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日本錄


일본은 제일 큰 섬인 혼슈, 두 번째로 큰 섬이자 가장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 세 번째로 큰 섬이자 가장 남쪽에 있는 규슈, 네 번째로 큰 섬인 시코쿠 등 4개 섬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기자의 日本錄

1 섬나라 ‘일본’

일본은 제일 큰 섬인 혼슈, 두 번째로 큰 섬이자 가장 북쪽에 있는 홋카이도, 세 번째로 큰 섬이자 가장 남쪽에 있는 규슈, 네 번째로 큰 섬인 시코쿠 등 4개 섬을 중심으로 구성되어있다. 일본은 경제는 세계 2위이고 인구는 세계 10위이고 면적은 60위로, 섬의 개수는 1위 인도네시아 13,700개, 2위 필리핀 7,107개, 3위 일본 6,852개, 4위 한국 3,400개 순이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도,도,부,현(都道府県)으로 구분된다. 광역자치단체인 도(도쿄도 1개 都), 도(홋카이도 1개 道), 부(교토부 오사카부 2개 府), 현(43개 県)을 말한다. 또한 행정구역과 무관하게 8개의 지방으로 구분되며, 혼슈섬 동북부의 ‘도호쿠 지방’, 동부의 ‘간토 지방’, 중앙의 ‘주부 지방’, 중서부의 ‘간사이 지방’, 서남부의 ‘주고쿠 지방’ 그리고 홋카이도섬의 ‘홋카이도 지방’, 시코쿠섬의 ‘시코쿠 지방’, 규슈섬의 ‘규슈 지방’, 류큐제도의 ‘오키나와 지방’으로 구분되고 있다.

교토와 오사카에서는 일본의 과거를 볼 수 있고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일본의 미래를 볼 수 있다. 홋카이도에서 설경을 즐기고 후쿠오카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일본인의 진실을 찾아보기 힘들고 양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2 야만의 역사

일본은 기원전 13,000년경부터 기원전 300년경까지 존재한 선사시대를 조몬(繩文) 시대라고 한다. 사슴과 물고기를 잡아먹고 새끼줄 무늬의 조몬 토기를 사용했다. 초대 진무 텐노(텐노 천황,여기서는 왜왕이라고 칭하겠다)가 기원전 711년 즉위했다고 일본의 건국신화에는 전한다.



4세기 전후 현재 나라 지역의 아스카(飛鳥)에 일본 최초의 통일국가인 야마토정권이 수립될 때부터 현재 나라 지역인 헤이조쿄(平城京)로 수도를 천도할 때까지 아스카 문화가 꽃피웠던 시기를 ‘야마토(大和) 시대’라고 한다. 43대 겐메이 왜왕이 현재 나라 지역인 헤이조쿄(平城京)로 수도를 천도할 때부터 50대 간무 왜왕까지 현재 교토 지역의 헤이안쿄(平安京)로 수도를 천도할 때까지 약 100여 년의 시기를 ‘나라(奈良) 시대’라고 한다.

50대 간무왜왕이 현재 교토지역인 헤이안쿄(平安京)로 수도를 천도할 때부터 현재 요코하마 지역인 가마쿠라(橫濱)에 가마쿠라 막부가 설립될 때까지 약 400여 년의 시기를 ‘헤이안(平安) 시대’라고 한다.

96대 고다이고왜왕이 현재 요코하마 지역인 가마쿠라(橫濱)에 일본 최초로 가마쿠라 바쿠후를 설치할 때부터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가 현재의 도쿄 지역인 에도(江戶)에 바쿠후를 설립할 때까지 약 400여 년의 시기를 ‘중세(中世) 시대’라고 하며, 107대 고요제 왜왕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쇼군으로 승인하고 현재의 도쿄 지역인 에도(江戶)에 도쿠가와(徳川家康)가 막부를 설립할 때부터 메이지 유신이 선언될 때까지 약 250여 년의 시기를 ‘에도(江戶) 시대’라고 한다. 122대 메이지왜왕은 왕정복고로 에도막부를 폐지하고 새 정부를 수립하는 메이지유신을 단행했으며 메이지유신부터 태평양전쟁을 일으켜서 연합국에 항복할 때까지 약 80여 년의 시기를 ‘일본제국(日本帝國)’이라고 한다.

