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미리-도루묵 굽는 냄새 환장 하겠네!

바다의 매력은 '툭 트임'이다. 갑갑한 일상탈출을 기대한다면 차가움 속에 펼쳐지는 망망대해의 장쾌함을 찾아 떠나볼 법하다.

양미리-도루묵 굽는 냄새 환장 하겠네!
소금 뿌려 지글지글 …석쇠에 노릇노릇~


바다의 매력은 '툭 트임'이다. 갑갑한 일상탈출을 기대한다면 차가움 속에 펼쳐지는 망망대해의 장쾌함을 찾아 떠나볼 법하다. 특히 찬바람이 불어 닥치는 초겨울부터 바다는 더 선명한 빛깔을 자랑한다. 쪽빛 바다와 하얀 포말의 청량감을 담아내는 동해안은 그다지 춥지도 않은 이 무렵이 여정을 꾸리기에 적당하다. 특히 7번국도 주변에는 온천욕-해돋이와 함께 하는 초겨울 미식거리도 풍성해 '맛 기행'의 최적지가 된다.

▲ 초겨울 동해안 지역 최고의 별미는 단연 도루묵을 꼽을 수 있다. 속초 대포항에서 도루묵잡이 배가 갓잡은 도루묵을 부리고 있다.



고성-주문진 일대 집집마다 '주렁주렁'
칼국수-찌개 등 다양하게 먹을수 있어

▲ 꼬득꼬득 마른 양미리


초겨울 동해안 별미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양미리이다. 추억의 밥반찬으로, 예전 동해안 지역은 물론 중부 산간지방까지 겨울철 집집마다 양미리 한두 두름쯤은 빨랫줄에 걸려 있는 게 예사였다.

강원도 지역에서는 양미리를 '앵미리'라고도 부른다. 지역 방언이다. 포구에 가서 어민들에게 작황을 물으면 "앵미리 요새 마이 나와요"라며 양미리보다 더 구수하고 정감 있는 사투리로 상황을 일러준다.

양미리는 우리나라와 일본, 사할린, 오호츠크해 등 주로 극동지역의 바다에 서식하는 한류성 어족이다. 몸길이는 20~30㎝ 정도로 혹자들은 그 모습이 '미꾸라지 같다'고 하지만 등이 푸르고 아랫배 쪽은 은백색인데다 주둥이가 뾰족해 꽁치에 더 가깝다.

양미리는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 고성, 주문진, 삼척 등지가 주산지이다. 그중 고성과 주문진은 11~12월이 성어기로 씨알이 크지는 않다. 반면 삼척 일원은 12~1월이 피크로 씨알이 굵은 편이다. 삼척의 경우 원덕 앞바다가 주요 서식지이다. 임원항에서 배를 타고 20여분을 나간 곳에 어장이 형성 돼 있다. 이곳에는 양미리 서식에 알맞은 굵은 모래사장이 잘 발달돼 있다.

본격 시즌이 열리면 주문진 사천진리 포구에선 20여척의 양미리배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드나들며 하루 평균 2000~3000가고의 양미리를 잡아들인다. 가고란 그물코에 박힌 양미리를 떼어 담는 통으로 양미리의 양을 재는 기본 단위다. 양미리는 그물로 감싸 몰아 잡는 것이 아니라 한 마리 한 마리가 작은 그물코에 끼이게 해서 잡는다.

이 때문에 배들은 양미리가 꿰인 그물을 통째 포구로 갖고 들어와 어판장에 부려놓는다. 대기하던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그물에 매달려 일일이 양미리를 떼어낸다. 이 때 양미리를 담는 용기가 바로 '가고'이다. 플라스틱 사각형 통을 사용하는데 보통 53kg을 1가고로 친다. 숙련된 할머니, 아주머니들은 하루에 수십 가고씩의 '양미리 따기'로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일단 경매에 부쳐진 양미리는 대부분 건조장으로 직행한다. 막 떼어낸 생물은 1만원이면 두어 두름(40마리), 꼬득 꼬득 말린 것은 주변 건어물전이나 식당에서 1만원이 채 안되는 가격(7000~8000원 선)에 한두름을 살 수 있다.

