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년을 이어온 우리 한글과 함께 언제나 '아리아리'!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정재환 우리말과 글 그리고 역사라면 마냥 좋았다. 끝없는 배움과 연구로 학문의 깊이를 더해 오면서 교수, 작가, 한글 운동가 등 다채로운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무엇보다 그는 미래 세대에게 위대한 유산인훈민정음의 의미와 함께 한글 사랑을 널리 전하고 있다.

57년을 이어온 우리 한글과 함께 언제나 '아리아리'!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정재환 우리말과 글 그리고 역사라면 마냥 좋았다. 방송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해 온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가 마흔이란 늦은 나이에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입학을 결심한 계기다. 끝없는 배움과 연구로 학문의 깊이를 더해 오면서 교수, 작가, 한글 운동가 등 다채로운 활동을 꾸준히 해 왔다. 무엇보다 그는 미래 세대에게 위대한 유산인훈민정음의 의미와 함께 한글 사랑을 널리 전하고 있다.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가 걸어온 길은 언제나 예상을 넘어서곤 했다. 한창 활발히 방송 활동을 하던 중에 우리말과 역사를 더욱 자세히 배우고자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가 하면, 뜻있는 구성원을 모아 한글문화연대를 창립하기도 했다.

“1997년 우리나라에 영어를 또 하나의 모국어로 하자는 영어공용론이 등장했습니다. 논란은 금방 사그라들었지만, 영어가 한민족의 정신을 어떻게 대변할 수 있겠어요. 우리말의 위대함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김영명 한림대 교수님과 한글문화연대를 세우고,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고 키우자’라는 목표로 한글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 정재환


우리말을 오롯이 지켜 나가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2008년엔 국어를 제외한 모든 과목을 영어로 교육하자는 영어몰입교육이 대두했다가 무산한 바 있다. 다행히 외국어가 대체하는 상황까진 발생하지 않았지만, 한글에 대한 기반을 공고히 다질 필요성을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일환으로 정재환 공동대표와 한글문화연대는 한글날 지위 격상을 추진했다. 명목상 기념일이었던 한글날은 한때 평일이란 이유로 점차 대중에게서 멀어져 심지어 날짜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국민청원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2006년 5대 국경일 가운데 하나로 재지정받을 수 있었다. “한글날의 공휴일 부활은 다 같이 즐겁게 하루 쉬면서 한글의 의미를 되새기고 기념하자는 데 의의가 있어요.”

그는 모든 공문서는 한글로 작성한다는 국어기본법 지키기 운동,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알음알음 강좌, 청소년이 참여하는 바른 말 고운 말 쉬운 말 표어 공모전, 세종대왕의 업적과 한글 창제를 배우는 한글문화기행 등에 나서 왔다. 특히 외국어에 가까운 공공 언어를 우리말로 바꿔 쓰는 쉬운 말 운동은 그가 가장 염두에 둔 활동이다. 예를 들어 ‘워딩(Wording)’을 ‘표현’, ‘뱅크런(Bank Run)’은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라고 풀어 쓸 수 있다. 또 ‘니즈(Needs)’보다는 ‘수요’를 쓰는 것을 권한다.

“대신하기 어려운 외래어는 적절한 단어를 탐색해 번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흔히 파이팅이란 응원 구호를 아리아리라고 바꿔 쓰고 있어요. ‘힘내서 간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나아간다’는 뜻이에요. 참으로 진취적이면서 미래지향적이지 않나요.”

               한글의 옛 이름을 뜻하는 훈민정음과 같은 이름의 국보 <훈민정음>은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해

               설명해 놓은 해설서이다.


577돌을 맞이한 올해 한글날은 정재환 한글문화연대 공동대표에겐 사뭇 특별하다. 생활 속 사례를 통해 국어의 바른 쓰임새를 전했던 <대한민국은 받아쓰기 중>, 일제 치하에서 우리말과 글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담은 <나라말이 사라진 날> 등의 한글과 관련된 책을 꾸준히 냈던 그가 이번에는 우리말의 정확한 쓰임새를 짚어낸 <우리말 비타민>을 세상에 내놓기 때문이다.

“건강을 중시하면 평소 영양제를 챙기기 마련이잖아요. 우리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비타민같이 날마다 꾸준히 찾고 활용할 때 올바르게 쓰는 능력이 향상하죠.”

30대 중반 무렵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면서 자연스레 우리말에 관심이 생긴 그는 한글의 가치를 더욱 알리고 드높이는 데 앞장서 왔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의사소통과 지식 정보 전달을 위해선 우리말을 구사하는 것은 기본이자 필수다. 그런데 막상 주위를 둘러보면 영어나 각종 외국어에 밀려 주목받지 못해 섭섭할 때가 적지 않았단다. 따라서 우리말 애용은 습관화가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우리말을 사용하면서 간혹 잘못 쓰거나 실수할 수 있어요. 그럴 때 정확한 쓰임새를 확인하여 더욱 바르게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말을 아끼고 사랑하는 문화가 점차 확산하길 바란다는 정재환 공동대표의 환한 미소에 자부심과 보람이 드러났다.

          01.국보 <훈민정음>의 세종대왕 서문 간송미술관 소장 ©문화재청

          02.국보 <훈민정음>에서 초성, 중성, 종성의 순서를 명시하고 실제의 사용례를 설명한 ‘용자례’

                부분 간송미술관 소장 ©문화재청

정재환 공동대표는 현재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서 한국학과 역사학의 연구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더 넓은 세상에서 우리말과 글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그가 으뜸으로 손꼽는 국가유산은 단연 훈민정음이다.

“대한민국 역사는 훈민정음 창제를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자 문화는 창제와 상관없이 지배계층 사이에선 여전히 이어졌으나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의 등장은 분명 자주적인 한글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시초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글의 옛 이름을 뜻하는 훈민정음과 같은 이름의 국보 <훈민정음>은 새로 창제된 훈민정음에 대해 설명해 놓은 해설서이다. 이 책에는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나라말이 중국과 달라)’라는 문장 덕분에 익숙한 어제서문과 글자를 설명하는 예의(例義), 집현전 학자 정인지 서문 등과 한글의 제작 원리가 담겨 있다. 정 대표는 세종 28년(1446)에 반포한 훈민정음의 정확한 부수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연구에 의해 300권 이상, 최대 약 500권이리라 가늠할 뿐이다.

              .한글문화연대에서 구축한 ‘쉬운 우리말 사전’


“<훈민정음>은 1940년 경북 안동에서 발견되었어요. 간송 전형필 선생이 입수해 학계에 발표하기 전까지의 종적도 찾지 못했죠. 우리말의 중시조인 주시경 선생조차 생전에 <훈민정음>을 직접 마주할 기회가 없었다는 점이 아쉬워요. 한글이 탄생한 원리를 알아냈으니 이치와 사상, 과학성 등을 뒷받침할 근거가 명확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발음기관을 따온 기본 자음 5개엔 음양오행이 깃들었으며, 모음 3개는 우주를 형성하는 근원인 천지인을 상징한다고 훈민정음 모음과 자음의 근원을 설명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인다.

“저는 훈민정음을 대발명이자 대발견이라고 표현합니다. 이토록 소중한 우리말과 글을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나이 들면 동네 할아버지 교사로서 다음 세대와 소통하며 우리말과 글의 길잡이 역할에 충실하고 싶습니다.”  글. 오민영 사진. 고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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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