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군대와 사천왕천의 시각화 녹유신장벽전

수미산궁을 지키는 하늘 군대

하늘 군대와 사천왕천의 시각화 녹유신장벽전

경주 낭산 사천왕사지에서 발굴된 녹유신장벽전(이하 ‘신장벽전’)의 신장상 존명에 관해 그간 학계에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됐다. 사천왕상이나 팔부중상으로 보거나 『관정경』에 등장하는 호탑선신 또는 신왕(神王)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수미산 아래 3개 층급에 사는 천신(天神)이나 사천왕천의 천중(天衆)으로 주장한 연구도 있다.


01.사천왕사 녹유신 장벽전 재현품 (국립경주문화재 연구소 소장)

02.녹유신장벽전 재 현품 속 마카라 (Makara). 마카라는 수미산 주변의 바닷속에 사는 커다란 괴수이다. (국립경주문화재 연구소 소장)

03. 나가(Naga). 나가는 불교 세계관 속 욕계(欲界)의 꼭대기인 수미산 둘레를 날아다 니는 괴수이다. (국립경주박물관소장)



수미산궁을 지키는 하늘 군대

구마라집, 현장, 불공과 함께 중국 4대 역경승의 한 명인 진제(眞諦)는 6세기 중반 「불설입세아비담론(佛說立世阿毘曇論)」을 번역했다. 이 논서에는 수미산 아래 사천왕천 에 머무는 ‘천자(天子)’에 관한 설명이 나온다. 제5권 『천비 천투전품(天非天鬪戰品)』에는 제1층에 지만(持鬘), 제2층 에 상승(常勝), 제3층에 수지보기(手持寶器), 제4층에 사천왕 군대가 거주하면서 수미산왕과 성문을 지킨다고 전한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651년 현장이 번역한 『아비달 마구사론』(이하 『구사론』)에도 나오는데, 여기서는 천자를 ‘천중(天衆)’이라고 했다. 다만 『구사론』의 ‘천중’은 견수(堅手), 지만, 항교(恒憍)로, 『불설입세아비담론』과 번역이 약간 다르다. 두 논서에 나오는 3종 천중의 이름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수지보기’와 ‘견수’는 범어 카로타파니 (Karoṭapāṇi)를 번역한 말인데, 무기나 그릇을 들고 신을 지키는 약차신을 의미한다.

‘지만’의 원어는 말라다라 (Mālādhāra)이고, 화만 장식을 지닌 존재라는 뜻이다. ‘상승’과 ‘항교’는 범어로 사다마타(Sadāmatta)인데 늘 방자하 거나 취해 있는 신을 말한다. 아비달마 계열의 여러 논서에는 이 같은 사천왕천에 거주하는 3종 천중의 명칭만 약간 차이가 있을 뿐 대체로 비슷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7세기 이후 중국과 신라의 교단에서는 이러한 아비달마 교학과 논서를 매우 활발하게 연구하고 번역했다.

현학적이고 분석적인 아비달마의 논서는 당시 신유식을 기반으로 하는 법상종(法相宗) 유가승의 기본 학습서였고, 그때 『구사론』 등에 서술된 3종의 ‘천중’은 경주 사천왕사의 목탑 기단부 신장벽전으로 형상화되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명랑법사와 유가명승 12인 그리고 양지법사는 이 전례 없는 건축과 조각을 창출해 낸 건축가와 조각가이다. 당시 신라의 교학을 고려한다면 이 견수, 지만, 항교 세 가지 도상을 탑 기단부에 배치한 것은 분명 의미심장하다.

                                                            04.유쾌한 모습으로 되살아난 신장상들 ©한승철 (국립경주박물관)



벽전에 형상화된 문(門)

신장벽전의 신장상과 귀졸(鬼卒)상은 윗부분이 아치 형태인 문틀 안에 조각됐다. 그래서 신장과 귀졸이 자리한 곳은 세 개의 나란한 터널처럼 보인다(도1). 보통 이 터널 형상은 불상 등을 안치하는 감실(龕室)로 인식되었지만, 사실 이것은 밀폐된 감굴(龕窟)이 아닌 ‘사천왕천’이라는 넓은 공간으로 들어가는 상징적인 ‘통로’이다. 물리적으로는 막혀있는 듯하나 개념적으로는 그림의 여백처럼 막힌 것이 아니다.

실제로 오른손에 든 칼을 머리 뒤로 비스듬하게 세운 신장상을 보면 머리 위와 옆으로 흘러가는 구름 무늬가 3개 새겨져 있다. 이는 왼팔 옆으로 세차게 흩날리는 천의와 함께 문틀 안의 공간이 개방된 곳임을 암시하는 도안이다. 왼손에 칼을 든 신장상 주변의 꽃잎 식물이나 활과 화살을 든 신장상의 나부끼는 천의 역시 문틀 안이 열려 있는 공간임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신장벽전 문틀의 시작과 끝은 나가(Naga)와 마카라(Makara)의 벌린 입에서 비롯된다(도2, 3). 나가는 불교 세계관 속 욕계(欲界)의 꼭대기인 수미산 둘레를 날아다니는 괴수이고 마카라는 수미산 주변에 사는 바닷속 커다란 괴수이다.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는 마카라의 입은 악어처럼 크고 코는 코끼리처럼 길다. 이렇게 나가와 마카라가 문틀에 장식된 것만으로도 신장벽전의 화면은 형상 너머의 또 다른 상징성을 얻게 되었다.

마치 힌두 건축에서 키르티무카와 마카라가 함께 짝을 이루어 시바 신전의 입구를 지키듯이 용(나가)과 마갈어(마카라)도 경주 낭산 신유림(神遊林)에 세워진 목탑 기단부를 장식하는 도상으로 채택된 것이다. 신라인들에게 낭산은 수미산으로 인식되었다. 수미산은 인간계와 천계를 잇는 산이며, 불교 우주관의 중심 축이다. 사천왕사는 마치 중생이 수미산을 오르는 과정을 구현한 것처럼 입구의 돌다리를 건너 오르막길을 지나야만 탑과 금당이 있는 경내에 진입하도록 설계되었다.  //  에필로그 : 드디어 당나라의 군사가 물러났다. 수행군총관 설인귀(설방)는 겨우 목숨만 건져 귀국했다고 한다. 전장 수습에 동원된 사미승 들은 먼 이국땅에서 허망하게 전사한 당나라 군사의 극락왕생 을 기원했다. 이듬해(671년) 다시 당나라가 조헌을 수장으로 삼아 군사 5만을 보냈지만, 배가 또다시 모두 침몰했다. 이에 더는 전쟁이 없을 거란 기대에 들떴고, 왕실은 명랑 등 신묘한 문두루 비법을 설행했던 유가승들의 건의에 따라 신유림에 새로운 사찰을 짓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679년 8월, 낭산 남쪽 구릉에 완공된 사천왕사는 신라 왕실의 중요한 불교 의례를 도맡는 핵심적인 사찰이 되었다. 출처/ 한재원(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 문화재감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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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