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어묵 '오뎅'의 잔재(殘滓)가 아닌 부산 특유의 명물 식품으로 도약하다,

부산광역시는 20세기 초부터 어묵을 생산한 지역으로서 '부산어묵'이라는 고유명사가 통용될 정도로 한국 특유의 어묵문화의 본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어묵 '오뎅'의 잔재(殘滓)가 아닌 부산 특유의 명물 식품으로 도약하다,

어묵은 으깬 생선살과 전분을 배합한 반죽에 소금 등의 부재료를 넣어 간을 하고 모양을 만들어서 굽거나 삶거나 찌거나 혹은 튀겨낸 음식을 말한다. 어묵은 본래 우리나라에 전해진 일본의 가마보코(かまぼこ, 蒲鉾)에서 비롯된 식품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한국인의 입맛에 맞게 개발되고 진화되는 과정을 거쳐 현재는 국민간식으로까지 사랑받는 한국의 향토식품이 되었다. 부산광역시는 20세기 초부터 어묵을 생산한 지역으로서 '부산어묵'이라는 고유명사가 통용될 정도로 한국 특유의 어묵문화의 본 고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부산 어묵

날씨가 쌀쌀해지면 구미를 당기는 음식이 있다. 탱탱하고 쫄깃한 식감과 감칠맛 나는 국물에 익혀낸 어묵이다. 나이 든 어른들에게는 궁핍했던 시절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던 추억의 음식이자, 지금은 젊은이들의 주전부리로 사랑받는 길거리 음식의 대표주자이다. 어묵은 어느 가정에서나 어묵볶음으로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국민반찬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어묵은 길거리 포장마차로부터 시장의 음식좌판, 분식집, 어묵전문점, 고급일식집 등 여러 다양한 공간에서 접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널리 보편화된 식품이다.



어묵하면 거의 고유명사와 같이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바로 ‘부산어묵’이다. 상점이나 마트의 식품코너에는 제조업체는 달라도 ‘부산어묵’이라는 상표를 단 어묵제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심지어 어묵꼬치를 파는 길거리 포장마차에서도 그냥 어묵이 아닌 ‘부산어묵’이라고 붙여 놓은 팻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마도 명시적이든 묵시적이든 간에 부산이 어묵의 고장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러한 명성에 기대고자 한 것이다.



부산역에서 내리면 2층 열차대합실에는 다른 기차역에서는 볼 수 없는 대형어묵상점에 사람들이 북적이는 진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른바 ‘오뎅’으로 알려진 어묵꼬치를 판매하는 매점은 여느 기차역사에도 있지만 다양한 어묵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있는 기차역은 아마 부산이 유일할 것이다. 더군다나 판매하는 어묵제품도 기발한 제품들로 다양하다. 예컨대 다양한 종류의 ‘어묵타르트’ 제품은 어묵에 대한 기존의 인식과 통념을 사라지게 만들 정도이다. 부산이 어묵의 고장이라는 것을 부산역을 나서기 전에 체험하는 순간이다.



