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효행을 선명히 알리다 보물 『삼강행실효자도』

『삼강행실도』는 세종의 명으로 만들어졌다. 넓게 보면 이 책은 세종이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성리학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편찬한 여러 서적 중 하나이다.

놀라운 효행을 선명히 알리다 보물 『삼강행실효자도』

 몇 해 전 시할아버지의 아흔다섯 번째 생신 잔치에서 있었던 일이다. 시할아버지께서 맞은편에 앉은 막내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노래 한 곡 해 봐라.” 그러자 머리가 희끗한 막내아들이 대답했다. “아부지, 저도 이제 환갑이어라.” 환갑이 다 된 막내아들의 애교에 시할아버지는 함박웃음을 지으셨고, 증손주들의 열띤 춤과 노래로 잔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이 많은 아들이 부모에게 어리광을 피우며 효도했다는 『삼강행실도』에 수록된 「노래반의(老萊斑衣)」 고사가 떠올랐다.


01.「노래반의」, 『삼강행실효자도』, 목판본, 반곽 26×17㎝, 고려대학교도서관 만송문고 ©박지영

02.<노래자오친도(老萊子娛親圖)>, 무량사 화상석 탁본, 중국 동한 ©국립중앙박물관



아버지 살해 사건 때문에 편찬되다
『삼강행실도』에 수록된 「노래반의」 이야기의 주인공인 노래자(老萊子)는 초나라 사람으로 백 세의 부모를 기쁘게 해 드리기 위해 일흔의 나이에도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렸다고 한다(그림 1). 노래자의 효행담은 2천여 년 전에 만들어진 중국의 화상석(畵像石)에 새겨질 정도로 잘 알려진 옛날이야기이다(그림 2). 노래자의 효행 고사처럼 『삼강행실도』에는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오래전부터 효행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삼강행실도』는 세종의 명으로 만들어졌다. 넓게 보면 이 책은 세종이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성리학 질서를 정착시키기 위해 편찬한 여러 서적 중 하나이다. 『삼강행실도』 편찬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1428년 김화라는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들은 세종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세종실록』에 “깜짝 놀라 낯빛이 변하였으며 자책하였다”라고 기록되었다. 곧이어 세종은 풍속을 정비할 방안을 논의하였고 신하들의 간언에 따라 고려 말에 만들어진 『효행록(孝行錄)』을 다시 간행하도록 명하였다. 『효행록』은 고려 말에 권보와 권준 부자(父子)가 중국의 효자 64명에 관한 기록을 엮은 책이다.

이때 세종은 『효행록』에 수록된 중국 효자들에 관한 고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효행이 특출한 사례들을 수집하여 책에 담도록 했다. 그로부터 4년 뒤 1432년 집현전에서 『삼강행실도』를 편찬해 세종에게 진상했다. 그 서문에 따르면 중국과 우리나라의 효자, 충신, 열녀 중 뛰어난 자로 각 110명을 찾아내 그림을 그리고, 이어서 글을 실었다. 그리하여 『삼강행실효자도』, 『삼강행실충신도』, 『삼강행실열녀도』가 1책씩 만들어졌다.

      03.<순제대효(舜帝大孝)>, 『삼강행실효자도』, 반곽 26×17㎝, 고려대학교도서관 만송문고 ©박지영



백성을 위한 친절한 삽화
『삼강행실도』에서는 그림이 중요하다. 책의 제목에 특별히 ‘도(圖)’를 넣은 것이나 본문에서 그림을 먼저 보고 글을 읽도록 배치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고사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노래반의」(그림 1)처럼 핵심 주제를 한 가지 장면으로 그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순제대효」(그림 3)처럼 두 가지 이상의 장면을 한 화면에 담았다. 산자락이나 바위, 가옥, 담장 등을 사용해 화면을 나눠서 시기나 장소가 다른 장면들을 한 화면에 그려 넣은 것이다.

예를 들면, 「순제대효」는 순임금이 모진 부모와 아우 사이에서도 효성을 다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중앙부의 대각선으로 나뉜 화면의 위쪽에는 순임금이 하늘을 향해 울부짖자 새와 코끼리가 밭일을 해 주는 장면이 그려졌다. 그 아래쪽은 순임금이 도리를 다하고 부모를 공경하자 가족들이 마음을 바꾸어 화목한 가정을 이루는 장면이다.