일본인들은 야만적으로 살았고 침략적으로 살았으며 일본의 역사는 불의의 역사였고 부정의 역사였으며, 역사 앞에 정의로운 일본을 보고 싶고 인간에게 양심적인 일본인을 만나고 싶다.

3 간토 지방

간토(関東)지방은 혼슈(本州)의 중부 태평양 연안에 위치하며 일본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지이며, 일본의 수도인 도쿄도를 비롯해 이바라키현, 도치기현, 군마현, 사이타마현, 지바현, 가나가와현 등 1도 6현(1都 6県)을 가리킨다.

간토지방은 인구 4,500만 명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경제권역을 형성하며 ‘수도권’이라고 불리며, 가마쿠라 바쿠후 무로마치 바쿠후 에도 바쿠후가 자리했으며, ‘자민당 왕국’으로 불리기도 한다.

도쿄도(東京都)는 인구 1,300만 명의 일본의 수도로서, 159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바쿠후의 근거지로 삼았다. 1868년 메이지왜왕이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했다. 도쿄는 뉴욕, 런던과 함께 세계 3대 도시이며 2020년 도쿄올림픽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세계적인 코로나19로 올림픽이 지금현재 무한연기 되고 있다.

이바라키현(茨城県)은 간도지방 북동부에 위치하여 태평양에 접해 있고, 남쪽은 발전하고 북쪽은 한적하다. 유난히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이바라키현청은 미토시(水戸市)이며 동일본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곳이다.

도치기현(栃木県)은 간토지방 북부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한 바다에 접해 있지 않은 내륙현이다. 닛코(日光) 국립공원을 비롯하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닛코의 신사와 사원이 있다.

군마현(群馬県)은 간토지방 북서부에 위치하여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가장 깊은 내륙에 위치해 있으며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희생당한 조선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추모비가 건립되어 있는 곳이다.

사이타마현(埼玉県)은 간토지방 중서부에 있는 현으로 바다에는 접하지 않는 곳이다. 사이타마는 ‘행복을 가져오는 신’을 의미하는 곳으로, 도쿄 인근이라 인구가 급증하여 730만 명이 넘는 대도시가 되었다.
지바현(千葉県)은 간토지방 남동부에 위치하며 도쿄만 동쪽에 위치한 현이다. 일본의 허브인 나리타공항과 도쿄디즈니랜드가 위치해 있으며 여름에는 피서지로 겨울에는 피한지로 유명하다.

가나가와현(神奈川県)은 간토지방 남서부에 위치하며 일본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현이며, 요코하마는 가나가와현의 현청 소재지이자 간토지방에서 두 번째로 인구가 많은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1923년 9월 1일 간토대지진 당시 일본정부는 '조선인들이 폭동을 자행한다'고 발표했다. 혼란의 책임을 조선인에게 전가하고 무자비한 탄압을 자행하며 잔인하고 반성 없는 일본의 본모습을 간토지방에서 보고 듣고 체험할 수 있다.

4 도쿄도 도쿄

도쿄(東京)는 혼슈동부에 위치한 일본의 최대 도시이자 정치, 경제, 금융의 중심지이며 행정수도며, 인구는 도쿄도가 1,400만, 도쿄권은 4,300만 명이다.

1192년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에도에 가마쿠라 바쿠후를 설립했었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에도를 함락했고, 1603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바쿠후를 창업했다. 1868년 메이지 왜왕이 교토의 어소(御所)에서 에도의 고쿄(皇居)로 천도했다.



