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이치를 돌에 새겨 담은 밤하늘의 그림

1960년대 창경궁 추녀 밑에서 소풍 나온 시민에게 발견된 오래된 돌덩이.
그 돌에 새겨진 별의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 1464개의 별, 293개의 별자리그 안에 펼쳐진 웅장한 우주 12개의 분야로 나눠 그려진 하늘 조선 태조 4년(1395) 제작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하늘의 이치를 돌에 새겨 담은 밤하늘의 그림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

1960년대 창경궁 추녀 밑에서 소풍 나온 시민에게 발견된 오래된 돌덩이.
그 돌에 새겨진 별의 그림 '천상열차분야지도 1464개의 별, 293개의 별자리그 안에 펼쳐진 웅장한 우주 12개의 분야로 나눠 그려진 하늘 조선 태조 4년(1395) 제작된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地圖)는 직육면체의 돌에 천체의 형상을 새겨 놓은 것으로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1395년(태조 4)가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고자 권근, 유방택 등 11명의 천문학자들에게 명을 내려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 석각천문도는 고구려의 천문도를 기본으로 제작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각(石刻) 천문도이다. 중국 남송의 『순우천문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것이다. 조선 천문도의 기본으로 목판으로 제작, 인출하여 관료들에게 배포하기도 하였으며, 민간에서 다수의 필사본이 조선 후기까지 제작되기도 하였다. 둥글게 그린 하늘 안에 1,463개의 별이 그려져 있고, 아래에는 논천설(論天說)과 제작 경위 및 참가자 명단이 적혀 있다. 우리 고유의 별자리를 보여주는 독특한 천문도이다. 두 부분으로 나누어 내용을 배치하고 있다.

별의 밝기를 구분하고 해와 달, 오행성의 움직임 절기의 변화까지 읽을 수 있던 정교함.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조선의 천문지식이 한 장에 농축되어 있는 대단히 아름답고 예술적인 세계적 천문유산이다. 하늘의 뜻을 살피며 조선을 넘어 우주로 펼쳐진 선조들의 기상이다.

윗부분에는 짧은 설명과 함께 별자리그림이 새겨져 있고, 아래 부분에는 천문도의 이름, 작성 배경과 과정, 만든 사람의 이름 및 만든 때가 적혀 있다.
별자리그림에는 중심에 북극을 두고 태양이 지나는 길인 황도(黃道)와 남북극 가운데로 적도(赤道)를 나타내었다. 또한 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별들이 총망라되어, 황도 부근의 하늘을 12등분한 후 1,464개의 별들을 점으로 표시하였다.
이 그림을 통해 해, 달, 5행성(수성, 금성, 토성, 화성, 목성)의 움직임을 알 수 있고, 그 위치에 따라 절기를 구분할 수도 있다.

지금은 표면이 심하게 깎여나가서 알아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으나, 고구려 천문도의 원형을 짐작케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비석 하면 우리는 만주벌판에 서있는 '광개토대왕비'를 떠 올리지만, 우리가 세계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비석이 서울 한복판 국립고궁박물관 과학실에도 우뚝 서 있다. 조선조 태조 4년(1395)에 고구려 시대 평양에서 각석한 천문도('평양 성도(별)) 비석의 탁본을 바탕으로 돌에 새긴 천문도 -국보 제228호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天象列次分野之圖刻石)-가 바로 그것이다 (태조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전천(全天) 천문도 가운데 하나로써 우리 역사의 대표적인 유산이며, 세계적인 보물이다.

'천상열차분야지도' 란 하늘의 모습 ‘천상'을 '차'와 '분야'에 따라 벌려놓은 '그림'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차'란 목성의 운행을 기준으로 설정한 적도대의 열두 구역을 말하고, '분야'란 하늘의 별자리 구역을 열둘로 나눠 지상의 해당지역과 대응 시킨 것을 뜻한다. 이 비석의 뒷면에도 전면과 똑같은 내용이 새겨져 있지만 일부 내용의 배치가 바뀌고 세련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세종 15년에 복각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세종본).

이 비석이 마모되자 숙종 13년(1687)에 원형보존을 위해 상태가 좋은 탁본을 바탕으로 이민철(李敏哲, 1669년 현종 10년에 수력식 혼천의 제작)이 새로 복각하였다(숙종본). 영조 46년(1770)에는 관상감 안에 흠경각을 지어 이 두 개의 비석을 함께 보존하여 왔다. 1908년에 대한제국의 제실박물관으로 옮겨져 창경궁 명정전에 70년대 초까지 보관되어 왔다. 지금은 두 개의 비석을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 전시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들 비석의 내용을 필사하거나 목각하여 인쇄본이나 탁본을 제작하여 집권층이나 사대부들에게 배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천문도가 걸린 사랑방은 왕조의 건국이념과 정체성을 홍보하는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