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부조 문화전통은 미래 유산

상호부조 문화전통은 미래 유산

 

상호부조 문화전통은 미래 유산

 

세계 석학 유발 하라리(Harari)는 그의 책 사피엔스(Sapiens)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특징은 상호부조와 협동이라고 했다. 신체적으로 불리한 조건이지만 사피엔스는 협동과 상호부조의 힘 덕분에 거대 동물도 지배하고 열악한 환경도 이겨내면서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상호부조와 협동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문화적으로 학습하고 실천한 결과물이다. 그래서 협동의 문화전통을 사회학자 벨라(Bellah)는 마음의 습관(A Habit of the Heart)이라고 불렀다. 한국의 상호부조 문화전통은 품앗이, 두레, 계, 사창, 향약 등 매우 다양하다. 이 문화전통은 전통시대의 미풍양속일 뿐 아니라 앞으로 발전시켜야 할 문화 자산이다.

 

 

품앗이와 두레

경성제대의 스즈키 교수는 1942년 농촌답사의 사회학 보고서에서 품앗이와 두레에 대해 상세히 서술했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상호부조 조직이 있게 마련이지만 그는 한국의 상호부조 문화로 품앗이와 두레를 주목했다. 두레와 품앗이는 상호부조라는 지혜의 씨줄과 날줄이다. 두레라는 공동체적 협동조직과 쌍을 이루는 품앗이는 자유로운 개인 간의 느슨한 자발적 결사체이다.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한국의 품앗이는 세계인의 무형문화유산이 되었다.

 

개인과 집단의 균형은 현대 사회학에서도 풀기 어려운 문제다. 우리 조상들은 개인과 집단 그 어느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개인 간의 자유로운 결합과 마을 단위의 공동체적 결합, 즉 품앗이와 두레라는 두 개의 문화문법을 만들어 냈다. 이 두 유형을 결합한다면 우리는 개인과 공동체 간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다양한 상호부조 조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0과 1이라는 디지털 부호로 무수히 많은 정보를 생산하고 기록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01.김홍도 필 풍속도 화첩 중 <길쌈> 날실에 풀을 먹이는 베매기와 베틀에서 베를 짜는 모습을 그린 작품 ⓒ문화재청

02.한산(韓山) 모시짜기의 씨줄날줄 만들기 길쌈두레 모습. 모시짜기로 유명한 한산지방을 중심으로 발달한 베짜기에

관한 민속놀이로 주로 부녀자들의 가내수공업이었다. ⓒ문화재청

 

 

계, 마을금고, 신용조합

계는 품앗이와 두레의 장점을 조화시킨 전통의 좋은 보기이다. 품앗이와 달리 계는 자유로운 개인의 자발적 결합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회원의 경계선이 분명하고 회원 간의 분업이 이루어지는 결사체다. 인류학자 기어츠(Geertz)가 인도네시아의 계를 ‘윤번제 목돈 조직’으로 소개했다. 또 여러 학자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회의 유사조직을 소개했다.

 

그런데 대체로 다른 나라의 계는 ‘목돈 마련’이라는 식리적, 도구적 성격이 강하지만 우리나라의 계는 결사체적, 표출적, 사회적 성격이 강하다. 한국의 계에서 식리적 성격은 여러 기능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가장 핵심적인 기능은 아니다. 혹자는 한국의 계는 친한 사람 사이에서만 만들어지기 때문에 패거리 문화를 만들고 연고주의를 양산해서 민주주의와 건전한 시민사회를 가로막는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러한 근대주의자들의 편견이 오류라는 점을 증명한 바 있다. 계에 활발히 참여하는 사람들이 시민단체나 선거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계는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전되기 수백 년 전부터 참여자 간의 민주주의, 수평적 의사소통, 상호책임 등의 문화전통을 발전시켰다. 한국의 신협이나 마을금고는 외형적으로는 전통시대의 조직이 아니라 현대의 조직이며 서구에서 수입된 조직이다.

 

그래서 광복 후 근대화 시기인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서구의 협동조합이론 덕분에 탄생하고 발전했다. 그러나 한국의 신협이나 마을금고(오늘날의 새마을금고)는 다른 제3세계의 신협이나 협동조합에 비하면 아주 단시간에 세계의 대표적인 협동조직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성공적 발전에는 계라는 상호부조 문화의 전통에 힘입은 바가 크다.

 

03.김제 신풍농기 김제시 신풍동에서 사용하던 두레기로, 용이 전문가(畵員)의 솜씨로 매우 훌륭하게 그려져 있고,

기증자와 두레패의 중심인물, 제작년도 등이 묵서(墨書)로 적혀 있다. ⓒ문화재청

04.부전 대동계(浮田 大洞契)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공주시 우성면 부전동(뜸바골:내산리, 한천리, 도천리, 신웅리 등

4개 리, 15개의 자연마을) 대동계 자료 ⓒ문화재청

 

 

사창과 향약의 자치와 민간 주도 사회안전망

계·두레·품앗이 등과 함께 주목해야 할 상호부조 전통으로 사창과 향약이 있다. 불행하게도 사창과 향약의 탁월한 조직원리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사창이나 향약은 민주화와 지방자치가 발전되지 않았던 전통사회에서 정부 주도가 아니라 민간의 자치와 상호부조를 강조했다. 잘 알다시피 현대의 미국이나 유럽에서 복지행정이나 민주주의 발전에서 시민 주도와 시민 참여의 거버넌스를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자치 거버넌스야말로 사창과 향약의 정신이다. 정부가 주도했던 환곡은 부패와 고리대착취 도구로 전락하거나 민생현장과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다.