1869년 에도를 도쿄로 변경했다. 1923년 관동대지진과 1945년 2차대전 당시 큰 피해를 입었다. 니혼바시교, 도쿄역, 하네다공항, 도쿄항 등을 중심으로 교통이 발달되어 있으며, 도쿄는 1964년에 이어 2020년에 두 번째로 하계올림픽을 개최하기로 했었다.

메이지신궁(明治神宮)은 1920년 완성하여 메이지왜왕과 쇼켄 왜왕비의 신위를 봉안했다.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파괴되어 재건했다. '메이지신궁'은 미에현의 '이세신궁', 오이타현의 '우사신궁'과 함께 일본의 3대 신궁으로 불린다.

고쿄(皇居)는 일본의 왜왕이 거주하는 장소를 말하며 1868년 메이지왜왕이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하고 고쿄에 체류했다. 1924년 고쿄 니주시바 다리에서 김지섭 의사가 왜왕을 향해 폭탄을 투척했던 곳이다.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는 메이지유신 당시 희생된 3,588명을 제사지내기 위해 창건한 신사이다. 세이난전쟁 청일전쟁 러일전쟁 중일전쟁 태평양전쟁 등 침략전쟁에서 희생된 전범을 합사하여 250만 명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도쿄사람들은 대단히 친절하지만 외국의 역사 특히 우리 한국의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은 대단히 불편하며 거북하다. 도쿄는 어디를 가나 깨끗하지만 일본은 어디를 가나 침략전쟁을 부인하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본이 되기를 기원해본다.
5 행정수도 도쿄

<신주쿠>
신주쿠(新宿)는 도쿄 신주쿠역을 중심으로 하는 대표적인 거리이며 일본 최대의 번화가다. 백화점 은행 음식점 등이 밀집한 신주쿠는 시부야, 이케부쿠로와 더불어 도쿄의 3대 부도심이고, 신주쿠의 라멘은 일본보다 짜고 맵고 느끼하다.
신주쿠역은 세계에서 이용객이 가장 많은 철도역으로 하루 350만 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역의 출구만 200여 개로 길을 찾는 것보다 잃는 것이 쉽다고 한다. 신주쿠역에서 신칸센은 이용할 수 없으며 신주쿠는 세계에서 가장 추악한 역사의 현장이다.

<시부야>
시부야(渋谷)는 시부야역을 중심으로 하는 거리이며 백화점과 쇼핑몰 등이 밀집해 있고 젊은이의 거리로 알려져 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는 수백 명이 동시에 교차로를 횡단한다. 일본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스타벅스가 있다. 시부야는 2020 올림픽을 앞두고 모든 도로는 공사가 한창이 였으며, 약속 장소로 이름난 충견 하치코의 동상이 있고 없는 것이 없다는 돈키호테가 있다. 하지만 시부야에서는 역사에 대한 인식은 충견보다 천박하고 진실은 하나도 없는 곳이기도 하다.

<아사쿠사>
아사쿠사(浅草)는 센소지(浅草寺)를 중심으로 하는 거리이며 도쿄를 대표하는 번화가이다. 간토대지진과 2차대전으로 괴멸적인 피해를 당하여 복구했고,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일본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센소지(浅草寺)는 도쿄에서 가장 큰 사찰이며 도쿄에서 가장 일본 스러운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약탈한 고려의 혜허(慧虛) 스님이 그린 불화 '수월관음도'가 보존되어 있는 곳이며 거리는 깨끗하지만 역사의 왜곡과 추잡한 곳임을 확인할 수가 있다.

<롯폰기 힐즈>
에도시대에 6가문의 다이묘의 나무 명표가 있어서 '롯폰기(六本木)'가 유래됐다고 한다. 일본과 미국의 군대가 주둔하여 사창가를 비롯한 유흥업이 발전했고 야쿠자가 활동했다. 2003년에 롯폰기 힐즈가 건립됐다. 롯폰기 힐즈(Roppongi Hills)는 전골드만 삭스, 애플, 구글 등이 입주한 지상 54층의 주상복합 건물로 52층에 위치한 전망대는 롯폰기의 랜드마크이며 도쿄의 아름다운 야경을 한눈에 볼 수 있으나 감추어진 추악한 일본의 본모습은 볼 수가 없다.

