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기 선율에 몸도 맡기고, 흥도 맡기고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국악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야금, 해금, 피리에 주목한다. 대중이 연주와 음원을 통해 자주 접하고, 듣고, 느꼈던 악기들이라 공감이 쉽고, 흥겹기 때문이다.

국악기 선율에 몸도 맡기고, 흥도 맡기고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국악기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야금, 해금, 피리에 주목한다. 대중이 연주와 음원을 통해 자주 접하고, 듣고, 느꼈던 악기들이라 공감이 쉽고, 흥겹기 때문이다. 각각의 산조를 감상하다 보면 매력적인, 중요한 ‘흥’의 포인트가 있다.


국보 《신윤복 필 풍속도 화첩》중 〈청금상련〉 부분 ⓒ문화재청



멋과 흥의 악기, 가야금

첫 번째로 살펴볼 악기는 가야금이다. 우리 전통의 산조 가야금은 12줄이다. 이와 달리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경우는 개량 가야금인 25현 가야금을 주로 사용한다. 피아노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또한 가야금 설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현을 받치는 기러기발 모양의 나뭇조각인 ‘안족(雁足)’이다. 여기서 ‘안’자가 바로 ‘기러기 안(雁)’자이다. 독특한 것은 이 안족이 악기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른손이 현을 뜯거나 튕길 때 안족들이 각각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고정된 음을 이탈하게 되는데 이때 왼손은 쉴 새 없이 안족들을 옮겨가며 음을 맞추게 된다. 가야금 연주를 감상할 때 연주자의 오른손과 왼손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기러기’일까? 기러기는 한 번 짝짓기를 하면 평생 그 짝과 지내며 한쪽이 죽으면 남은 기러기는 죽을 때까지 정조를 지킨다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종종 관객에게 “안족문화재청은 연주자가 누르고 있는 현을 죽을 때까지 충성으로 받치겠다는 뜻을 품고 있다”라고 설명한다. 가야금의 몸통은 울림이 좋고 재질이 부드러우면서 공명이 잘되는 오동나무로 만든다. 산조 가야금은 크게 앞판과 뒤판으로 구성되는데, 뒤판에는 울림통이라는 것이 직사각형 형태로 넓게 뚫려 있어서 보통 가야금을 오른손으로 들고 이동할 때는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을 울림통 안으로 넣어서 들고 이동하게 된다. 그래서 가야금 케이스도 울림통에 맞춰 위아래로 소폭 개방되어 있다.

02.보물 《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중 〈무동도〉 ⓒ문화재청

03.국가무형문화재 대금정악 합주 장면 ⓒ문화재청



현과 활의 조화, 해금

두 번째 살펴볼 국악기는 독특한 음색을 만들어 내는 해금(奚琴)이다. 해금을 이루는 두 줄은 명주실로 만들어지는데, 몇 가닥을 몇 번 꼬았는지에 따라 현의 탄력과 음색이 정해진다. 특이한 점은 현과 현 사이에 활털을 넣어 연주하는데, 앞의 현을 밀기도 하고 뒤에 있는 현을 당겨서 연주하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해금 연주를 감상하면 그 차이를 보지 못한다. 해금 하단의 둥그런 모양의 울림통이 되는 주재료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나무 뿌리이다.

오동나무로는 울림통의 한쪽 면을 막아 현을 타고 내려온 소리를 공명시키는 복판의 재료로 사용된다. 송진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말총에 송진을 묻혀야만 현과 마찰이 생겨 소리가 나는데 송진 입자의 굵기와 활에 묻힌 정도에 따라 음색이 달라지기 때문에 좋은 송진을 써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금 연주는 보통 왼손은 위쪽에서 손가락으로 현을 쥐었다 폈다 하며 음의 변화를 주고, 오른손은 아래쪽에서 활을 움직여 왼손 아래에 위치한 현과 마찰을 일으켜 소리를 내는데, 특히 왼손이 구사하는 운지법은 음의 폭과 빠르기에 따라 다양한 농현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점은, 보는 것과 달리 왼손으로 현을 쥐었다 폈다 하는 동작에서 생각보다 많은 힘이 요구된다는 것과 각 손가락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음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해금 연주자들의 왼손은 대부분 ‘악력’이 좋지 않을까 싶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해금 연주를 만만하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깊은 음색의 매력, 피리

마지막으로 살펴볼 국악기는 대나무와 바람으로 깊은 음색을 만들어 내는 관악기 피리(觱篥)이다. 피리는 향피리가 가장 많이 쓰이며 대부분 전체 음악을 아우르는 주선율을 담당한다. 향피리의 관대는 대나무의 일종인 ‘시누대나무’를 주재료로 삼는다. 그러고 보면 해금에도 사용되는 대나무는 참 고마운 나무이다. 피리의 구성요소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서(舌)’라고 할 수 있는데, 관대의 위쪽에 꽂아 입김이 가장 먼저 닿는 곳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피리 연주자를 보면 항상 컵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는데, 컵에 물을 채운 후 물 안에 ‘서’를 넣어서 불리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두 겹의 ‘서’는 마른 상태에서는 떨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피리를 바로 꺼내서 불도록 하는 것은 피리 연주자에게 예의가 아니다.

신비로운 소리에 한국인의 아름다운 흥 담겨

가야금, 해금, 피리가 한팀을 구성하는 완벽한 조화는 아니다. 저음을 내는 현악기인 ‘아쟁’이 포함되면 조금 더 안정된 소리를 낼 수 있다. 한편 피아노 반주 위의 가야금, 해금, 피리 소리는 각각의 음색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듣기 편안한 현대적 멜로디 위에서 연주되는 국악기는 혼자 내는 소리보다 더욱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보편적으로는 정통국악보다 퓨전국악 내지는 현대국악을 감상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그것은 분명한 선입견이고 국악기 연주 감상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70분이 넘는 가야금 산조 한바탕 연주를 보고 있으면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기승전결’과 ‘희로애락’을 매번 다르게 느낀다.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할 때는 눈물마저 흐른다. 연주자의 등에서 폭포같이 흘러내리는 땀의 소중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편안함을 느끼고 싶을 땐 가야금 음악을 듣고, 실컷 울고싶을 땐 해금 연주를 듣고, 강한 의지가 필요할 땐 피리 연주를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각각에 접근이 힘겨울 때는 다양한 국악팀의 다양한 악기 편성의 연주를 감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국악을 무조건 좋아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국악의 다양한 장르를 논하기 전에 가야금, 해금, 피리 본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소리를 가끔 만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국악기 선율에 우리의 몸도 맡기고 우리 삶의 흥도 맡겨 보자. 그러면 우리는 ‘한국인’임을 다시금 알게 된다. 출처 : 허영훈(고려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외래교수)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