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한...그들은 누구인가?

협한 ㅡ 그들은 누구인가 ?

‘붕한론(崩韓論)’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 ‘한국 파산, 이런 반일국가는 정치 경제가 파멸한다’ ‘잘 가라 자괴하는 한국이여’ ‘한국은 언제부터 비열한 나라가 되었는가’ ‘붉은 한국 위기를 초래하는 한반도의 진실’ ‘중국과 한국은 숨 쉴 때마다 거짓말한다’ ‘한국인으로 안 태어나서 다행이다’ ‘핑계국가 한국의 입을 다물게 하는 책’ ‘일본이여 더 이상 사과하지 마’   ‘한국 한국인의 품성’….


올해 들어 일본에서 출간된 이른바 ‘혐한(嫌韓) 서적’들의 제목이다. 한국과 한국인을 자극하는 이 같은 혐한 서적들은 일본의 서점마다 버젓이 한 코너를 장식하고 있다. 이 중에는 수십만 부가 팔려나간 베스트셀러도 있다. 지난 2월 출간된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이라는 책은 지금까지 무려 40만부가 팔렸다. 이 책은 켄트 길버트라는 친일 성향의 미국인이 일본은 긍정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비판적으로 바라본 내용을 담고 있다. 아마 일본 독자들은 한·중·일이 아닌 제3자 미국인의 시각으로 한·일, 중·일 관계를 바라봤다는 점에 관심을 보였을 것이다.

필자는 작년 말부터 서울대 학봉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본의 혐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 결과는 얼마 전 ‘일본 출판 미디어의 혐한 현황과 비판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나왔다. 1992년 ‘혐한’이라는 단어가 일본 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이래 일본에서 일고 있는 혐한의 생산·소비 구조를 본격적으로 파헤친 것은 필자의 연구가 처음인 듯하다. 이 논문은 일본 미디어로부터도 관심을 끌었다. 일본의 한 주간지는 지난 9월 필자의 논문 내용을 기사로 소개하면서 필자와 인터뷰도 가졌다. 당시 일본 주간지의 기사 제목은 ‘왜 혐한 서적들은 계속해서 팔리는가, 제 2차 혐한 서적 붐이 출판계 석권 중’이었다.

2차 혐한 붐

이 기사의 제목대로 혐한을 본격적으로 연구한 입장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최근의 혐한 흐름이 2차 붐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온 이른바 ‘헤이트(hate) 출판물’의 1차 붐을 타고 혐한 서적들이 대거 선보인 이후 최근 들어 혐한 서적 2차 출간 붐이 다시 일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혐한 2차 붐이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촉발된 측면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일본 우익들에 문재인 정부가 부정적으로 비쳐지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혐한을 주도하는 이른바 ‘넷우익’(온라인에서 활동하는 우익)은 문 정부를 ‘반일’ ‘친북’이라고 집중 공격하고 있다. 일본의 언론 매체들도 한국의 지난 5월 대선을 전후해 ‘문씨는 친북, 반일(입장)을 관철할 것인가’(요미우리), ‘친북 노선으로 한국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니케이) 등 비판적인 사설을 실어왔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에 대해 여전히 대화를 강조하자 ‘친북 좌파 정권의 유화책’이라며 강도 높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요즘 일본 방송들은 ‘방송판 혐한’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한국 정부 때리기에 여념이 없다.

사실 배타주의를 기반으로 한 우경화 움직임은 비단 일본만의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본의 혐한 흐름에 특별히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차별과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혐한 움직임은 지역 안보를 책임져야 할 한·일 두 나라의 파트너십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인해 동북아 안보 상황이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한·일 양국이 외교·경제·군사적인 면에서 매끄러운 공동 보조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혐한으로 양 국민의 감정의 골이 깊어진 것이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타 민족, 타 국가, 타 종교를 배격하는 배타주의가 일본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고 있는 혐한 서적 출판과 그에 대한 인기는 분명 일본 특유의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일부 보수적인 일본인의 극단적 반응으로 치부해서는 혐한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혐한은 한국·중국의 경제 외교력 강화, 일본 내 한류의 확산과 정착, 미국의 일국 패권주의의 약화라는 국제관계의 구조적인 변동에서 발생하는 뒤틀림을 알리는 신호이다. 우리가 혐한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이런 신호음을 빨리 파악함으로써 한·미·일 동맹관계의 균열을 예방하고, 결과적으로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층으로 확산

최근의 2차 혐한 붐에서 눈에 띄는 것은 새로운 혐한 무드가 일본의 엘리트층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조짐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 후보로 꼽히는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의 경우다. ‘희망의당’을 창당해 10월 22일 치러지는 일본 총선에서 ‘타도 아베’를 외치고 있는 고이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아베 총리 못지않은 극우 인사다. 그는 ‘관동대지진 때 조선인 학살은 없었다’는 혐한론자들의 주장에 찬동해 지난 9월 1일 열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위령제’에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위령제가 열리는 도쿄도 스미다구의 구청장도 그에 동조해 추도문을 보내지 않았다.