<우에노>
우에노(上野)는 도쿄의 최대의 문화 중심지로 우에노 공원을 중심으로 연못과 동물원을 비롯해 도쿄국립박물관 국립서양미술관 국립과학박물관 등이 있으며 국립박물관에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재가 1,856점이 전시되어 있다. 우에노공원은 다이쇼 왜왕의 영지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신사인 우에노 동조궁도 볼 수 있고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자 정한론을 주창한 사이고 다카모리의 동상도 볼 수 있으며 조선 침략 원흉의 추악한 모습까지 볼 수 있다.

6 간사이 지방

간사이(關西)지방은 혼슈(本州)의 중서부에 위치한 지역으로 '수도 교토와 가깝다'는 뜻으로 긴키(近畿)지방이라고도 부른다. 교토부 오사카부 등 2개 부와 나라현 효고현 시가현 와카야마현 미에현 등 5개 현으로 구성되어있다.

교토부(京都府)는 794년부터 메이지 유신으로 수도를 도쿄로 옮긴 1867년까지 일본의 천년수도였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며 니조성(二條城)은 도쿠가와 이에야스 가문의 상징이도하다.

‘오사카부(大阪府)는 일본최대의 상업도시이자 일본제2의 도시로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인 오사카성은 일본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오사카성에서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3인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나라현(奈良県)은 일본에서 가장 큰 섬인 혼슈의 중앙에 있는 현으로 대부분이 산과 숲으로 이루어져 있고 현청 소재지는 나라시(奈良市)이다. 일본은 6세기 중엽부터 7세기 전반까지 아스카(나라)를 도읍으로 아스카문화를 꽃피웠다.

효고현(兵庫県)은 간사이지방의 대표적인 현으로 인구는 약 600만 명이며 현청 소재지는 고베시(神戸市)이다. 혼슈의 가장 남쪽인 야마구치현과 가장 북쪽인 아오모리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태평양과 동해가 동시에 접해져 있다.

시가현(滋賀県)은 간사이지방의 동북부에 있는 현으로 현청 소재지는 오쓰시(大津市)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호수이자 비파와 모양이 비슷하며 ‘교토에서 가까운 호수’라는 뜻인 비와호(琵琶湖)가 위치했다.

와카야마현(和歌山)은 간사이지방의 남쪽 기이반도(紀伊半島)에 있는 현으로 와카야마시(和歌山市)이다. '기이산지의 영지와 참배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있으며, 와카야마전철의 고양이 역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미에현(三重県)은 일본에서 가장 큰 반도인 이세 반도에 위치하며 현청 소재지는 츠시(津市)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신사이자 20년마다 건물을 해체하고 다시 짓는 식년천궁(式年遷宮)으로 유명한 ‘이세 신사’가 존재한다. 20년마다 일본의 정신은 후퇴하고 일본의 의식은 추락한다.

7 교토부 교토

헤이조쿄(나라)는 710년부터 794년까지 일본의 수도였던 곳으로 헤이안코(교토)는 794년부터 1867년까지 일본의 천년수도였다. 간무 왜왕이 나라에서 교토로 천도했고, 메이지 왜왕이 교토에서 도쿄로 천도했었다. 에도 시대에 교토는 에도, 오사카와 함께 '삼도'라고 불렸다.

간무왜왕이 794년 수도를 나라에서 교토로 천도하여 일본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나모토가 1192년 요코하마에 가마쿠라 막부를 설치하여 교토는 정치적 기능은 상실했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도쿄에 에도막부를 설치하여 정치적 중심은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졌으며 교토에 거주하는 왜왕은 상징적인 존재이고 도쿄에 거주하는 쇼군이 실질적인 통치를 하였다. 에도막부는 에도에서 실질적으로 통치했고 왜왕은 교토에서 상징적으로만 통치했었다. 메이지 왜왕은 교토고쇼(京都御所)의 보존을 명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으로 수도가 천도하자 크게 쇠락했었다. 2차대전중에 폭격을 받지 않아 파괴되지 않았다.

