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을 품은 비색청자숟가락

용을 품은 비색청자숟가락

 

용을 품은 비색청자숟가락버들잎 모양의 술잎(숟가락의 음식을 떠서 입에 넣는 부분) 바닥면에 한 마리 반룡(蟠龍)이 발톱 세 개가 달린 앞발을 힘차게 뻗고 있다. 맑은 국을 뜰 때면 내달리는 용의 형상이 빛에 굴절되며 더욱 기운생동했을 것이고, 갓 지은 흰 쌀밥을 먹을 때는 마치 구름이 흩어진 뒤 모습을 드러내는 용처럼 보였을 것이다.

 

01.청자음각구름용무늬 숟가락ⓒ국립중앙박물관

 

왕실 사용품이라는 증거, 장식된 용무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음각구름용무늬숟가락(靑磁陰刻雲龍文匙, 이하 청자숟가락)’ 술잎의 용무늬를 보면 문득 이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었을 주인공이 궁금해진다.  공민왕의 딸이 하사한 유리그릇에 담긴 공양 음식을 ‘마류숟가락[瑪瑠匙]’으로 떴을 보우스님이(『고려사절요』 권26 공민왕 5년, 1356년 4월) 어쩌면 ‘마류시’에 새겨진 비슷한 용무늬를 보았을는지 모르겠다.  원래 용무늬는 왕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청자음각구름용무늬상감‘상약국’명합(靑磁陰刻雲龍文象嵌‘尙藥局’銘盒)” 뚜껑에도 용무늬가 새겨졌는데, 명문의 ‘상약국’은 고려시대에 왕의 어약(御藥)을 관장하기 위해 설치했던 관청이다.  청자숟가락에 표현된 용은 ‘상약국’명합에 장식된 용의 모습과 상당히 유사하므로 둘 다 왕실에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청자숟가락은 12세기 청자의 전형적인 비색(翡色)을 띠며, 길이는 25.5cm로 비교적 길다.  술잎에 이어지는 술자루(손잡이 부분)의 측면 형태는 완만한 S자인데, 대나무 마디처럼 구획된 곳마다 죽순 형상을 반양각 기법으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와 같은 조형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양각죽순모양주자’ 몸통에 새겨진 무늬와도 비교된다. 한편 술자루 끝부분인 술총은 삼각형으로 마무리 되었다. 고려시대 일반적인 청동숟가락의 뭉툭한 능형(菱形)이나 제비꼬리처럼 둘로 갈라진 연미형(燕尾形) 술총과는 다른 점이다.

 

02,03. 청자음각구름용무늬상감 상약국명합과 뚜껑의 용무늬  청자양각죽순모양주자 

04. 청자양각죽순모양주자 ⓒ국립중앙박물관

 

청자로 만들어진 숟가락으로는 유일한 예

어원적으로 보면 오늘날 쓰이는 ‘수저’라는 말은 사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묶어서 지칭하는 것이다.  숟가락과 젓가락에 관한 가장 이른 문헌 기록에는 각기 ‘시(匙)’와 ‘저(箸)’로 기록되어 있다.  ‘은시저’나 ‘시저’란 명칭이 『고려사』에서도 나타난다. 북송의 관리 손목(孫穆)이 편찬한 견문록이자 어휘집인 『계림유사』(1103년) 기용(器用) 항목에는 ‘시(匙)’는 ‘술(戌)’, ‘저(箸)’는 ‘절(折)’이라고 당시 고려어 발음이 기록되어 있다.  숟가락은 ‘술+가락’의 합성어이며, 젓가락은 ‘저+ㅅ(사이시옷)+가락’의 합성인데, 여기서 ‘가락’은 길고 가늘게 생긴 물건을 이르는 말이다.

 

고려시대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무덤에서 많이 확인되며, 왕릉에서도 출토됐다.  인종장릉에서는 은제 숟가락과 젓가락이 발견되었는데, 술잎은 타원형이며 자루의 단면이 납작하고 길게 휘어진 곡선을 이루고 있다.  술총은 끝이 뭉툭한 능형(菱形)이다. 젓가락 단면은 둥글고 끝마디에 음각 홈이 파여 있다. 한편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고려 무덤에서도 청동제 숟가락과 젓가락이 출토되었다. 술잎은 버들잎형이고, 술자루의 측면은 완만한 S자 형태며 술총은 제비꼬리형이다. 젓가락 단면은 둥글다. 고려시대의 숟가락과 젓가락은 대부분 청동으로 제작되었으며, 제작 시기는 대체로 12~13세기로 추정된다.

 

5. 은제시저 인종장릉 출토           6. 청동시저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무덤 출토 ⓒ국립청주박물관

 

지금까지 고려시대 청자가마터인 강진이나 부안에서는 대접과 접시가 상당량 출토되었지만, 청자숟가락과 젓가락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청자숟가락은 용무늬가 새겨진 비색청자로 청자가마에서 생산된 것이 분명하며, 지금까지 확인된 청자로 만든 숟가락의 유일한 예다. 유사한 모양과 무늬가 동시대의 청동 숟가락이나 청자합, 주자 등에서 여럿 확인되므로 이 숟가락 역시 고려 12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고려시대에 제작된 많은 수의 청자가 일본에 반출되어 있는 상황에서 아름다운 비색으로 찬연한 ‘용을 품은 청자숟가락’은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오직 한 점만 전하고 있기에 더욱 소중한 유물이다. 앞으로 어느 이름 모를 옛 무덤에서라도 또 다른 청자숟가락뿐 아니라 젓가락까지 온전한 형태로 세상에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글, 사진. 장동철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실 문화재감정위원)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