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 한자권 내에서 역사·문화적 유사성이 높은 두 마을 한국 안동 하회마을 vs 중국 이현

한국과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인접해 있고 동일한자권에 속해 유사한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 속에 발전해 왔다.

동일 한자권 내에서 역사·문화적 유사성이 높은 두 마을 한국 안동 하회마을 vs 중국 이현


          동일 한자권 내에서 역사·문화적 유사성이 높은 두 마을 한국 안동 하회마을 vs 중국 이현 홍춘


한국과 중국은 지정학적으로 인접해 있고 동일한자권에 속해 유사한 자연환경과 역사·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 속에 발전해 왔다.  특히 홍춘이 위치한 중국의 휘주지역과 한국의 안동은 크고 작은 산봉들이 어우러져 농지가 많지 않은 지형적 특성, 주로 마을이 산을 의지하고 강을 앞에 둔 입지를 지니고 있으며, 산과 강으로 막힌 각각의 마을들이 강한 혈연의식과 독자적 문화를 오랜 기간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갖는다(임세권, 2010).*  이 두 곳의 역사마을은 세계유산 등재 이후 관광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세계유산협약 운영지침에 따라 해당 유산의 보존관리와 이용에 관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민·관이 서로 협력하며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 마을 : 한국 안동 하회마을 전경. 안동 하회마을은 전통적인 유교문화가 살아 숨 쉬고 있는 상징공간으로 손꼽히는 곳으로서 가장 한국적이며 독창적인 문화를 간직한 씨족마을이다.  중국의 역사 마을 : 중국 이현 홍춘 전경. 이현( 縣)에서 11km 떨어진 황산 남서쪽 기슭에 위치한 홍춘(宏村) 마을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에 자리 잡고 있다.  송나라 때 마을이 처음 건설되었고, 현재와 같은 구조를 갖춘 것은 15세기 명나라 때이다.


조선시대 초기 촌락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
하회마을은 양동마을과 함께 유교적 이념에 따른 조선시대 초기 촌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세계유산 등재기준 ⅲ), 신분계급에 따른 마을의 조화로운 배치구조(세계유산 등재기준 ⅳ)가 지니는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국 하회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위치하는 풍산 류씨 씨족 마을이다. 풍산 류씨는 고려 말에 새로운 거주지를 찾아 이곳으로 이주해 왔으며, 마을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인물이 많이 나오면서 16세기부터는 영남지방의 대표적인 양반 문중으로 이름났다.

하회마을의 면적은 중심 영역만 해도 499.5ha에 달하며, 가옥의 수는 124호로 현존하는 한국의 씨족마을과 비교할 때 제법 큰 규모다. 하회마을이 자리 잡은 곳은 태백산맥에서 뻗어 나온 화산(花山) 자락을 낙동강이 돌아 흐르면서 형성된 넓은 퇴적층으로 되어 있다. 마을은 한 면이 산, 나머지 세 면은 강이 둘러싸고 있으며, 낙동강 너머로는 부용대, 원지산, 남산, 병산 등의 산줄기가 이어지면서 마을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다. 여러 겹의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하회마을은 주변지역과 자연스럽게 격리되고 마을 주변에는 유학자들이 학문과 휴식을 즐기던 경승지가 많이 분포해 있다.


01.안동 하회마을 주택과 가로 체계 전통가옥 외에도 소규모의 토담집과 붕담집은 기본적 건축 재료인 진흙만으로 벽체를 쌓아올리는 원초적 민가축조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02.국가민속문화재 제85호 원지정사 하회마을 북촌의 화천(花川)과 부용대(芙蓉臺)를 바라볼 수 있도록 북향한 이 정사는 유성룡(柳成龍)이 34세 때 은거하였고, 병환 중 요양하던 곳이다.

03.안동 병산서원. 병산서원은 2019년 7월 ‘한국의 서원’이라는 명칭으로 다른 8곳의 서원과 더불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봉건시대 휘주 촌락의 형태를 간직한 홍춘(宏村)
중국 홍춘과 시디춘은 봉건시대 무역경제 활성화와 함께 조성된 촌락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고(세계유산 등재기준 ⅲ), 마을 내 수로를 따라 구획된 건조물과 도로체계(세계유산 등재기준 ⅳ), 중국의 도시화 및 개발에 따른 위협에서 벗어나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는 정주지(세계유산 등재기준 ⅴ)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중국 홍춘은 안휘성 이현에 위치한 휘주 민거의 전형적인 양식을 지니고 있는 왕씨 가족의 집단 거주지다.