올해로 43회째를 맞는 ‘관동대지진 조선인 희생자 위령제’에 도쿄도지사가 추도문을 보내는 것은 그간 일종의 관례였다. 고이케 지사도 작년에는 추도문을 보낸 바 있다. 하지만 고이케는 지난 3월 자민당 도의회 의원이 위령비에 적힌 조선인 희생자 숫자의 객관성을 거론하면서 추도문 발송을 문제 삼자 태도를 바꿨다. 그는 도의회에서 “추도사를 보내는 것을 재고해야 한다”는 의정 질의가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재검토”를 지시했다. 9월 26일에 개최된 도의회 본회의에서는 “다양한 내용의 역사적 기술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것이 명백한 사실인지 역사가들이 규명해야 한다”며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인터넷만 간단히 뒤져도 많은 혐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위안부 문제만 하더라도 왜곡된 정보와 사진들이 정교한 혐한 논리와 함께 잘 정리되어 있다. 역사적 사실에 정통하지 못한 일반 일본인들이 이런 혐한 논리를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인터넷을 뒤지며 스스로 학습해 한국에 대해 적대적 태도로 돌변하는 학생도 지금까지 여럿 봤다.

비단 학생만이 아니다. 필자가 이전에 재직했던 대학의 한 동료교수는 첫 수업시간에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 등 영토 문제를 다룬 일본 외무성의 팸플릿 자료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팸플릿 내용을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필자가 “강단을 한·일 간 싸움터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전체 교원 회의석상에서 항의할 정도였다.

일본에서 혐한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가장 큰 마당은 출판계다. 일본 출판계에서 혐한 서적이 끊이지 않는 것은 일본 출판계의 불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경영난에 빠진 일본 출판업계는 돈 되는 것이면 어떤 내용이라도 출간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런 상황에서 수십만 부 이상 판매되는 혐한 베스트셀러가 등장하자 불황에 빠진 출판업자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손쉽게 팔릴 수 있는 테마에, 저예산으로도 이익을 낼 수 있는 혐한 서적은 이미 일본 출판계에서 매력적인 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혐한 생산지는 출판계

혐한 서적은 분위기가 달아오를 때 맞춰서 출간해야 판매를 보장받을 수 있다. 붐을 타야 한다는 말이다. 출판사들이 시기를 맞춰서 출판하려면 자체 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 이때 출판사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편집대행 회사다. 주문에 맞춰 제 날짜에 원고를 납품해주는 편집대행 회사의 존재는 출판사들의 숨통을 트이게 한다. 이들 대행 회사들은 출판사로부터 이런저런 내용의 혐한 서적을 써달라는 주문이 오면 거기에 맞춰 정보를 훑고 원고를 작성한다. 영세업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원고에 대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낄 겨를이 없다. 이보다는 원고의 내용이 출판사의 주문에 잘 맞춰졌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야만 다음 일감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대혐한시대’를 출간해서 화제를 모은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약칭 재특회) 회장 사쿠라이 마코토도 한 출판사 기획자가 발탁한 경우다. 혐한 서적 출판에 불을 붙인 것으로 평가받는 이른바 ‘만화 혐한류’의 저자 야마노 샤린도 출판 기획자에 의해서 발굴됐다.