교토부의 인구는 260만 명으로 도도부현 중에서 13번째로 많다. 일본의 행정구역은 서두에 기술한 되로 도(도쿄도), 도(홋카이도), 부(오사카부, 교토부), 현(나머지 43개)을 묶어 도도부현(都道府県)이라고 한다.

교토시는 긴키(近幾)지방의 중심 도시이자 교토부(京都府)의 부청 소재지이다. 일본 10대 도시 중 하나이며 내륙도시이다. 남서쪽에 일본 제2도시인 오사카, 북동쪽에 일본 최대의 호수인 비와호(琵琶湖)가 있다. 교토는 일본인에게는 지금도 '정신적 수도'이며 일본 최고의 관광도시이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며 1,500여 점 이상의 사적과 사찰이 국보로 지정됐다. 교토인들은 직설적인 표현을 피하고 돌리고 또 돌려서 말하기 때문에 겉과 속은 아주 다르다. 일본의 천박한 역사의식은 겉도 검게 보이고 속도 검게 보이는 것 같다.

8 천년수도 교토

<기요미즈데라>
‘기요미즈데라(清水寺)’는 778년 헤이안 시대 초기에 교토에 설립된 사원으로 '맑은 물'이라는 뜻이다. 에도막부의 창업자인 이에야스의 손자이자 에도막부의 3대 쇼군인 이에미쓰의 명령으로 재건되었다. 기요미즈데라는 언덕 앞으로 돌출되어 139개 기둥으로 받치도록 설계된 건축물에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재건됐다. ‘십일면천수관음상’을 모시고 있는 본당(本堂)은 국보로 지정되어있다. 신세계7대 불가사의의 후보가 되었으나 탈락했다.

<주라쿠다이>
‘주라쿠다이(聚楽城)’는 히데요시가 교토에 축성한 대저택이다. 금박을 입힌 기와를 사용하여 화려하고 아름다운 저택으로 정무를 보는 혼마루를 중심으로 니노마루를 건축하고 주위에 해자를 만들어 방어하는 성이다. 주라쿠다이에는 일본의 다조(茶祖)로 불리우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인 센노리큐(千利休)의 저택도 함께 지었다. 센노리큐는 히데요시의 명령으로 주라쿠다이에서 할복한곳이다. 히데요시는 주라쿠다이를 철거하여 후시미성을 쌓았다.

<후시미성>
‘후시미성(伏見城)’은 교토 우지 강 연안에 히데요시가 주라쿠다이를 이축하여 축성했다. 지진으로 성이 무너지자 고하타산(木幡山)에 새롭게 축성했다. 히데요시는 후시미성에서 사망했고 세키가하라 전투로 소실되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재건했다.
“다섯 걸음마다 절이 하나씩 있고 열 걸음마다 누각이 하나씩 있는데 ~ 왜놈들이 얼마나 제 백성을 혹사시켰는지 족히 상상하고도 남았다”고 강항(姜沆)이 정유재란 당시 일본으로 끌려가서 후시미성을 직접 보고 ‘간양록(看羊錄)’에 기록했다.

* 강항(姜沆)
좌찬성 강희맹의 5대손이며, 강극검의 아들이다. 후학 양성에 전념하여, 윤순거 등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인물화와 소나무를 그리는 데도 뛰어났다. 주요 저서에 <운제록>·<강감회요>·<좌씨정화>·<간양록> 등이 있다. 1593년 전주 별시문과에 급제, 정자·박사·전적을 거쳐, 공조·형조 좌랑을 지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남원에서 군량 보급에 힘쓴 그는 남원이 함락 당하자 고향인 영광에서 김상준과 함께 의병 수백 명을 모집해 싸웠다. 영광이 함락되자 포로가 되어 일본 오쓰 성에 유폐되었는데, 이곳에서 일본의 역사·지리·관제 등을 알아내어 우리나라로 보냈다. 1600년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온 후 고향에서 후학 양성에 전념했다. 1882년 이조판서·양관대제학에 추증되었으며, 영광 용계사에 제향 되었다.

