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자리에서 만나는 기쁨 보물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죽은 자가 저승에서 시왕에게 지은죄를 재판받고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삼장보살의 구원을 비는 저승에서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어 명부계 불화의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본래 자리에서 만나는 기쁨 보물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죽은 자가 저승에서 시왕에게 지은죄를 재판받고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삼장보살의 구원을 비는 저승에서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어 명부계 불화의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삼장보살의 배치뿐만 아니라 한 화면에 시왕의 무리와 지옥의 장면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전례 없는 화면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유일무이한 화면구성과 풍부한 도상을 담고 있어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좋은 소재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 불화이다.


               00.보물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

환지본처(還至本處)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환지본처된 문화유산 중 하나로 1989년 6월 비바람이 불던 어느 날, 예천 보문사의 전각 내에 2점의 불화와 함께 도난당했다. 다행히 수년이 지나 한 사립박물관 수장고에서 발견되어 2014년 8월 회수되었고, 이후 여러 절차를 거쳐 2017년 예천 보문사로 돌아와 보물로 지정되었다. 산속의 사찰들은 도시에 비해 인적이 드물고 전각들은 개방되어 있어 문화유산 절도범들의 주 표적이 되었다. 특히 불교회화의 경우는 장황된 부분과 틀을 남겨 놓은 채 그림 화면만 오려서 접거나 말아 부피를 줄일 수 있고 비교적 가벼워 많은 도난 피해를 입었다.

2010년대에는 적극적인 도난문화유산 환수가 이뤄져 2014년에 조계종 총무원과 서울지방경찰청의 공조수사를 통해 도난문화유산 48점이 회수되었으며,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도 이때의 성과 중 하나였다.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아미타불회도와 함께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불화는 절도 당시 그림 화면만 오려가는 바람에 화면 네 변의 부분이 약간 잘렸다. 특히 불화 제작 명세서라 할 수 있는 하단의 화기가 많이 잘렸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잘려나간 화기 일부의 ‘정해(丁咳)’라는 간지명과 1999년에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에서 발간한 『불교문화재 도난백서』의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 제작시기를 통해 1767년에 제작된 불화임을 알 수 있다.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불교에서 죽은 자들이 가는 세계인 명부를 주제로 표현한 불화이다. 화면에는 명부 관련 장면이 화면 가득 묘사되어 있는데, 성곽과 나무, 구름을 활용하여 장면을 구분지어 많은 이미지들의 등장에도 정리된 느낌을 준다.

화면을 상·하로 구분하여 상단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한 세 보살과 하단에는 좌측의 시왕 무리와 우측의 지옥 장면으로 나눠볼 수 있다. 상단에는 중앙의 스님 모습을 한 지장보살과 좌측에 지지보살, 우측에 천장보살이 있는데, 이 세 보살을 주인공으로 한 불화를 삼장보살도라고 한다. 현전하는 우리나라 삼장보살도는 천장보살을 중심으로 양 옆에 지지보살과 지장보살의 배치가 나타난다. 반면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지장보살을 중앙에 배치하여 다른 두 보살보다 위상을 강조하여 크기와 광배의 표현을 달리하였다. 이와 같이 동일한 주제의 불화에서 주인공인 존상의 배치가 바뀌어 등장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아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다른 삼장보살도와 주요 존상인 삼장보살의 배치를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 주요한 특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삼장보살 중 주존인 지장보살은 색색의 마름모 문양이 가득한 원형의 광배를 뒤로 하고 청색의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좌우의 보살에 비해 크기가 크게 묘사되어 마치 구름을 타고 앞으로 나온 듯한 원근감을 준다. 오른손을 들어 보주를 쥐고 있으며 가사자락에 가득한 문양과 영락, 금구장식 등으로 화려함이 느껴진다.

협시는 지장보살의 지물인 석장을 쥔 도명존자와 우측에 합장한 무독귀왕이 시립하여 있다. 좌측의 지지보살은 녹색천의를 걸치고 지물 없이 녹색의 연화대좌에 앉아 있다. 옆에는 치전장식이 달린 천의를 입은 천녀들이 합장한 채 서 있다. 우측의 천장보살은 옅은 청색의 천의를 걸치고 오른손에 경권을 들고 녹색의 연화대좌에 앉아있다. 좌우에는 원유관을 쓴 인물이 시립하고 있는데, 각자 개성을 가진 표현과 디테일이 담겨 있다.

화면 아래 우측에는 병풍을 배경으로 시왕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명부에서 죽은 이들이 살아생전 쌓은 죄업에 대해 논하고 있다. 그 앞에는 녹사가 판관과 함께 동자들의 보조를 받으며 바삐 시왕들의 판결을 기록하고 있다. 화면 가운데의 성곽문을 통과하여 좌측으로 시선을 이동하면 말을 탄 사자가 죄인의 머리채를 잡고 달리고 있다. 말 그대로 죄인은 이제 지옥문을 입성한 셈이다. 이 죄인이 앞으로 어떤 지옥에서 형벌을 받을지 화면에 펼쳐진 지옥들을 구경해 보자.

화면 아래부터 도(刀)산에서 온몸이 찢기는 도산지옥(刀山地獄), 펄펄 끓는 가마솥에 삶는 확탕지옥(鑊湯地獄), 망자를 철상에 눕혀 몸에 징을 박는 철정지옥(鐵釘地獄), 죄인을 나무판 사이에 넣고 톱으로 신체를 자르는 거해지옥(鋸解地獄), 쇠절구에 망자를 넣고 빻는 춘마지옥(椿磨地獄)이 있다. 시왕들이 다스리는 여러 지옥 중 5가지 지옥을 화면에 도해하였다. 각 지옥에서 형벌받는 인간은 벌거숭이로 피를 뿜어내며 고통받고 있는데 직관적인 표현으로 육신의 고통이 더욱 낱낱이 전해지는 것 같다.

묘사된 각 지옥들의 모습은 명부신앙 관련 불교 경전에 나오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중 확탕지옥을 예로 들자면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제5 지옥명호품(地獄名號品)」의 “…가마의 끓는 물에 죄인의 몸을 삶는다…”와 『불설죄업응보교화지옥경(佛說罪業應報敎化地獄經)』의 “…어떤 중생들은 항상 끓는 솥 속에 있게 되며 우두아방이 세 갈래 창으로 끓는 솥 속에 사람들을 붙잡아 넣고 끓여 흐물흐물하게 만들고…”가 있다.

이 경전들의 내용에 따라 확탕지옥이 묘사된 것이다. 또한 경전에서는 “전생에 그릇된 견해를 믿고…중생을 도살하여 끓는 솥에 넣고 졸이고 삶고 하는 일이 한량없었기 때문에 이런 죄를 얻게 된 것이다”라며 지옥에 가게 된 죄업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한 화면에 시왕의 무리와 지옥의 장면을 함축적으로 표현하여 전례 없는 화면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화면구성으로 예천 보문사 삼장보살도는 앞선 기록에서 감로도, 지장보살도 등 다양한 명칭으로 소개되었다. 그만큼 유일무이한 화면구성과 풍부한 도상을 담고 있어 무엇을 우위에 놓고 보는지에 따라 명칭이 달라질 소지가 있는 불화이다. 죽은 자가 저승에서 시왕에게 지은 죄를 재판받고 지옥에서 고통받으며 삼장보살의 구원을 비는 일련의 저승에서의 과정을 모두 담고 있어 마치 명부계 불화의 종합세트라 할 수 있겠다.   글. 박진희(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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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