부산어묵은 1996년부터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를 기점으로 항도(港都) 부산이 국제적인 문화관광도시로 발돋움하면서 부산의 명물로 더욱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영화제 초기에 개막식이 진행되었던 부산광역시 중구 남포동 BIFF광장에는 부산어묵과 어묵국물에 익힌 가래떡고치, 씨앗호떡 등 예전에는 부산 특유의 간식을 파는 좌판에는 연중 내외국인들로 붐빈다. 남포동을 지나면 국제시장의 ‘오뎅골목’과 부평깡통시장의 ‘부산어묵골목’ 등지에서는 여러 가지 부산어묵을 맛보고 다양한 어묵제품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부산광역시가 어묵의 고장으로 뿌리내리게 된 배경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부산에서 어묵 생산의 역사는 1907년 11월 대창정(大昌町, 현 부산광역시 중구 중앙동)에 설립된 야마구치어묵제조소(山口蒲鉾製造所)에서 시작된다. 이후 일제강점기에는 1920년대까지 수산물통조림 가공공장이 주로 많이 들어섰다가 1925년~1929년 무렵에는 어묵공장들이 다수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부산에 설립된 어묵공장 15개소 가운데 10여 개가 이 시기에 생겨났다. 어묵공장의 소유주는 대부분 일본인이었지만, 1918년 9월 지금의 범일동에 설립된 정가마보코제조소(正蒲鉾製造所)와 1927년 2월 지금의 보수동에 설립된 산삼가마보코점(山三蒲鉾店) 등 두 곳은 김정선(金正善)과 나경중(羅景中) 등의 한국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1907년부터 1929년 사이에 설립된 부산의 어묵공장들은 일제의 식민지배가 끝날 때까지 대다수의 공장들이 영업을 계속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일본에서 어묵 제조기술을 익히고 귀국한 박재덕 씨가 1950년 영도(影島)에 삼진식품을 설립한 것을 시작으로 동광식품, 영진식품, 환공어묵 등 어묵제조업체들이 설립되면서 부산어묵의 전통과 변화를 견인하고 있다. 부산어묵은 1940~1960년대까지는 생선을 맷돌에 통째로 갈고 기름 솥에서 튀기는 방식이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일본에서 자동화기기를 도입하면서 제조방식의 개선을 이루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는 1980년대 외식산업의 성장을 발판으로 새로운 도약기에 접어들었다. 2014년에는 부산의 10대 히트상품으로 부산어묵이 부산국제영화제 등과 함께 선정됐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부산어묵은 어육 함유량 70%의 원칙을 지키면서 맛과 품질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어묵은 오래전부터 ‘오뎅(おでん,御田)’이라는 일본어 명칭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오뎅이 어묵이라는 우리말로 바뀌게 된 시기는 1992년 무렵이다. 당시 국립국어원에서 제시한 ‘식생활관련순화안’에서 생선묵을 ‘어묵’으로 바꾸면서 교육기관과 방송언론매체를 통해 계도(啓導)하기 시작하였다. 가장 큰 변경사유는 일본어의 잔재를 우리말로 바꾼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원을 먼저 살펴보면 ‘오뎅’으로 불리던 어묵은 사실 ‘오뎅’이 아니다.



일본 위키피디아(ウィキペディア)의 오뎅 항목을 인용하면 “가다랑어와 다시마에서 취한 맛국물에 양념으로 맛을 내고 튀긴 어묵(さつまあげ)ㆍ한펜(はんぺん)ㆍ구운 대롱어묵(焼きちくわ)ㆍ동그랑땡(つみれ)ㆍ곤약ㆍ무ㆍ고구마ㆍ유부ㆍ대롱어묵ㆍ소 힘줄ㆍ삶은 달걀ㆍ튀긴 두부 등 다양한 종류를 넣어 장시간 끓인 조림요리의 일종”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먹는 어묵은 일본의 오뎅요리에 사용된 재료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요리명 자체가 어묵의 이름으로 와전된 것이다.



일본의 오뎅요리에 들어간 어묵은 종류만 살펴보면, 우선 사츠마아게(さつまあげ)는 으깬 생선살을 둥글고 납작하게 만들어 튀긴 어묵이다. 한펜(はんぺん)은 으깬 생선살을 삼각형 또는 반달형으로 쪄서 만든 어묵이다. 츠미레(つみれ)는 으깬 생선살을 완자형태로 동그랗게 뭉쳐서 삶은 것이다. 치쿠와(ちくわ)는 대나무에 으깬 생선살을 붙여서 굽거나 쪄낸 어묵으로 완성 후 대나무를 빼내면 어묵 가운데 구멍이 마치 대나무의 빈 속과 같다고 하여 대롱어묵으로 불린다. 이외에도 일본의 어묵은 재료와 가공법, 지역에 따라 무수히 많은 종류가 있다. 이러한 일본의 어묵은 물가에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인 부들의 열매와 닮았다하여 이름 지어진 가마보코(かまぼこ, 蒲鉾)로 통칭된다. 우리가 어묵으로 부르는 식품은 일본의 가마보코에서 유래한 것이다. 가마보코와 관련하여 우리 고문헌에서 흥미로운 내용을 살펴 볼 수 있다. 18세기에 편찬된 『수문사설(謏聞事說)』이라는 조리서에 ‘가마보곶(可麻甫串)’이라는 음식의 조리법이 소개되어 있다. ‘가마보곶’은 바로 ‘가마보코’의 발음을 한자어로 표기한 것으로 원어와 상당히 유사하다.