<니조성>
'니조성(二条城)'은 에도시대에 교토에 축성된 윤곽식 평성(坪城)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니노마루 어전이 국보로 지정됐고 정원은 특별 명승지로 지정됐다. 침입자를 막기 위해 복도를 걸을 때 새 울음소리가 나도록 설계됐다. 니조성은 초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거처하기 위해 지어졌고 3대 쇼군인 이에미쓰가 에도에 입성하자 쇼군이 없는 성으로 버려졌고 천수도 소실됐다. 니조성에서 마지막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1867년 대정봉환을 하였다.

<헤이안 신궁>
'헤이안 신궁(平安神宮)'은 교토로 천도했던 간무왜왕이 교토에서 마지막으로 사망한 고메이 왜왕을 모시는 신사이다. 1895년 교토 천도 11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의 황궁인 다이다이리(大內裏)의 일부를 복원했으며 뒤편의 신엔(神苑) 정원이 아름답다. 신궁(神宮)은 일본의 민속신앙인 신토(神道)의 신을 모시는 종교 시설이다. 약 8만 개에서 30만 개까지 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 내선일체를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했으며, 야스쿠니 신사는 전범자들의 무덤이다.

<교토고소>
'교토고소(京都御所)'는 헤이안시대의 임시 궁궐에서 남북조 시대 이후 정식 궁궐이 되었다. 고곤왜왕 때부터 메이지왜왕 때까지 약 550년 동안 일본의 왜왕이 거주했다. 화재로 소실되어 1855년 헤이안양식으로 복원했다. 남북 약 1,100m, 동서 약 600m의 부지에 남북으로 약 450m, 동서로 약 250m의 건축물이다.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번만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쇼와왜왕은 교토고소에서 즉위식을 거행했고 아키히토왜왕은 도쿄 고쿄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9 오사카부 오사카

오사카(大阪)는 서일본 긴키(近畿) 지방의 최대 도시이며 도쿄에 이어 일본 제2의 도시이다. 면적은 도도부현 중 가장 작고 인구는 도쿄 다음으로 많다. 긴키지방은 오사카를 중심으로 약 2,000만 명의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오사카는 나라시대와 헤이안시대에 수도와 가까워서 항구도시로 번창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을 쌓아 올려 일본 최고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도요토미 가문이 멸망하자 오사카성은 황폐화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를 직할지로 지정하고 오사카성을 재건했다. 수많은 다리와 수로를 만들어 세금으로 받은 쌀을 옮겨 일본의 물류가 집중하는 경제의 중심지가 되어 ‘천하의 부엌’으로 번성했다. 오사카 하면 음식을 꼽을 만큼 먹거리가 풍부하다. 오사카는 ‘일본의 부엌’으로 독특한 식문화가 발전했고 파산할 정도로 음식이 호화롭다는 뜻으로 '오사카의 무위도식'이라고 한다.

메이지유신 직후 ‘폐번치현’으로 오사카는 큰 타격을 받았고, 다시 근대화와 함께 서일본 경제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大坂'으로 표기했고 '흙이 뒤집힌다’ 또는 ‘무사가 반란하다’로 해석되어 언덕을 뜻하는 '大阪'으로 표기했다.
도톤보리(道頓堀)는 에도(江戶)시대 초기에 물자 수송을 위해 인공운하가 개통됐다. 지금은 수많은 술집이 밀집된 오사카의 최고 명소가 되었다. 오사카에 가면 화려하고 찬란한 겉모습과 더불어 잔인하고 음흉한 일본의 진짜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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