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2 – 아산 회룡리

마을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회룡리

알고 보면 더 재미있는 지명의 유래 2 – 아산 회룡리

우리나라 곳곳에는 다양한 이름의 마을들이 있다. 그 마을에는 각각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
서로 다른 도시에 똑같은 동 이름이 있는가 하면, 역사적인 한 인물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새로운 지명을 낳기도 했다.  지명의 유래를 유형별로 나누어 그중 비슷한 이야기를 가진 지명들을 살펴보았다.

동물 유래 지명 중 으뜸은 환상의 동물 "용“


지명에 얽힌 이야기 중에는 식물보다 동물에 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중에서도 현실에는 없는 상상의 동물 용에 관련된 마을이 많다. ‘룡’이나 ‘용’이 붙은 지명에는 전부 용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있다. 경북 경산시 용성면의 구룡마을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간 전설이 있고, 충남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는 마을의 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마을이다. 전북 군산시 고룡동 용당포는 용이 승천하면서 만든 바다이다. 용이 되기 전의 상태를 이무기라고 하는데, 이무기 관련 지명도 있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뱀사골은 이무기가 용이 되지 못하고 죽은 골짜기이고, 경남 하동군 진교면은 고관대작의 딸들에게 해코지하는 이무기를 용으로 만들어 화를 면한 마을이다.

마을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회룡리

조선 1400 년대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을에 절터가 있는데, 이곳에는 하늘에서 잘못을 저질러 지상으로 내려온 황룡이 살고 있었다. 황룡은 절터와 마을 사람들을 보호하며 3년을 살면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하루는 세종대왕과 그 일행이 온양온천을 가는 도중 길을 잃고 헤매고 있을 때 농부로 변신하여 도와주었다. 그러나 절터를 벗어나지 말라는 계율을 어긴 탓에 이무기로 변했다. 이 소식을 들은 세종대왕이 절을 다시 짓게 했고, 하늘에서는 황룡에게 다시 절터로 가서 지내도록 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황룡이 다시 돌아온 것을 기념해 회룡리(回龍里)라 이름 붙였다.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회룡리 마주봉 뒤에는 절터골이 있는데, 절이 언제 창건되고 폐사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옛날 이곳 절터에 절이 자리하고 있을 때, 커다란 황룡 한 마리가 살고 있었다. 황룡은 승천하려고 때를 기다리는 보통의 용과 달리 원래 하늘에 있었으나 잘못을 저질러 이곳으로 쫓겨난 용이었다. 황룡은 자신이 잘못하여 지상으로 쫓겨났기에 그 누구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았다. 하늘에서 시키는 대로 지내면 언젠가는 하늘로 다시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늘에서 정해준 일이란, ‘절터에서 지내며 3년 동안 마을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한편 모든 재앙으로부터 마을 사람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다. 이에 황룡은 마을에 전염병이 들어오면 그것을 물리쳤고, 마을에 가뭄이 들면 조화를 부려 비를 내리게 했다. 그리고 마을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것을 극복하려고 마을 사람보다 더 열심히 노력했다.

마을수호신 황룡이 다시 돌아온 회룡리


그러던 어느 저녁, 붉은 해가 서산을 넘어갈 무렵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세종대왕 일행은 온양온천으로 가다가 큰 소나기에 길을 잘못 들어 헤매고 있었다. 세종대왕께서는 한글 창제를 비롯한 많은 일을 하시느라 책을 너무 많이 봤던 까닭에 눈병에 걸려 치료 및 휴양을 위해 온양온천으로 오던 길이었다. 세종대왕 일행은 오랫동안 빗길을 걸었기 때문에 몹시 지쳐 있었다. 이런 딱한 사정을 본 황룡은 농부로 변신하여 세종대왕 일행을 온천가는 길로 안내하였다. 덕분에 세종대왕 일행은 온양온천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그러나 황룡에게는 어려운 일이 생겼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터를 떠나서는 안 된다!’라는 불가의 계율을 어겼기 때문에 용은 다시 절터로 돌아갈 수 없었다. 게다가 3년이 지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황룡은 이무기가 되어 온양온천 옆 용화리에 살아야만 했다.

온양온천에서 눈병을 치료한 세종대왕께서 한양으로 돌아가다가 이 소문을 들었다. 이에 세종대왕은 “그렇게 비가 오는 날 짐과 일행을 위해 황룡이 도와줬는데, 오히려 벌을 내리면 도리가 아니지 않느냐! 그러니 절터에 절을 크게 지어 황룡이 머물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구나.” 했다. 신하들은 웅장한 절을 다시 지었다. 하늘에서 이를 보고는 이무기로 변한 황룡을 다시 용으로 되돌리고 절터로 돌아가 절과 마을을 돌보도록 했다. 황룡이 다시 돌아와 마을을 보호해 준다는 소식에 모두들 기뻐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수호신인 황룡이 다시 돌아온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회룡리(回龍里)라 불렀다. 세종대왕의 안질을 치료하고 황룡이 절을 지키며 마을을 수호한다는 소문을 들은 전국의 많은 환자들이 온양온천에 왔다가 꼭 회룡리 절터에 다녀갔다. 그럴 때마다 황룡은 환자들의 정성과 기도를 듣고 병을 치료해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3년이 지나 황룡이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간 뒤로부터는 많은 기도를 올려도 효험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맞아 절은 모두 불에 타서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을 뿐이다.   참고자료 : 이영식 온양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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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