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의 전국 3대 실력 항쟁지 안성

기미년 4월 1일 안성은 이미 2일간의 해방을 쟁취했었다.

3.1운동의 전국 3대 실력 항쟁지 안성, 2일간의 해방
기미년 4월 1일 안성은 이미 2일간의 해방을 쟁취했었다.

안성 사건으로 크게 알려졌던 안성의 4·1만세 항쟁으로 쟁취한 2일간의 해방을 다시 한번 느껴보자. 103번째 맞이하는 삼일날 아침에 기자가 찾은, 원곡 만세 광장과 만세고개의 3.1기념관은 이슬비가 촉촉히 내리고 있었다,

​​안성지방의 만세운동은 1919년 당시 3.1운동 중에서도 평안북도 의주군 옥상면과 황해도 수안군 수안면과 더불어 전국 3대 실력 항쟁지 중에서도 가장 으뜸가는 치열한 항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안성지방의 3.1만세운동 현황은 1914년 일제에 의해 강행된 부군면통폐합(府郡面統廢合)으로 안성군, 양성군, 죽산군의 3개군을 하나로 묶어 안성군으로 만든 지역으로서 3월부터 4월까지 안성의 곳곳에서 독립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현재 안성에서는 원곡면, 양성면의 만세운동을 '4.1만세 항쟁'으로 부르고, '2일간의 해방'으로 기념하고 있다.


          안성의 양성, 원곡 4.1만세항쟁 『2일간의 해방』을 이루었던 선열들의 뜻을 계승하기 위해

          2001년 양성면과 원곡면의 경계에 3.1운동 기념관을 건립하였다.  


                                      궂은 날씨 속에서 기념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기념관에는 독립유공자 훈장전이 3. 1 ~  8. 31까지 열리고 있다

 

                         태극기 마다 한맺힌 역사가 어려 있다.  전시관 올라가는 길에  설명과 함께 전시되고 있다.


                                                                            원곡의 만세광장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발발한 지 열흘 후인 3월 11일, 양성 공립보통학교에서 보성전문학교 학생인 고원근이 주도하여 조회 시간에 학생들에게 만세를 부르게 했다. 그 이후 3월 25일엔 양성 학생들의 만세운동으로 인해 원곡면에서 만세운동으로 이어졌고, 3월 28일부터는 가까운 동리와 칠곡리 등지에서 주민들이 외가천리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벌였다. 특히 의병항쟁으로는 독립협회에서 활동하던 시내 임근수· 김명기, 보개면의 강태영, 공도면의 오인근, 양성면의 오장환 등이 항일독립투쟁을 전개하였다.

4월 1일엔 양성면 지역에서 동리 단위로 만세운동이 벌어졌는데 덕봉리에서는 이날 밤 약 200명이 동리산 위로 올라가 독립만세를 부르고 산정리에서는 저녁 행길에서 만세운동을 벌이는 등 산발적인 만세운동이 행해졌다.

이렇게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전개된 원곡면과 양성면에서의 산발적인 만세운동은 지식인이 아닌 이유석· 홍창섭· 이근수· 이덕순· 최은식· 이희룡 등 농민들의 주도로 2,000여 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독립항쟁을 전개하여 이날 4월 1일 밤 8시 양성면, 원곡면 연합시위대가 만세고개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양성면에 있던 경찰주재소, 면사무소, 우편소로 몰려가 돌을 던지고 서류, 집기, 일장기를 불태우고, 일본인 상점 및 고리 대금업자의 집을 파괴하는 등 적극적인 실력항쟁을 펼쳐 일제의 통치기관을 무력화시켜 일본인들을 몰아내어 전국에서 최초로 2일간의 해방을 쟁취한 역사적인 만세운동이였고, 순국과 옥고를 치른 분들의 수가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127명의 희생자가 발생 되었다.


당시 발행되던 동아일보, 매일신보, 조선일보는 원곡, 양성면의 만세운동을 「안성사건」이란 토픽으로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했었다. 이는 다른 지역의 3.1운동 소식에 견주어 볼 때 그만큼 큰 사건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미 독립선언문이 선언된 지 103주년이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이 역사에 대한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세계정세도 바뀌고 있다. 103년 전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독립항쟁을 일으키고 2일간의 해방을 맞이했던 그 감격의 기쁨과 고난이, 새로운 역사가 탄생 되고 있는 지금 모두 함께 그날의 항쟁을 되새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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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