마을은 북송 정화 3년(1113년)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으며, 명대 영락황제 때 왕씨 성을 가진 족장이 촌락을 정비하고 마을에 물을 끌어들였으며, 이후 청대 중기 대규모의 공사가 이루어지면서 마을 이름이 홍춘(宏村)으로 바뀌었다. 홍춘은 뢰강산을 포함한 주변의 산과 강에 둘러싸인 풍수구조를 지니고 면적은 330ha에 달한다. 마을 안에는 주택과 개인 정원이 대부분을 이루나 서원과 사당 등 공공시설로는 월소(月沼)를 중심으로 남호서원(南湖院), 악서당(堂), 승지당(承志堂), 덕의당(德堂), 송학당(松堂), 벽원(碧) 등이 관광객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역사마을을 지켜내는 법과 제도
한국 안동 하회마을은 사적, 보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관리되고 있었으며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는 기존의 법령 외에도 문화재보호법 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을 준수하도록 했고, 지자체에서는 경상북도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보존·관리되다가 2020년 제정된 세계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통합 보호 관리되고 있다.

중국 이현 홍춘은 세계유산 등재 이전에는 지방정부의 보호조례 및 보호방법에 따라 관리되다가 세계유산 등재 이후 중앙부처와 지방정부의 지원이 활성화되고, 2002년 세계문화유산사 신설 이후, 국가문물국에서 보호·관리하고 있다. 중국 홍춘은 마을 전역이 안휘성 역사문물보호단위,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국가역사문화명촌 등 다양한 보호체계가 중복되고, 건설부의 성향계획법, 토지관리법, 국가 문물국의 문물보호법, 문물보호법 시행지침 및 문물보호법시행방법에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안휘성과 이현이 제정한 시행규칙과 각종 조례를 통해 관리하고 있다. 한국은 중앙정부 중심의 보호체계를 가지고 있는 반면에 중국은 지방정부 의존도가 높은 편이다.

04. 중국 홍춘의 전통주택의장.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하얀 벽과 검은 지붕이 홍춘 마을 건축물의 특징이다. 낡은 벽면 하나에서도 오랜 역사의 향기가 깊게 느껴진다.

05. 중국 홍춘의 화교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인 화교. 영화 <와호장룡>의 첫 장면에 등장하며 이곳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06.중국 홍춘의 주택과 가로체계. 홍춘에는 명·청시대 고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 휘저우 거주 양식의 대표적인 전형이 되었다.


지속가능한 활용을 위한 역사마을의 보존관리
안동 하회마을의 보존을 위한 보호지역 경계는 1977년 처음으로 설정되었다. 점차 민속마을의 보호대책이 요구됨에 따라 마을 전체가 ‘집단민속자료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1983년에 들어 하회마을이 ‘중요민속자료(現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마을 전면의 부용대를 포함한 주변의 자연경관, 하회마을과 관련된 병산서원을 지정구역 내부에 포함하여 유산의 완전성이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다.

1960년대 하회마을의 근대화에 따른 원형 훼손의 문제는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과 함께 보호사업의 가속화로 전환국면을 맞게 된다. 하회마을 내부 상업시설·숙박시설 증가, 마을경관 획일화, 하회마을 주변에 관광지가 들어서면서 원형 보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세계유산 등재 이후에는 UNESCO의 권고 이행과 함께 정기적 모니터링, 내부적 정비사업의 지속적인 시행 등을 통해 보호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 이현 홍춘은 세계유산 등재 이전 건축물 중심의 보호관리 정책 위주에서 세계유산(2000)으로 등재되면서 서계와 뢰강산 사이의 마을을 경계로 지정구역을 설정하였다. 지정구역은 총 28ha로 주변의 산과 강에 둘러싸인 풍수구조를 포함하였으며, 내부에 고건축물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을 중점보호부분으로 보호관리하고 있다.

홍춘은 문화대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마을의 형태가 변화되었으나, 지방정부 주도의 정비사업을 통해 보호관리가 시작되었다.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면서 조례를 마련하고 자체적인 정비사업이 이루어졌다. 또한 국가역사문화명촌 지정 이후, 주변지역의 개발 압력에 대한 보호관리 정책과 안전관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마을에서 ‘인간 삶의 터전’이라는 본질적 가치가 훼손되기 시작하면 그 유산적 가치는 소멸되고 말 것이다. ‘세계유산의 가치를 인식하는 것’과 ‘주민들의 자긍심’ 그리고 ‘유산의 진정성을 이해할 수 있는 지역문화’ 이 세 가지 요소가 유산을 지속가능하게 계승할 수 있는 원천이며, 이는 역사마을 주민들과 관광객에게 교육되어야 한다.  출처/ 문화재청  이원호(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