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입었다고 승려 아니다 .

승려란 형식적으로는 비구계를 구족한 스님의 호칭이지만 한문으로는 걸사(乞士)로 쓴다. 점잖게 말하면 ‘빌어먹는 선비’이고 막말로는 ‘거지’라는 뜻이다.

가사 입었다고 승려 아니다 .

승려란 형식적으로는 비구계를 구족한 스님의 호칭이지만 한문으로는 걸사(乞士)로 쓴다. 점잖게 말하면 ‘빌어먹는 선비’이고 막말로는 ‘거지’라는 뜻이다. 그릇 하나 들고 탁발로 얻어먹고 사니 거지가 맞다.

그러나 빌어먹는다고 비구를, 왕자· 새끼독사· 불씨처럼 하찮게 볼 수 없는 존재라고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왕자· 새끼독사· 불씨가 나중에는 왕· 독사· 큰불이 되는 것처럼, 비구도 인천(人天)의 스승이 될 미래의 성인이기 때문이다. 한국불교에서는 대부분의 종단이 부작용을 이유로 스님들의 탁발을 금지하고 있어서 겉으로는 걸사의 모습이 이미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승려는 직업을 가지거나 경제활동을 할 수 없고, 오로지 재가의 보시로만 살아야 하는 계율을 지니고 있어서 내용적으로 보면 여전히 걸사인 것이 맞다.

그런데 요즈음의 일부 승려들의 사고나 태도를 보면 전혀 걸사가 아니다. 재가의 시주가 없어도 사찰입장료 수입이나 문화재관리 지원금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고, 입시 기도나 죽은 이의 영혼 관리(천도, 제사)를 통해 얼마든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구도자이고 수행자여야 할 비구가 스스로를 성직자라 하고, 직업인 인양 착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자기들의 당연한 권리이고, 또 문화라고 주장한다.

한때 부처님께서 앙가국의 앗싸뿌라 마을에 계실 때,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나는 가사를 입은 이에게서도 탐욕· 악의· 화냄· 원한· 저주· 격분· 질투· 인색· 거짓· 기만· 사악· 사견을 발견한다. 그래서 나는 가사를 입은 이에게 가사를 입은 것만으로 비구라고 하지 않는다.”(<맛지마니까야> ‘앗싸뿌라 설법의 작은 경’)

그렇다면 무엇이 비구일까?

스님들이 탁발에 나서는 모습 (다음 이미지)




"기술을 의존하지 않고, 다른 짐도 없이 살고, 유익함을 원하고, 감관을 제어하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 집 없이 다니며, 나의 것을 놓아 버리고, 소망도 떠나고, 자만을 버리고, 해탈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며 홀로 걷는 자, 그들을 비구라고 한다.” (<우다나> ‘기술의 경’)

다시 말해서 비구는, 누구라도 인종이나 출신성분에 관계 없이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하여 오로지 해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분,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과 계율에 따라 자애· 연민· 기쁨· 평정의 삶을 실천하고 나아가 수행을 통해 마음에 의한 해탈과 지혜에 의한 해탈을 증득 했거나 증득 하려는 분들이다. 그리고 이런 분들의 무리가 바로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한 세상의 위 없는 복전(福田)이다. 그리고 성스런 이들의 모임이 바로 우리가 공경하고 받들어야 하는 승가(僧伽)이자 승보(僧寶)다.

그래서 부처님은 비구들이 1) 계를 잘 지키고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공부하고, 2) 많이 듣고 배우고, 배운 것을 잘 호지하고, 바른 견해로써 잘 꿰뚫고, 3) 불굴의 정진으로 머물고 굳세고 분투하고 유익한 법들을 버리지 않고, 4) 숲이나 외딴  

거처를 의지하고, 5) 무엇을 싫어함과 좋아함을 일어나는 대로 극복하면서 머물고, 6) 두려움과 공포를 일어나는 대로 극복하면서 머물고, 7) 바로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네 가지 선정(禪定)을 원하는 대로 어렵지 않게 얻으며, 8) 모든 번뇌가 다하여 심해탈(心解脫)과 혜해탈(慧解脫)을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앙굿따라니까야> ‘공양받아 마땅함의 경’). 그리고 열반을 증득하는 일대사(一大事)가 아닌 다른 일들, 즉 ‘잡일하기· 잡담하기· 잠자기· 무리짓기· 교제하기· 사량(思量) 분별(分別)하기를 좋아하거나, 육근(六根)을 단속하지 못하거나, 음식의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하는 비구들을 ‘망가진 비구’라고 하셨다.(<앙굿따라니까야> ’망가짐의 경’) 


그런데 요즈음에는 온통 망가진 비구들 천지다. 아무 하고나 교제하고, 마구 먹고 자는 것이 흠인 줄도 모르며, 공연· 예술· 점술 등과 같은 잡일에 빠져 지내거나, 수행자의 본분사가 아닌 세속의 일에 더 바쁜 무슨 총장· 이사장· 관장· 위원장이니 하는 비구들이 넘쳐나고있다. 이들은 자기가 망가진 것은 모르고 오히려 삼보라고 더 뽐내고 으스대기 일쑤다. 게다가 승가에서는 정말로 해서는 아니 될 파당 짓기와 무리 짓기로 일부는 종단의 권력까지 거머쥐고 있다.

신도들이 이런 승려들에게 삭발염의했다고 공양하거나· 선사하거나· 보시하거나· 합장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고, 또 그들은 이미 복전이 아니기 때문이다.  박호석(전, 대한불교삼보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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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