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살고 바다에서 놀다

바다에서 살고 바다에서 놀다

 

 

네덜란드 출신의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그의 저서 『호모루덴스』(1938)를 통해 인간의 본질이 놀이를 즐기는 것, 즉 유희에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유희는 사전적 의미의 ‘즐기고 노는 것’을 넘어 ‘정신적인 창조 활동’으로 인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바다는 오랫동안 인간의 삶의 공간으로 1차적인 생명 보존의 터전이자 역사적인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교류의 장이었다. 요한 하위징아가 정의한 인간의 본질적 속성이 구현된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생존과 놀이의 공간, 바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선사시대부터 바다를 가까이하며 살아왔다. 인간은 자연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생명을 이어왔고, 그 흔적은 강, 호수, 해안 근처의 동굴, 패총 등지의 유적에 남아 있다. 오늘날 쓰레기장과 같은 선사시대의 패총을 조사하다 보면 조개껍데기와 생선 뼈를 이용해 만든 도구와 장식품이 발견된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물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지혜의 산물이자 놀이의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다. 먹을 것의 풍요로움은 거센 파도와 태풍을 이겨내야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바다의 신을 섬기고 풍어와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행위가 점점 형식을 갖추고 발전하게 되었다. 풍어제와 같은 의식은 바다를 기반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의 축제이기도 했기에 자연스럽게 ‘놀이’, ‘유희’의 개념이 담기게 된다.

 

난파선 발굴조사로 찾아낸 뱃사람들의 놀이다

바다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선원들은 놀잇거리와 함께 생활했다. 고려시대에는 서해 연안을 따라 남부지방에서 개경(지금의 개성)으로 세곡과 교역품을 운반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연안에서 발견된 옛 난파선은 바다를 이용한 교역 상황을 보여 준다.

 

그중에서도 2011년 태안 마도해역에서 발견된 ‘마도 3호선’에서는 뱃사람들의 놀이를 보여 주는 특별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바로 조약돌로 만든 46개의 장기알이다. 장기알은 선원들의 주요 생활공간이었던 제3칸에서 발견되었다. 장기알은 직경 3~5㎝의 크기로 편평한 면에 글자를 적었다. 확인 가능한 묵서는 ‘차(車)’, ‘포(包)’, ‘졸(卒)’ 세 글자다.

 

01. 조개에 구멍을 뚫어 만든 조개가면은 의례 혹은 제사에 사용되었다고 추정하나

어린이 장난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부산박물관 소장품)

02.마도 3호선 발굴조사 중 돌 장기알 발견 당시 모습

03. 바닷속에서 발견된 고려시대 돌 장기알(연출 사진)

 

마도 3호선은 1265~1268년에 여수를 출발해 강화도까지 운항하는 배였다. 중간중간 주요 포구에 정박한다 하더라도 20~30일 예상되는 항해길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선원들은 배에서 장기를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기는 고려시대 초 송나라에서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마도 3호선에서 발견된 장기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꽤 오래된 것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가 가속화되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이 인간 생활 전반에 스며들면서 바다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생산, 교류, 모험 등 전통적으로 ‘생존’을 위해 바다를 이용했던 인간의 활동이 점차 휴식, 놀이 등 ‘즐거움을 향유’하는 것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바다에서의 놀이문화와 장난감

해수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처음에는 치료와 요양의 목적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20세기 초, 일본의 해수욕 문화를 체험한 유학생들을 통해 치료의 목적뿐만 아니라 즐기는 것으로 서서히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1910년대 일본인 거류지가 밀집한 개항장을 중심으로 해수욕장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1920년대에는 해수욕장 지침서까지 등장했다. 이를 통해 본격적으로 바다에서의 휴식이 시작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해수욕장을 즐기는 이들은 일부 계층에 한정되었고, 대중화가 된 것은 이후의 일이다.

 

1960년대 후반 바캉스라는 외래어가 대대적으로 유행하며 휴가에 대한 인식이 본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휴가’를 뜻하는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는 우리나라에서 바다나 산에서 즐기는 그럴싸한 ‘여름휴가’를 의미하게 된다.

 

사람들은 ‘바캉스’라는 단어를 통해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휴가를 꿈꾸게 되었다. 해수욕과 바캉스 문화가 유행하기 이전에 바다에서 헤엄치고 노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운 여가문화의 확산과 대중화로 탄생한 다양한 놀잇감(장난감)은 바다와 해변에서 보내는 여름휴가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04. 튜브와 발리볼 등의 장난감      05. 바다, 항해와 관련된 레고 장난감

 

이와 더불어 해양스포츠의 발달은 바다를 더 역동적으로 즐길 수 있게 했다. 일부 동호회를 중심으로 행해졌던 해양스포츠는 88서울올림픽 이후 레저업체들의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고, 1990년대 들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해수욕, 일광욕, 해상유람 등의 전통적 해양 놀이활동이 요팅(yachting), 보팅(boating), 다이빙(diving) 등의 수상레저나 바다낚시, 관광 잠수정 등 다양한 활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새로운 문화의 발생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장난감 제작 반영에 가장 좋은 조건이 된다. 따라서 전에는 없었던 해양 레저와 관련된 장난감이 만들어지게 됐다. 실제로 즐기지는 못해도 해양레저나 여가를 즐기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간접적으로나마 바다에서 즐기는 여유로운 휴식에 빠질 수 있게 되었다. 장난감을 통해 해양레저를 접하고 친숙해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문화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게 됐다.

 

인류에게 바다는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자 삶의 터전이며, 놀이의 공간이다. 인간은 바다에서 난 산물로 놀잇감을 만들었고, 바다에서의 놀이를 위해 놀이도구를 만들었다. 인간의 상상력은 자그마한 장난감을 통해 공간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커다란 바다를 눈앞에 펼쳐 준다. 전래 없는 감염증의 유행으로 일상생활이 제한되어 답답한 요즘, 바다에서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달래보면 어떨까. 출처:,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