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국보 제13호. 1476년 이전의 극락전이다.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국보 제13호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국보 제13호. 1476년 이전의 극락전이다.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년(617)에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안에는 아미타삼존불과 29점의 벽화가 있었지만, 지금은 불상 뒤에 큰 그림 하나만 남아 있고 나머지 28점은 전시관에 보관하고 있다. 이 벽화들에는 전설이 전하는데, 극락전이 완성되고 난 뒤 한 노인이 나타나서는 49일 동안 이 법당 안을 들여 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에 법당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49일째 되는 날, 절의 주지스님이 약속을 어기고 문에 구멍을 뚫고 몰래 들여다보자, 마지막 그림인 관음보살의 눈동자를 그리고 있던 한 마리의 파랑새가 입에 붓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그림 속 관음보살의 눈동자가 없다.

무위사의 건축물 가운데 이 극락전은 1955년의 수리공사중 발견된 본존불상 뒷벽 벽화의 화기에 의해 1476년(성종 7) 이전에 지어진 것임이 밝혀졌다. 기단은 양 옆면과 뒷면의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여 앞면만을 높게 쌓았는데, 엇 맞추어 쌓은 석단(石壇)에 갑석만을 둘렀으며 그 위에 주춧돌을 놓았다.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주심포계(柱心包系)에 맞배지붕을 얹은 단층 겹처마집이다.

기단은 지세를 그대로 이용하고 앞면만을 높게 쌓았다. 건물 내부의 가구구조는 이중량으로 되어 있으나 건물 밖에서 보면 이중량 구조로 보이지 않고 창방이나 장여 등 작은 직선재로 측면을 간결하게 구성하고 있다.

건물 안에는 뒤쪽 중앙부에 불단을 두어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을 봉안했고 그 뒷벽에는 1476년에 조성된 벽화가 있다. 측면벽의 벽화들은 해체·보수 때 벽체로 뜯어내어 따로 보존하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고 천장은 위쪽 가구를 드러낸 연등천장이며 불상 위에만 보개와 우물반자를 설치하여 독특한 면을 보인다. 이 건축물은 공포의 짜임방식이나 각 부재의 형태 등이 부석사 무량수전과 같은 고려시대 건축보다 후대의 특징을 보이며 조선 초기 주심포 건축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1308년에 세워진 수덕사(修德寺) 대웅전과 가구의 방식이나 공포의 짜임이 비슷하다.

조선 후기 건축에 비해 단순·간결한 구성을 보이며 단청의 색조도 장중하다. 건물 정면의 모습도 간살이에 비해 기둥높이가 낮아 평활하고 안정된 느낌을 준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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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