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끝내 산산조각 철거 빈터만 남아

일본 극우 정치인은 기다렸다는 듯 일본 내의 다른 조선인 추도비 철거를 거론하며 공세를 폈다.

일본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끝내 산산조각 철거 빈터만 남아

일본 군마현이 시민단체 반대에도 지난달 다카사키시 현립 공원 '군마의 숲'에 있던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를 끝내 산산조각 내 철거했다. 일본 극우 정치인은 기다렸다는 듯 일본 내의 다른 조선인 추도비 철거를 거론하며 공세를 폈다. 군마현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인 6천여 명이 동원돼 노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추도비는 일본 시민단체가 한반도와 일본 간 역사를 이해하고 양측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2004년 설치했다.


                                        일본 군마현 조선인 추도비 철거 현장을 보도하는 ⓒ 아사히신문


아사히신문은 1일 군마의 숲 상공에 헬리콥터를 띄워 철거 현장을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추도비가 있던 자리는 빈터가 됐고, 비석을 철거해 잘게 부순 잔해가 쌓여 있다. 추도비는 지름 7.2m인 원형 토대 위에 세워졌으며 높이 4m의 금색 탑이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아사히신문은 "추도비가 있던 자리는 이미 비어 있었고, 중장비로 새 흙을 메워 땅을 고르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라고 전했다.

비석 앞면에는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한국어·일본어·영어로 적혔고, 뒷면에는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추도비는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 강제연행을 조사하던 일본 시민단체가 역사적 사실을 잊지 말고 한일 간 우호를 증진하기 위해 1995년 건립했고, 당시 군마현 의회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건립 당시 종교적·정치적 행사를 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았으나, 2012년 추도제 때 행사 참가자가 강제 연행을 언급했다는 점을 극우단체들이 문제 삼아 철거를 요구했다. 논란이 되자 추도비를 관리하던 시민단체는 매년 열던 추도제도 자제했으나, 군마현 당국은 10년마다 설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워 2014년 설치 허가 갱신을 거부하고 철거를 요구했다.

추도비를 관리하는 시민단체가 소송을 제기했으나, 2022년 일본 최고재판소(대법원)가 군마현 당국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결하면서 철거가 확정됐다.

야마모토 이치타 군마현 지사는 조선인 추도비를 산산조각 내 철거해 놓고도 지난 1일 기자회견에서 "비 자체나 비의 정신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라며 과거의 역사를 수정할 의도는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야마모토 지사가 한국과 외교 문제로도 발전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일본에서 이번에 한국 정부의 반응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추도비 철거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지적하거나 철거 반대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 당국자는 군마현의 추도비 철거 관련 움직임에 대해 "한일 간에도 계속 필요한 소통을 하고 있다며 이번 사안이 양국 간 우호 관계를 저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만 말했다.

다만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가 철거를 앞두고 추도비 현장을 방문하고 군마현 관계자를 만나 철거 반대 의사를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 주요 언론과 지식인조차 군마현의 추도비 철거가 역사 왜곡을 조장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아사히신문은 지난달 30일 사설에서 사법부 결정이 철거까지 요구한 것은 아니다라며 전쟁 이전의 일본을 미화하는 풍조가 강해지는 가운데 일부 세력의 항의를 받은 군마현이 정치적 중립을 방패 삼아 무사안일주의에 빠지려는 것이라면 역사 왜곡을 돕는 것일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헌법학 전공자인 후지이 마사키 군마대 교수도 비가 철거되면 결과적으로 역사 수정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조선인 추도 시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례가 다른 현에서도 있어서 철거가 나쁜 전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군마현 추도비 철거가 나쁜 전례가 돼 확산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은 현실화하는 조짐을 보인다.

과거 한복 차림 여성 등을 비꼬았던 극우 성향의 자민당의 스기타 미오 의원은 추도비 철거 뒤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정말 잘됐다. 일본 내에 있는 위안부나 조선 반도 출신 노동자의 비 또는 동상도 이 뒤를 따랐으면 좋겠다며 거짓 기념물은 일본에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군마현의 조선인 노동자 추도비 철거 전후 (도쿄 교도=연합뉴스) 


                         일본 군마현 현립공원 '군마의 숲'에 세워져 있었던 조선인 추도비
                         ⓒ 일본 시민단체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

               

군마현 당국은 시민단체가 철거 요구에 불복하자 지난달 29일 공원 전체를 폐쇄하고 추도비를 철거하는 행정 대집행에 들어갔고, 시민단체 측에 철거 비용 3천만 엔(약 2억 7천만 원)을 청구하겠다고 통보했다. 또한 기억 반성 그리고 우호라는 문구가 적힌 금속판과 조선인에게 큰 손해와 고통을 준 역사의 사실을 깊이 반성, 다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표명한다는 글이 새겨진 금속제 비문 등을 떼어내 시민단체에 전달했다.

추도비를 소유한 추도비를 지키는 모임 공동 대표 미야가와 쿠니오씨는 철거 사진을 보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양심이 갈기갈기 찢겼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추도비는 군마의 양심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돌아가신 분들을 추도하는 표석인데, 그것을 권력이 제거한다는 것이 용납되는가 라고 반문했다. 이어 군마현의 행동에 분노를 느낀다라며 대죄의 역사를 남긴 군마현에 매우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오는 12일 철거 작업이 모두 끝나고 군마의 숲이 재개방되면 현장을 확인한 뒤 앞으로의 활동 방향을 정하겠다는 계획이다.

엔도 켄 도쿄대학 법학대학원 교수는 아사히신문에 최근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기반이 약하다.라면서 추도비 철거는 지금 같은 시기에 해서는 안 되는 일 중의 하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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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