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야 우지마라

시골 담장에 턱 하고 기대어 자리를 잡은 것이 있다. 마치 제집인 양 바싹 달라붙어서 손을 마구 뻗어 자꾸 번져만 간다.

소화야 우지마라

시골길 담장을 보면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비좁고 구불구불 하지만 마음을 매만져 주고 아늑하게 감싸주는 길이다. 때로는 거칠고 투박하게 쌓아 올렸지만 어쩐지 기대어 쉬고 싶어진다.



그곳은 바로 마음의 고향일 뿐 아니라 해가 지고 돌아가 날개를 접어야 할 둥지와 같은 포근한 안식처이다. 그러한 시골 담장에 턱 하고 기대어 자리를 잡은 것이 있다. 마치 제집인 양 바싹 달라붙어서 손을 마구 뻗어 자꾸 번져만 간다.

바로 능소화가 그 주인공이다.






중국 연경으로 사신을 갔던 사람들이 그 꽃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가지고 오게 되었다. 그래서 양반가에서만 심다 보니 양반 꽃으로 불리게 되었고, 한편으로는 평민들이 능소화를 함부로 심지 못하게 하였다. 만약 몰래 키우다가 적발이 되면 즉시 관아로 끌려가서 매를 맞았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추위에 매우 약한 능소화가 다른 꽃나무보다 한참 늦게 싹이 트는 것을 보고 양반들의 느긋한 모습에 비유하여 양반나무라 하였다. 그 외에도 금등화, 등라화, 궁중화, 어사화, 구중궁궐의 꽃, 하늘을 능가 하는 꽃이라는 별칭이 있다.



또한 능소화에 얽힌 슬픈 전설이 있다.

옛날 중국의 어느 궁궐에 소화라고 하는 아주 아름다운 궁녀가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황제의 눈에 들어 곧바로 후궁으로 들어가는 성은을 입었다. 소화가 너무 아름다운 나머지 다른 후궁들의 질투와 시기로 인하여 수많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 황제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친 소화는 마침내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소화는 죽기 전에 유언으로 궁궐 담장 밑에 묻어 달라고 했다. 유언에 따라 황제와 가까운 담장 밑에 묻었는데 다음 해 여름날에 담장 주변에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였다.

사람들은 소화를 능가하는 꽃이라 하여 능소화로 이름이

붙여졌다.

황제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립기도 했지만 억울한 한을 풀지 못하고 꽃으로 환생을 하였다.



꽃이 활짝 피었다 질 때는 동백꽃처럼 통째로 떨어져 처녀꽃이라고도 한다.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 여성, 기쁨, 그리움, 기다림이다. 초여름에 피기 시작하면 초가을까지 줄기차게 피고 지고를 되풀이한다. 꽃을 바라보면 눈이 먼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그것은 꽃가루에 그물망 같은 미세한 입자가 붙어 있어서 안과 질환의 원인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전혀 터무니 없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여름 내내 나무 밑에 수북하게 쌓여만 가는 꽃을 보고도 선뜻 손을 내밀 수 없는 이유이다. 다른 꽃은 먹을 수 있는 것도 많은데 능소화는 왠지 아름다움은 인정을 하면서도 그렇게 가까이 다가가 품어 볼 수가 없다. 물론 한약재로는 줄기나 잎이나 꽃과 뿌리까지도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고향집 대문 옆에도 무성하게 뒷마당 굴뚝에서도 착 달라붙어 능소화가 화려하게 피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누가 쳐다보지 않아도 여름이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어김 없이 찾아온다. 한 송이를 들여다 보아도 예쁘고 여럿이 어울어져도 아름다운 자태를 유감 없이 뿜어낸다.

잎사귀의 푸릇푸릇한 초록과 꽃잎에 농익은 주황이 어쩌면 그렇게도 색상대비가 잘 되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그래서 창조자의 능력을 감히 따라 갈 수가 없나 보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대로 느끼는 대로 몇 자 적어 보지만 이렇게 슬픈 사연을 숨기고도 겉으로는 화려하게 화장을 하였구나. 능소화야 울지마라. 처절한 네 몸부림에 더 이상 눈물을 거둘 수 있도록 너의 곁에 함께 있어주마. 저마다의 아픔을 안고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능소화를 대신하여 용기를 듬뿍 주고 가야겠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능소화 / 우초 정태상


찢어진 가슴팍에 벌겋게 타올라라

내 아픔 걱정 말고 손길이 닿는 데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악착 같이 붙어라

아가리 찢어지게 지독한 독을 품고
겉으론 안 그런 척 외발로 기대 서서
원수의 눈이 멀도록 눈부시게 피어라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