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한 그 미소 국보로 남다

국보 제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인자한 눈빛, 엷은 미소.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한 표정.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고승의 풍모를 새긴 초상조각. 그 주인공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희랑대사’다.

인자한 그 미소 국보로 남다

인자한 그 미소 국보로 남다 국보 제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인자한 눈빛, 엷은 미소.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한 표정.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고승의 풍모를 새긴 초상조각. 그 주인공은 고려 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일을 도운 것으로 알려진 ‘희랑대사’다.


01.국보 제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


희랑대사(希朗大師)의 구체적인 생물연도는 미상이다. 다만 조선 후기 학자 유척기의 「유가야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려 초기인 949년 5월 나라에서 시호를 내린 교지가 해인사에 남아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949년 이전에 입적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 말기부터 고려 초기까지 활동했을 것으로 본다.

희랑대사는 화엄학에 조예가 깊었던 학승(學僧)으로 해인사 희랑대(希朗臺)에 머물며 수도에 정진했다고 한다. 특히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후삼국 통일에 큰 도움을 준 인물로 알려져 있다. 왕건은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해인사 중창에 필요한 토지를 하사하고 국가의 중요 문서를 해인사에 두었다고 한다.

국보 제333호 합천 해인사 건칠희랑대사좌상은 바로 그 희랑대사의 모습을 조각으로 남긴 작품이다. 높이 82cm의 이 유물은 고요한 산사에서 선정삼매(禪定三昧)에 든 고승의 모습이 특징적으로 나타나 있다. 두상은 체격에 비해 조금 길고 크지만, 영롱하고 형형한 눈동자에 미소를 머금은 입가가 매우 온화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 광대뼈가 인상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전반적으로 비범하고 기이한 스님의 얼굴을 명쾌하게 나타냈다. 몸은 다소 수척한 모습인데 가냘픈 어깨와 팔의 선, 뼈마디가 보이는 손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생략할 곳은 과감히 생략하고, 강조할 곳은 대담하게 강조하여 노스님의 범상하지 않은 위용을 사실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소승, 국보외다

희랑대사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이 독특한 조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초상조각으로 남아 있다. 제작 시기는 10세기 전반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동시기 중국과 일본에는 고승의 모습을 조각한 조사상이 제법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그 유례가 거의 전하지 않는데, 희랑대사좌상만이 생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재현한 유일한 조각품으로 전래되고 있다. 희랑대사좌상은 조선시대 문헌에서도 관련 기록을 엿볼 수 있는데 이덕무의「가야산기(伽倻山記)」를 비롯해 조선 후기 학자들의 방문기록이 문헌으로 남아 있다.

건칠*기법이 적용된 ‘희랑대사좌상’은 육체의 굴곡과 피부 표현 등이 매우 자연스러워 조선시대에 조성된 ‘여주 신륵사 조사상’, ‘영주 부석사 소조의상대사상’ 등 다른 조각상과 달리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마르고 아담한 등신대 체구, 인자한 눈빛과 미소가 엷게 퍼진 입술, 노쇠한 살갗 위로 드러난 골격 등이 생동감이 매우 넘쳐 생전의 모습을 연상하기에 충분하다.

우리나라에서 문헌기록과 현존작이 모두 남아 있는 조사상은 이 ‘희랑대사좌상’이 유일하다. 제작 당시의 현상이 잘 남아 있고, 실존했던 고승의 모습을 탁월하게 재현하였다. 또한 고려 초기 우리나라 초상조각의 실체를 알려준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유물이며 희랑대사의 외모뿐만 아니라, 그의 높은 정신세계까지 예술로 승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모두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아왔다. 이에 2020년 10월 21일 보물 제999호에서 국보 제333호로 승격되었다.


희랑대사의 시그니처, 흉혈

희랑대사좌상의 큰 특징은 바로 가슴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다. 이에 관해 전해지는 해인사 설화가 있다. 희랑대사가 다른 스님들의 수행 정진을 돕기 위해 가슴에 작은 구멍을 뚫어 모기에게 피를 보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고승의 흉혈이나 정혈(頂穴)은 신통력을 상징하며, 이와 유사한 형태를 서울 승가사 석조승가대사좌상(보물 제1000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희랑대사의 흉혈 또한 생전 그가 보여준 고승의 면모를 반영한 표현이 아닐까.

* 건칠(乾漆): 삼베 등에 옻칠해 여러 번 둘러 형상을 만드는 기법으로, 완성하기 까지 오랜 시간과 정성을 요한다.  참조 /본보의 2020년 9월 4일자 뉴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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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