                                04.「길분대부」 부분, 보물 『삼강행실효자도』, 개인 소장 ©박지영

                                05.「길분대부」 부분, 『삼강행실효자도』,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세종대왕기념사업회

                                06.「길분대부」 부분, 『삼강행실효자도』, 고려대학교도서관 만송문고 ©박지영



개인이 소장한 보물 『삼강행실효자도』
『삼강행실도』 언해본은 여럿 남아 있지만 초기에 만들어진 한문본은 그 수가 매우 적다. 특히 행실도류 책자 중에서 보물로 지정된 것은 개인 소장의 『삼강행실효자도』가 유일하다. 지난해 정기조사에서 보물 『삼강행실효자도』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 이었다. 새파란 하늘이 인상적이던 작년 6월 소장자의 집을 찾았다. 조사단의 방문이 귀찮을 법도 한데 소장자 부부는 먼길을 오느라 고생했다며 시원한 수박까지 내어 주셨다. 『삼강행실효자도』를 조심스럽게 꺼내 주시는 모습에서 평소 소장자가 이 유물을 얼마나 소중히 보관하셨는지 알 수 있었다.

개인 소장인 보물 『삼강행실효자도』는 부드럽고 유려한 각선(刻線)이 돋보이는 목판본이다. 글씨는 정갈하고 판화는 손으로 그린 것처럼 사실적이다. 특히 인물 표현에서 특징이 잘 드러난다. 「길분대부(吉翂代父)」에는 20㎝ 내외의 작은 화면 안에 14명에 달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만큼 각 인물의 세부 묘사가 쉽지 않지만 보물 『삼강행실효자도』에서는 눈, 코, 입, 머리카락까지 세밀하게 판각되었을 뿐만 아니라 표정까지도 생생하게 표현되었다 (그림 4).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소장의 『삼강행실효자도』에서 주인공인 길분(吉翂)의 얼굴을 간략한 몇 개의 선으로 표현한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그림 5). 이처럼 강약을 조절하며 직선과 곡선을 자유롭게 판각하는 면모는 고려대학교도서관 만송문고 소장의 『삼강행실효자도』의 특징이기도 하다(그림 6).

만송문고 소장의 『삼강행실효자도』는 지금까지 알려진 판본 중에서 원간본(原刊本)에 가장 가깝다고 알려졌다. 보물 『삼강행실효자도』와 만송문고 소장본은 동일한 책판에서 인출된 책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두 책 모두 희귀하고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높은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보물 『삼강행실효자도』는 인쇄된 면이 선명하여 책판을 제작한 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인출한 것으로 평가되며, 책에 수록된 110여 장에 달하는 판화는 현전하는 수량이 많지 않은 조선 전기 회화의 일면을 가늠하게 해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정기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향집에 다녀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연세 많으신 소장자를 뵙고 오는 날에 특히 그렇다. 보물 『삼강행실효자도』 조사를 마치고 나오자 어김없이 소장자께서 문밖까지 나와 배웅해 주셨다. 5년 뒤에 다시 찾아뵐 때 까지 소장자 부부가 지금처럼 건강하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 곽수정, 임동석 역, 『이십사효』, 동서문화사, 2012. - 국립중앙박물관, 『중국 고대 회화의 탄생』, 2008.
- 권보·권준·이제현, 윤호진 역, 『효행록』, 지식을만드는지식, 2017. -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삼강행실도』, 1982.
- 오민석·김유범·이규범, 「언해본 삼강행실도 효자도의 원전과 텍스트 성립 과정에 대하여」, 『국어사연구』 30, 국어사학회, 2020. - 이태호·송일기, 「초편본 삼강행실효자도의 편찬 과정 및 판화 양식에 관한 연구」,『서지학연구』 25, 한국서지학회, 2003. - 최경훈, 「덕원당본 삼강행실효자도의 발견과 가치」, 『고인쇄문화』 19, 청주고인쇄박물관, 2012. - 한국학중앙연구원 편, 『조선 시대 책의 문화사』, 휴머니스트, 2008. 글. 박지영(국립문화재연구원 미술문화재연구실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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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