특정 국가나 민족, 종교를 대상으로 하지 않더라도 차별의식과 배타주의는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감정의 일부분이다. 문제는 이런 감정들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언론이나 지식인, 정치가들이 이를 이용하거나 선동한다는 데 있다. 일본에서 ‘혐한’이라는 단어가 미디어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92년이다. 미야자와 당시 총리가 한국을 방문한 직후의 일이다. 1992년 11월 8일자 산케이신문은 일본에서 혐한 무드가 일고 있는 몇 가지 이유를 들었는데 첫 번째는 한국 측이 일왕(日王)에게 과거사에 대한 거듭 사죄를 요구하는 것에 대해 보수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고 있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일본인에게 한국의 존재감이 커졌고 냉전 종결 이후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인식이 변화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군 위안부 문제로 일본의 자존심이 상처를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인들 중 혐한을 외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이들의 숫자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들의 활동이 넷우익의 활동과 중복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넷우익의 규모로 추산이 가능하다. 일본의 젊은 비평가 후루야 쓰네히로는 얼마 전 투표 성향을 바탕으로 넷우익의 숫자를 계산한 적이 있다. 그는 2014년 선거에서 자민당보다 더 우익적인 차세대당(현 일본의 마음당)이 거둔 비례대표 득표와 같은 해 1월에 치러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넷우익의 압도적 지지를 받은 가모가미 후보가 받은 득표 등을 감안해 넷우익 숫자를 200만~250만명 정도로 추산했다. 이를 원용하면 혐한 일본인의 숫자가 최대 250만명을 넘지 않는다는 추산이 가능하다. 넷우익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후루야 쓰네히로의 분석에 따르면 넷우익은 평균적으로 이렇다. ‘평균 연봉 450만엔, 일류대 졸업자가 60%, 평균 연령은 38세, 남성 중심(60% 이상), 도쿄 가나가와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거주자가 60% 정도, 직업은 자영업자가 다수.’

헤이트 스피치 데모대

일본에서 혐한 일본인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곳은 ‘헤이트 스피치(증오 연설)’ 데모 현장이다. 인종 차별적인 발언이 예사로 나오는 이곳에서의 단골 소재가 혐한이다. 지난 7월 필자는 집 근처 공원에서 헤이트 스피치 데모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데모 예정 시간이 지나도 주최자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헤이트 스피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들을 일본에서는 ‘카운터’라고 부른다)의 숫자만 더 늘어났다. 카운터들이 도로로 나오지 못하도록 도로변에 간격을 맞춰서 늘어서는 경찰들의 숫자도 동시에 늘어났다.

이날 헤이트 스피치 데모는 예고된 장소에서 500m나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다. 일본에서 경찰에 신고한 곳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 집회가 열리는 일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한참 지나 데모 장소가 변경된 것을 알아챈 수백 명의 카운터들이 현장으로 달려갔고, 결국 헤이트 스피치 데모 행진을 가로막는 카운터들의 항의로 데모는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끝났다. 경찰의 호위를 받지 않았다면 데모대를 태운 버스는 카운터들에 둘러싸여 현장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혐한이 목소리를 키울수록 이들을 막아서는 카운터들의 반대 활동도 활발해진다. 카운터들은 헤이트 스피치 데모를 저지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카운터들의 지속적인 홍보 활동으로 인해서 헤이트 스피치 데모 참가자와 카운터의 숫자가 일부 지역에선 역전되기까지 했다. 도쿄 신주쿠 코리아타운에서 혐한 데모가 자취를 감추게 된 데는 카운터들의 활동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 이런 활동들은 작년 5월 헤이트 스피치 대책법 통과라는 성과로 이어졌다. 이 법은 일본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특정 인종이나 민족 또는 그 후손에 대해서 차별을 목적으로 생명, 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알리거나 모욕하는 헤이트 스피치를 허락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또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 대해서는 차별적 행위를 해소할 책임과 노력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 때문에 벌칙 조항은 만들지 않아 선언적 의미만 가지는 반쪽짜리 법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 법의 실제적 효과는 적지 않다. 법 시행 1년 만에 극우 성향 단체들의 시위나 집회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모든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모든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해서 친근감을 가지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에 대해서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달갑지 않아서 이들의 존재가 눈에 더 자주 들어오는 것은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넷우익의 숫자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이 일본인의 다수를 이루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이들보다는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는 일본인 숫자가 더 많고 혐한보다는 친한(親韓)의 역사가 더 길다. 몇십 년 동안 관동대지진에 학살된 조선인 위령제를 치르는 일본인이나, 일제강점기 때 징용자들의 유해를 찾아서 한국에 반환하는 운동을 벌이는 일본인도 있다. 또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알리는 활동을 하는 일본인도 적지 않다. 혐한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지한(知韓), 친한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착한 조선인도 나쁜 조선인도 모두 적이다”라는 혐한 데모대의 구호와 혐한 서적 출간을 근절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출처 ㅡ 조선일보 2017.10.15   일본 도쿄 박정석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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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