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악새는 슬피 울고

우리의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로만 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이 땅에 태어나 자란 억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핑크뮬리에 밀려나 천대받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억새는 오늘도 스산한 바람에 허리를 굽히며 구슬프게 울고 있는 듯 하다.

오늘날과 같은 현상을 보고 자라는 어린 세대들에게는 핑크뮬리가 마음 속에까지 심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프다.

첨성대에는 요즘 많은 사람들이 핑크뮬리의 장관을 보려고 몰려들고 있다. 첨성대와 핑크뮬리. 이 말 자체가 벌써 조합이 되기에는 퍽 어색한 느낌이 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를 놀라게 하는 세상에 천 년 묵은 첨성대 옆구리에 핑크뮬리가 들러붙었다. 이것도 잠시 유행이라 생각하고 울분을 달래본다.



핑크뮬리는 핑크뮬리그라스에서 나왔다. 우리 말로 하자면 털쥐꼬리새, 분홍억새 또는 분홍쥐꼬리새라고 부른다. 원래 미국 서부와 중부가 원산으로 따뜻한 지역의 평야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외떡잎 식물로 벼목 벼과에 속하니까 갈대와도 가까운 사이이다. 자연적으로 연한 분홍빛을 띠며 멀리서 보면 분홍빛의 자연스러운 물결을 이루는 것으로 보여서 인기가 많다.

그러던 것이 2014년 제주도 휴애리 자연생태권원에서 핑크뮬리를 처음으로 식재했고, 서울에서는 2018년 양재천에 핑크뮬리 정원이 만들어졌다. 그 후로 순천만국가정원과 공주 유구천변으로 합천 황강나루길 수변공원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생물다양성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실시한 외래 생물에 대한 생태계 위해성 평가 결과에서 핑크뮬리가 생태계 위해성 2급으로 평가되어 정부차원에서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위해성은 3개 등급으로 나누는데, 1급 생물은 '생태계교란생물'로 수입, 유통, 재배 등이 금지되며, 2급은 당장 생태계에 미치는 위해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향후 위해를 줄 수 있는 생물로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한 생물을 말한다. 또 3급의 경우 위해도가 낮아 관리대상이 아니다.

반면에 우리의 억새도 알고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갈대가 전 세계 온대 지역에 고루 분포한다면 억새는 우리나라와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사는 풀이다. 주로 산이나 들처럼 건조한 곳에서 무리 지어 자란다. 간혹 물가에 사는 억새도 보이는데 이는 억새와는 다른 '물억새'라는 종이다. 꽃은 줄기 끝에 부채모양으로 달리고 은빛이나 흰색을 띠고 있어서 갈색 꽃인 갈대와 구별이 된다.

환경적응력이 뛰어난 억새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 대규모로 수확할 수 있고 줄기에 많은 양의 탄소를 저장하는 특징이 있다. 다른 바이오매스 식물보다 더 저렴하고 환경에 미치는 나쁜 영향도 줄일 수 있어서 가장 유망한 바이오에너지 작물로 연구되고 있다. 최근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전 세계 각국이 탄소 배출량을 즐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한편 갈대는 그 나름의 특징이 있다. 갈대와 억새는 모두 벼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이다. 생김새도 비슷한데다 심지어 꽃이 피는 시기가 비슷해 얼핏 보아서는 구분하기가 어렵다. 갈대와 억새를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서식지이다. 갈대는 강가나 습지처럼 물이 있는 곳에서 무리지어 자란다.

산에서 갈대와 비슷한 식물을 보았다면 이는 확실히 갈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갈대는 쓰임새가 많다. 어린 순은 나물로, 이삭은 빗자루, 이삭의 털은 솜을 대신해 쓰이고 종이를 만드는 펄프의 원료로도 사용한다. 무엇보다 갈대는 물을 깨끗하게 정화 시키는 식물로 유명하다. 질소나 인 등 오염 물질을 빨아들여 잎과 줄기에 저장하고 구리나 카드뮴, 납 등의 중금속은 뿌리에 모은다. 덕분에 주변 오염을 줄이고 토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처럼 깊은 뜻을 몰라주고 알록달록한 핑크뮬리에 빠져서야 되겠는가. 억새를 첨성대 옆에 심어 기러기가 쉬어갈 정도로 가꾸어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우리의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말로만 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저 울고 있는 으악새를 달래보자. 정태상ⓒ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