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11 - 가평 이화리

'이 화로 누구 것이오?', 가평 이화리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11 - 가평 이화리

우리나라 곳곳에는 다양한 이름의 마을들이 있다. 그 마을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서로 다른 도시에 똑같은 동 이름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한 인물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지명을 낳기도 했다.

지명의 유래를 유형별로 나누어 그중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지명들을 살펴보았다.

“부자” 는 어떻게 부자가 되는가?
예부터 발복지지(복을 받는 곳)와 금시발복(이번 생에 복을 받는 것)은 모든 사람의 염원이었다. 그래서 마을 지명 중에는 부자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있다.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꿈에서 만난 여인이 자기 발을 묻어달라고 하여 시신을 묻고 제사까지 지내준 황씨는 경기도 가평군 이화리에서 황금화로를 얻어 부자가 된다. 스님의 말에 따라 황폐한 억새밭을 일구던 여씨는 금덩이를 발견한다. 하지만 그는 금덩이를 가지지 않고 절에 전해주었고, 여씨가 일군 밭에 사람들이 와서 잘살게 되니 이곳이 광주광역시 광산구 산막동 보화마을이다. 지나가던 지관의 도움으로 아버지의 묫자리를 잘 써서 부자가 된 김씨도 있다. 김씨는 울산광역시 남구 흥성구만에 청어떼가 몰려와 구만석 부자가 되었다. 이 이야기들은 결국 마음보를 잘 써야 부자가 된다는 교훈을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자라도 마음보를 나쁘게 쓰면 망한다는 교훈이 담긴 지명도 있다. 천석 부자였으나 스님에게 시주하지 않고 편하게 돈 벌 궁리만 했던 부자 서천식은 망했고(충북 청주시 사창동 천석골), 집에 손님이 너무 많이 와서 밥 차리는 게 힘들었던 박수인의 며느리(강원도 횡성군 횡성읍 입석리)와 홍개(세종시 금남면 홍개터)는 소원대로 손님도 사라지고, 재물도 함께 사라져 집안이 망한다. 이와 반대로 욕심쟁이 부자가 어느 날 깨닫고 돈을 나누어준(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비포) 이야기도 전한다. 결국, 부란 이웃과 나눌 때 영원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이다.


'이 화로 누구 것이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는 장승고개 아랫마을이다. 황 씨가 꼴을 베고 오다가 어떤 여인을 만난 꿈을 꾸었다. 그 여인이 시신이 묻힌 곳을 알려주며 발이 밖으로 나와 있으니 제대로 묻어달라고 부탁했다. 황씨는 제대로 묻고 제사까지 지내주었다. 그랬더니 황금화로를 받게 되었다. 혹시 화로 주인이 있지 않을까 싶어 “이 화로 누구 것이오?” 외치고 다녔는데, 여기서 '이화리’라는 마을 이름이 유래했다.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황 씨는 황금화로를 팔아 황부자가 되었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이화리는 가평읍에서 10리가량 떨어진 북한강가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는 염창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는데 염창(鹽倉)은 나룻배들이 소금을 실어 보관하던 창고를 말한다. 이 염창마을의 지명 유래담이다. [가평군지]에 '은혜 갚은 원혼'이라는 제목으로 전하는 이야기다.


옛날 가평읍에 황 씨가 살았다. 황 씨의 조상을 모신 선영(先塋)은 염창 마을 근처에 있었다. 황 씨가 선영에 가려면 장승 고개를 넘어야 했다. 어느 날 황 씨는 기르는 소에게 먹이를 주려고 선영이 있는 산에 가서 꼴을 베었다. 황 씨가 꼴을 한 짐 베어놓고 조상의 묘소를 살피러 갔다 왔더니 누군가가 자신의 꼴짐을 지고 장승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황 씨는 그를 따라 급히 장승 고개로 올라갔다. 장승 고개에 올라보니 꼴을 지고 온 사람이 꼴짐을 게워놓고 쉬고 있었다. 그런데 꼴을 지고 올라온 사람은 놀랍게도 하얀 소복을 입은 여인이었다. 황 씨는 그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 “부인은 뉘시온데 이토록 고마운 일을 하시었소. 우리 집이 저 아래이니 같이 가서 저녁이나 들고 가시지요?” 그런데 여인의 말이 의외였다. “저는 이 고개에 사는 여우인데 내일이면 백 살이 됩니다.” 황 씨는 갑자기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면서 간신히 입을 뗐다. “그런데 왜 힘들게 남의 짐을 지고 오셨소?” “부탁을 드리려고요.” “무슨 부탁인지요?” “이 고개 밑에 가면 여인의 시신이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묻지 못해 발이 밖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 시신을 잘 묻어주십시오.” 황 씨가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보니 꿈이었다. 황 씨가 자신의 꼴짐을 작대기로 게워놓은 채 고개 위 서낭당 앞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이 화로 누구 것이오?', 가평 이화리


황 씨는 혹시나 해서 꿈속에서 여인이 알려준 장소로 가 보았다. 과연 그곳에 여인의 시신이 아무렇게나 흙으로 덮여 있는데, 두 발이 흙 밖으로 나와 있었다. 황 씨는 그 시신을 정성껏 잘 묻어주었다. 그리고 절을 하며 제사까지 지내 주었다. 그 일이 있은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황 씨는 선영으로 성묘를 가다가 장승 고개 위에서 쉬게 되었다. 쉬면서 보니 무언가가 길 옆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다가가 자세히 보니 번쩍이는 물건은 금으로 만든 화로였다. 황 씨는 금화로를 가지고 선영으로 가서 벌초를 하고 선영 밑의 마을에 가서 화로주인을 찾았다. “이 화로 주인 있소? 이 화로 누구 것이오?” 그렇게 소리치며 마을을 돌아다녔지만 화로의 주인이라고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황 씨는 화로의 주인이 나서지 않자, 화로를 팔아 부자가 되었다. 가평에서 황 부자로 이름난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나중에 황 씨가 살던 마을을 황천골이라 하였고, 그의 선영 아래 염창마을은 이화리라 하였다. “이 화로 누구 것이오?”라고 황 씨가 외쳤다고 해서 ‘이화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마을공동체의 훈훈한 정을 담은 내용이다. 후일담에 이화리는 이화낙지형(梨花落地形)의 명당이어서 이곳에 묘를 쓰면 훌륭한 인재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보태어졌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 마을에 더 좋은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마음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참조 이학주 가평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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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