“가마보곶. 숭어 혹은 농어 혹은 도미를 잘라서 편을 만든다. 별도로 소고기, 돼지고기, 목이버섯, 석이버섯, 표고버섯, 해삼 등 여러 재료 및 파, 고추, 미나리 등 여러 가지 채소를 다진다. 어편(魚片) 1층에 다진 소 1층, 또 어편 1층에 다진 소 1층으로 이와 같이 3~4층을 만든 후 두루마리처럼 말아서 녹말가루로 옷을 입혀 끓는 물에 삶아낸 후 칼로 잘라서 편을 만든다. 그러면 어편과 다진 소가 서로 둘둘 말린 것이 마치 태극모양과 같다. 비로소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소의 여러 재료가 다섯 가지 색으로 나뉘는데, 칼로 자른 후에는 무늬의 결이 매우 아름답다
(可麻甫串 秀魚 惑 鱸魚 惑 道味魚 切作片 另以 牛肉 猪肉 木耳 石耳 蔈古 海蔘 諸味 等 及 蔥 苦艸 芹 諸物爲末 魚片一層加饀物一層 又 魚片一層加饀物一層 如是三四層後 捲如周紙㨾 以菉末爲衣 以沸湯煮出後 以刀切作片 則魚片及饀物 相捲回回如太極㨾 乃以苦艸醬食之 饀物諸味 分五色爲之 刀切後 紋理尤佳).“



조선시대에 이미 어묵 만드는 법이 우리나라에 알려졌다는 것도 흥미롭기도 하지만 일본의 가마보코보다 지나칠 정도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재료를 사용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수문사설』의 저자가 숙종(肅宗) 때 어의를 지낸 이시필(李時苾) 혹은 왕실의 종친이었던 이표(李杓) 중 한 사람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두 사람이 모두 궁중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에서 ‘가마보곶’은 궁중음식을 염두에 두고 수록한 것이 아닌 가 한다. 실제로 1902년(고종 39) 고종의 즉위 40주년과 보령 51세를 축하하기 위한 잔치의 전말을 기록한 『임인진연의궤(壬寅進宴儀軌)』에는 대전(大殿)에 올리는 찬품(饌品)에 ‘감화부(甘花富)’라는 음식이 등장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감화부’가 “감화보금을 한자를 빌려서 쓴 말이다”고 한 점에서 가마보곶과 비슷한 어묵요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묵이라는 이름도 엄밀하게 따져보면 그다지 적확한 명칭은 아니다. 어묵은 ‘생선살로 만든 묵’이라는 뜻일 텐데 실제의 묵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묵은 곡식, 열매, 해초, 생선, 가축 등에 들어 있는 전분(식물)이나 콜라겐(동물) 성분을 끓인 다음 식히는 과정에서 젤라틴화 시킨 음식을 말한다. 녹두묵, 도토리묵, 우무, 박대묵, 족편 등이 묵의 대표적인 음식이다. 그런데 으깬 생선살에 전분을 섞고 모양을 만들어 익혀낸 식품에 ‘묵’자가 붙었으니 적절하지가 않은 것이다. 식품의 이름에는 그 식품의 재료와 조리법에 따른 종류를 내포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묵이라는 명칭은 오뎅을 우리말로 바꿀 때 적절한 용어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살펴보지 못한 소산이라 할 수 있다.



어묵은 우리 전통음식 중에서 ‘묵’보다는 ‘완자(完子)’에 가까운 음식이다. 완자는 소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육류와 생선 등을 재료로 삼는 음식으로서, 다진 고기에 두부를 넣고 둥글게 빚어서 기름에 지진 음식을 말한다. 완자는 국물음식에도 잘 어울려서 조선시대에는 완자로 만든 완자탕이 궁중과 반가(班家)에서 애용하는 음식이었다. 또한 중국에도 ‘유완[어환, 魚丸]’이라는 어묵과 유사한 음식이 있다. 생선살 다진 것에 전분을 섞은 다음 둥글게 빚어서 삶거나 튀긴 음식으로 광동요리에 많이 쓰이며 중국인들이 간식으로 애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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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