天工開物)』은 납으로 만든 백색 분을 호분이라 적었다. 오늘날의 이해와는 사뭇 다른 셈이다. 이 흰 가루는 아교액에 개어 다채롭게 쓰였다. 그림과 그릇의 문양 안료로, 단청의 바탕칠로, 불상 도금 전 밑작업 재료로도 활용됐다. 그리고 그 쓰임은 점차 불상의 외부 장엄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옥천암 보살상의 경우, 고종의 모친 여흥부대부인 민씨(1818~1898)가 아들 즉위 후 치성을 드리며 흰 칠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구전일 뿐이다. 한편 흥미롭게도 18~19세기 한양의 풍경을 담은 〈해동지도〉(1750년경)와 〈동국여도〉(1800~1820년경) 속 옥천암 보살상의 모습은 지금과 다를 바 없이 새하얗다.4) 만약 이들 지도가 당시의 경관을 비교적 충실히 반영한 것이라면, 백색 불상의 전통은 우리가 생각해 온 것보다 훨씬 오래되었을 개연성이 크다.

         04, 05. 〈해동지도〉, 〈동국여도〉 속 옥천암 마애보살상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백색 분칠은 유독 돌이나 금속으로 만든 불상에서 성행하였다. 목조·소조 불상에는 금칠이, 석조·동조·철조 불상에는 백색 분칠이 선호되었던 것이다. 그 차이는 불상의 재료가 지닌 물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도금은 단순한 장엄을 넘어 불상을 안정적으로 보존하기 위한 사실상 불가피한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금박에 앞서 여러 번 덧발라진 옻칠은 습기와 해충으로부터 불상을 오래도록 지켜주었다. 반면 석조나 금속제 불상에는 이런 처리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았다. 이에 공정이 간단하고 비용은 적게 들면서도 외관은 말끔하게 유지할 수 있었던 백색 분칠이 자연스럽게 선택되었을 것이다.

이 흰 칠은 시간이 흐르며 도금에 버금가는 공덕을 쌓는 행위로 자리를 잡았다. 19세기 승려 의룡 체훈은 부처님의 몸을 황금이나 백분으로 장엄하는 일을 무루공덕(無漏功德)이라 기록했다. 20세기 초 한국을 찾았던 외국인들 역시 조선에서는 공덕을 쌓는다는 명목으로 20~50년 주기로 불상에 호분이나 금박을 덧칠하는 관행이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오늘날 백색 분칠은 불상의 원형을 훼손하는 요소로 간주되어 적극적으로 제거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불상 장엄사(莊嚴史)의 한 시대를 증언하는 흔적이라는 사실까지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옥천암 보살상은 특별하다. 여전히 아름다운 흰빛을 유지한 채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전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랜 정성이 실제로 공덕을 일으켰던 것일까. 옥천암의 하얀 보살상은 영험함의 전승을 형성하며, 4대 관음 도량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수많은 신자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참고문헌
곽동해, 「조선왕실 전통채색재료 고찰」, 『아시아민족조형학보』 24, 2023.
한국미술사연구소, 『옥천암』, 2011.  출처 : 정진영(국가유산청 부산항 문화유산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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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