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목사 수난기념관이 세워진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섰던 독립 유공자 주기철(1897∼1944) 목사가 압송되어 고문을 당했던 남한 유일의 수난지로 일부 건물이 남아 있는 옛 의성경찰서 자리로서.
신사참대 반대한 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 옛 의성경찰서 자리에 수난기념관
주기철 목사 수난기념관이 세워진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 신사참배 반대에 앞장섰던 독립 유공자 주기철(1897∼1944) 목사가 압송되어 고문을 당했던 남한 유일의 수난지로 일부 건물이 남아 있는 옛 의성경찰서 자리로서. 정면에 보이는 한옥으로 지어진 건물은 조선 시대 때의 건물로 의성경찰서 본관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왼쪽에는 부속건물이던 일본식 건물이 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2016년 의성군과 출향 기독교 인사들이 함께 ‘주기철 목사 수난기념관사업회’를 발족했으며, 2017년에는 한국기독교 역사사적지 제4호로 지정됐다. 이후 10여 년간의 추진 끝에 주 목사의 순교(1944년 4월 21일) 81주년을 맞은 올해 5월, 일제강점기에 의성경찰서로 사용되던 건물 2동을 리모델링하고 3층 건물을 신축해 기념관을 조성했다. 건물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주 목사의 일생과 항일 운동 및 지역 등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전시물, 경찰서를 재현한 전시공간, 무인 북카페, 소규모 공연 및 주민 교류 공간이 마련됐으며 증축 건물에는 상설, 기획전시실과 사무공간이 기념관 운영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기념관은 의성군이 주축이 돼, 국비와 의성군비 등 사업비 38억6000여만원을 투입해 완성하였으며, 운영은 사업회 산하 주기철목사사업주식회사가 위탁하고 있다.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강요하는 일제의 강요를 거부하다 순교한 주 목사는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초량교회와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한 주 목사는 1936년 평양 산정현교회의 목사로 부임한 뒤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 사역하던 중이던 1938년 경북 의성까지 끌려와 고초를 겪었다. 일제가 장로교의 신사참배 결의에 앞서 조작한 의성농우회 사건에 연루됐다는 거짓 혐의 때문이었다.
1938년 9월 전국 장로회총회가 일제에 굴복해 신사참배를 가결하자 이에 반발해 '일사각오'(一死覺悟)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신사참배 거부를 신자들에게 호소하다 체포돼 고문당하고 장기간 구속됐다. 가석방 후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하자고 설교하다 1940년 7월 불경죄 및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복역 중 1944년 4월 21일 가혹한 고문을 받다 옥중 순교했다.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사업회’(사업회·회장 오정호 목사)가 의성경찰서 옛터에 주 목사의 순교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을 세운 이유다.
또한 의성군 내에는 주기철목사수난기념관 외에도 의성군 문화유산 제35호 중리교회 예배당과 종탑, 엄주선 강도사 순교지, 의성 3·1운동 발상지 공원 등 순교 유적지가 있다.
주기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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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