 

이에 반해 사창은 주민이 출자한 주민 창고 즉, 주민은행으로 주민에 의해 운영됐다. 사창은 주민이 걸어서 갈 수 있는 사(社, 마을이나 면)에 있는 창고 다시 말해,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생활 현장의 창고다. 사창과 더불어 향약도 향민 주체의 상호부조 조직이다. 조선시대에 원님들이 향약을 자기 통제하에 두기도 했지만, 향약은 원래 향민의 자치조직이자 상호부조 조직이다.

 

향약이 자치 조직과 상호부조의 성격을 잃어버리고 양민들을 괴롭히는 기구로 타락하자 다산 정약용은 향약 무용론을 제기하고 향약 폐지를 주장했다. 다산과 달리 다른 학자들은 향약의 본래 이념을 살려 향민의 자치와 상호부조 조직으로 발전시키고자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다. 율곡은 해주향약·서원향약·사창계약속·사창법 등 뛰어난 저술을 남겼다.

 

개발된 이론을 실제 실천으로 옮긴 사례도 많았다. 정부가 향민의 복지를 챙길 수 없을 때 사창과 향약이 자치와 상호부조의 정신으로 향민의 복지를 담당했던 것이다.

 

05.사창 공문 1898년 흥덕군수(지금의 고창군 흥덕면)가 사창 관리책임자 사수(社首)에게 보낸 공문 ⓒ무릉박물관은

06. 율곡의 사창계 약속 (ⓒ『율곡전서』 권16)

 

 

씨족마을은 상호부조 전통의 실천현장이자 학교

산업화와 도시화가 본격화되기 전에 씨족마을에는 상호부조의 문화전통이 활발하게 실행되고 있었다. 이들 마을은 수백 년에 걸쳐 상호부조의 문화전통을 발전시켜 왔다. 일본인 학자들과 조선총독부의 관습조사 영향을 받아 씨족마을을 오랫동안 동족마을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일본의 동족마을과 한국의 씨족마을은 매우 다른 조직원리를 갖고 있다. 그래서 인류학자들은 인류학 전통을 받아들여 종족마을(lineage village)이라고 부르고 역사학자들은 동성마을이라고도 부른다. 동족마을·동성마을·씨족마을·종족마을 등은 동일 성씨들의 마을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동일 성씨들의 모임이라는 외형적 특징 너머 이들 마을은 훌륭한 인문학적 전통을 가꾸고 실천해 왔다. 품앗이·계·두레·동약·대동계 등의 상호부조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소설가 송기숙은 마을의 상호부조와 협동의 전통을 ‘마을공화국’이라는 말로 간명하게 표현했다.

 

마을공화국의 상호부조 문화는 마을을 넘어 사창과 향약이라는 더 큰 협동조직으로 발전되어 갔다. 또 마을공화국은 국난의 시기에는 의병을 일으키는 견위수명의 현장이고 민간의 힘으로 수많은 서당과 서원을 일으켜 세계적 인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양동마을과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상호부조 문화전통은 현재와 미래의 자산

상호부조·상부상조의 전통은 옛날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옛 지혜를 잘 연구하여 오늘의 사회문제 해결에 응용하겠다는 온고지신과 법고창신의 자세를 지녀야 한다. 2009년 여성 최초로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오스트롬(Ostrom) 교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산촌과 어촌의 상호부조 전통을 분석하고 체계화하여 『공유의 비극을 넘어』라는 명저를 남겼다.

 

이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마을이 스위스의 퇴르벨(Toerbel) 마을이다. 필자는 제네바의 국제개발대학원(IHEID)에 6개월간 교환교수로 있으면서 이 마을을 자주 방문했다. 그런데 스위스 사람들 가운데 이 마을의 상호부조 전통을 아는 사람무릉박물관은 별로 없었다. 오스트롬 교수가 아니었으면 퇴르빌 마을의 상호부조 문화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 한국에서는 상호부조의 문화전통이 아직도 숨 쉬고 있다. 그 현장을 제주도의 마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주도 마을의 수눌음(품앗이의 제주어)과 향약은 옛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실천되고 있는 살아있는 지혜이다. 다산 정약용이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향약의 상호부조와 자치이념이 21세기 제주도 마을에서 실천되고 있다.

 

제주도 마을들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상호부조 문화전통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역사 속의 상호부조 문화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그래서 상호부조 문화를 계승할 수 있도록 한국의 연구자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함께 협력하며 노력해야 할 중요 과제이다.  출처: 글. 한도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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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