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감은사와 용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때로는 너무 파고들다 보면 더욱 어려울 때가 있다.

감은사와 龍


지난 11월 23일자 호국의 상징 경주 문무대왕릉에 이어 두번째 유적지가 감은사다.

 
어느 날 동해 바다가 넘쳐서 감은사 뜰 앞까지 밀려왔다가 물러났다고 한다. 경덕왕이 고승 法海에게 법력을 보여 달라고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법해는 滄海(창해)를 기울려서 동악(토함산)을 물에 잠기게도 할 수 있다고 했다. 임금은 농담인 줄 알았지만, 감은사의 물 사건 이후로는 법해를 믿고 공경하였다. 이것이 754년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감은사 금당까지 평소에는 물길이 닿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바닷물이 금당까지 연결이 되어 용이 드나 들었다고 본다.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려고 감은사를 처음으로 창건하였다. 그러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그는 죽고 말았다. 그리고는 동해의 용이 되었다. 그의 아들 신문왕이 682년에 불사를 마무리 하였다. 금당 앞 섬돌 아래에 동쪽을 향하여 구멍을 만들었다. 그곳으로 용이 절에 들어 올 수 있게 하였다. 이것이 삼국유사에 남겨진 기록이다.

지금 감은사의 대지는 해수면과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가 있다. 금당 앞 쌍탑을 볼 때 터는 분명 그 시대의 것으로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후세 사람들은 바닷물과 금당의 물을 억지로 맞추려고 하니 맞아 들어갈 리가 없다.

그러기 전에 용의 생태를 먼저 알아보자. 물론 상상의 동물이지만 그나름 대로의 본래 습성은 가지고 있는것이다. 용은 우선 양서동물이다. 물이고 뭍이고 마음대로 숨을 쉴 수가 있다. 그리고 용은 날개가 없지만 공간을 초월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에 특별한 신기를 달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동해 용이 된 문무왕이 대종천을 헤엄쳐 거슬러 올라왔다. 다시 금당까지는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갈 수가 있다. 용은 12지 중에서 동남 방위이니까 금당의 동쪽으로 구멍을 낸 것이다. 그리고는 구름도 타고 몰고 다니면서 어디라도 갈 수가 있게 하였다. 그것이 지금의 감은사 구조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때로는 너무 파고들다 보면 더욱 어려울 때가 있다. 마태복음에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깨달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 각자의 견해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또한 설사 이해했다 해도 어떤 자는 쉽게, 어떤 자는 어렵게 이해하고 심지어 이해가 아닌 오해나 착각에 빠지는 자도 있다고 하였다. 글 정태상 / 사진 유시문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