양미리 잡이는 아른 아침에 이뤄진다. 주로 바다 밑바닥 모래 속에 숨어 사는 양미리는 해뜨기 전에 모래에서 나와 먹이활동을 시작하는데, 어부들은 이 습성을 이용해 양미리를 잡는다. 전날 그물을 바닥에 깔아뒀다가 솟아오르는 양미리들이 그물코에 꿰이면 다음날 나가 그물을 거둬올리는 식(발치기)이다. 발치기 방식은 11월 중순까지 이뤄진다. 이후엔 양미리들이 산란을 위해 물에 떠다니기 때문이다. 이 때는 그물을 세워서 늘어뜨려 잡는 뜬그물(걸그물)을 쓴다. 그래서 11월 말 뜬그물로 잡은 양미리에 '알박이'들이 많다.

양미리는 칼슘-철분-단백질 등이 풍부해 겨울철 영양식으로 그만이다. 뼈째 먹는 관계로 칼슘과 단백질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 또 등푸른 생선인 만큼 불포화 지방산과 숙취 해소를 돕는 아스파라긴 등의 필수 아미노산과 DHA, 노화방지 핵산 등이 풍부하다.

▲ 양미리구이



일반적으로 양미리는 안주용 소금구이, 밥반찬으로 꾸둑꾸둑하게 말려 조려 먹는다. 산지에서는 회, 칼국수, 찌개 등 다양한 요리법이 발달해 있다. 특히 '바다 미꾸라지'라는 별명에 걸맞게 갈아서 추어탕처럼 끓여 먹기도 한다.

더 맛있게 먹기로는 양미리를 석쇠에 얹고 굵은 소금을 흩 뿌려 구운 다음 소주를 한 잔 곁들여 뜨거운 살집을 뜯어먹는 것이다. 포구 주변에선 장작-연탄불에 석쇠를 얹고 둘러앉아 양미리구이 판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지글지글 익어가는 먹음직한 양미리의 암컷은 홍시색깔의 알을 배 밖으로 내밀고, 숫놈은 하얀 곤이를 드러낸다. 뜨거운 양미리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맛이란 필설로 다 할 수 없다. 꽁치가 다소 퍽퍽하다면 양미리는 부드럽고도 기름진 맛을 낸다.


올해 어획량 늘어 어판장마다 수두룩
구워 먹을때 알 터트려 먹는 재미 솔솔

▶도루묵

초겨울 강원권 동해안 최고의 별미거리로는 '도루묵'을 꼽을 수 있다. 비록 폼 나는 어종은 아니지만 추억의 맛을 지닌 그런 놈이다. 갯내음 물씬 풍기는 포구 주변에서 갓 잡아 올린 싱싱한 것들을 굽고 끓여 먹는 맛이란 호텔 별식이 부럽지 않다.

'도루묵'이란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분분하다. 그중 정설에 가까운 게 임금님 관련 스토리다. 옛날 한 임금이 오랑캐의 침입으로 피난길에 올랐다. 강원도 북부 해안지역이었는데, 임금은 이 곳에서 묵(묵어 또는 목어)이란 생선을 맛봤다. 이 맛에 반한 임금은 이를 '은어'라 부르도록 일렀다. 임금이 하사한 이름을 얻은 물고기니 묵은 한순간에 귀한 신분이 됐다. 뒤에 궁궐로 돌아온 임금은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은어'를 잡아오게 해 맛보았지만, 피난길에 먹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묵으로 부르게 하면서 '도루묵'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 얘기가 다소 설득력이 있는 게 옛날에도 도루묵을 '환목어'(還目魚)라 불렀던 기록이 있는 걸 보면 대충 맞아떨어지는 스토리이다. 조선 인조 때 이식이란 사람은 잘 나가다가 어렵게 된 자신의 처지를 도루묵에 빗대어 '환목어'라는 시를 짓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도루묵이란 이름은 돌메기나 돌목 따위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많다고도 주장한다. 바위나 돌이 많은 바닥에서 주로 사는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루매기'(강릉 등지에서 부르는 도루묵의 사투리)를 둘러싼 무성한 말들이 결코 중요한 것은 아니다. 도루묵 그 자체가 맛있기 때문이다. 30~40년 전엔 도루묵의 알이 원폭 피해자들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다고 알려지면서, 도루묵은 일본으로 수출돼 한때 귀한 어족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바람도 잦아들어 도루묵은 다시 말짱 '도루묵' 신세가 되고 말았다.

▲ 도루묵구이



도루묵철은 10월부터 12월까지이다. 한겨울에 들어서면 연안에서 산란을 마친 도루묵들이 깊은 바다로 들어가므로 어획량이 급감한다. 주생산지는 고성, 속초, 양양, 강릉 주문진, 동해, 삼척 등 강원도 동해안 일원이다. 이 가운데서도 주문진항은 대표적인 도루묵 생산지로 꼽힌다. 포구에선 20여 척의 배가 도루묵잡이에 나선다. 하지만 근자에 들어 온난화의 영향으로 잡히는 양은 예전만 못하다. 그러나 올해는 어획량이 늘어 어판장마다 도루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산지에서는 도루묵이 얕은 바다의 바닥이나 바위틈에 산란하기 위해 연안으로 몰려오는 11월, 수심 10m 안팎에서 잡히는 '알박이' 도루묵을 제일로 친다. 몸에 영양을 비축해 맛과 영양이 최고조에 이르고, 무엇보다 쫀득하게 씹히는 도루묵 알의 맛 때문이다.

도루묵은 잡아온 즉시 싱싱한 상태로 먹어야 제맛이 난다. 잡은 지 오래되거나 냉동을 하게 되면 알이 굳어져 맛이 떨어진다.

이즈음 속초 대포항, 주문진 등지를 찾으면 통통한 알배기 도루묵을 맛볼 수 있다. 9월부터 조금씩 나기 시작한 도루묵은 10월을 넘기며 본격 시즌에 돌입했다. 알이 실하게 밴 것들을 굵은 소금 흩뿌려 석쇠에 구워주는 게 별미다. 간이 살짝 밴 야들야들한 속살과 잘 익어 쫄깃한 알을 터뜨려 먹는 재미가 독특하다. 또 무를 깔고 얼큰하게 찌개로 끓여낸 것도 밥반찬으로, 술안주로 그만이다.

속초 대포항 포구에 늘어선 조개구이 노점에서는 1만원을 내면 4~5마리를 구워준다. 도루묵 말고도 조개구이점에서는 키조개, 대합, 가리비, 참조개, 명지 등을 섞어 2만원 선에 맛볼 수 있다. 일반 식당에서는 도루묵 15마리를 넣고 끓인 찌개(4인분)를 4만 원 선에 맛볼 수 있다.

[여행 메모]

▶가는 길
◇속초=영동고속도로~강릉 지나 속초, 주문진 방향 북강릉 IC~7번 국도~속초~대포항
◇주문진=영동고속도로~강릉 지나 속초, 주문진 방향 북강릉 IC~7번 국도 좌회전 직진~주문진항 이정표따라 주문진항
◇사천항=북강릉 IC~강릉쪽 우회전~사천진리 이정표~오른쪽길로 내려가 좌회전, 굴다리 밑 통과 직진 2.5km~4거리 건너자마자 왼쪽 굽은 마을길 사천진리 포구다.
◇삼척=영동고속도로~강릉IC~동해고속도로~동해 IC~삼척시내~임원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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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