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오백년 역사에서 최고의 외교

조선 오백년 역사에서 최고의 외교로 평가받는 도꾸가와 이에야쓰와 사명대사의 정상회담 이야기

사명대사와 도꾸가와의 진영이다.

임진왜란 당시 백성을 구하고 국가를 수호하기 위해 궐기한 4대 호국사찰이 있다.

묘향산 보현사의 서산대사.금강산 건봉사의 사명대사.계룡산 갑사의 영규대사. 두륜산 대흥사의 처영대사가 그 주인공들이다.

그중 사명대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선조의 명을 받아 전쟁 전후 처리를 위한 강화사 대표가 되어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의 복견성에서 일본의 최고 실세 도꾸가와 이에야쓰를 만나 전쟁책임을 묻고 조선의

포로들을 송환해 오는 임무를 맡은 것이다.

조선의 대표로 수염 기른 대사가 온 것을 보고 도꾸가와가 먼저 선수를 쳤다.


석상난생초 방중난기운

여의하산조 래참봉황군

돌에는 풀이 나기 어렵고

방안에는 구름이 일어나기 어렵거늘

너는 도대체 어느 산에 사는 잡새이기에

여기 봉황의 무리속에 끼어 들었는가?


도꾸가와의 시를 읽은 사명대사도 호탕하게 한번 웃더니 곧바로 붓을 들어 화답하였다.


아본청산학 상유오색운
일조운무진 오락야계군

나는 본래 청산을 노니는 학인데
항상 오색구름을 타고놀다가
하루 아침에 오색구름이 사라지는 바람에
잘못하여 들새의 무리속에 떨어졌도다.


사명대사는 적진에 들어가 봉황을 자처한 도꾸가와에게 들새 무리에 지나지 않는다고 꾸짖은 것이다.

사명대사의 기개와 답시를 보고 도꾸가와 이에야쓰는 대사가 큰 인물임을 알아 보았다.

존경심을 품고 대사의 요구를 모두 들어 줄수밖에 없었다.기록하기를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사명대사와 도꾸가와의 회담 기록을 남기지 않은 것은

일방적으로 대사의 주장을 따랏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선조정이 사명대사를 통하여 일본에 요구한 세가지 조건이다.

1.화해를 요청하는 장군의 국서를 먼저 보내되 장군의 호칭은 일본국왕으로 한다.

2.임진왜란때 도굴된 왕릉(선릉.정릉)의 도굴범을 잡아서 보낼것

3.죄없이 끌려간 조선포로들을 돌려보낼것

사명대사와 도꾸가와의 담판은 한국 외교사에서 가장성공적인 외교로 평가받는다. 사명대사는 8척의 배를 가지고 가서 48척의 배를 타고 돌아왔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포로 3500여명을 데리고 돌아 왔으며 빼앗긴 문화재와 통도사 보궁에서 약탈해간 부처님 진신사리도 되찿아 왔다.

통도사가 일본과 가까워 언제 약탈당할지몰라 정골사리는 비슬산 용연사에 모시고 치아사리 12과는 금강산 건봉사에 각각 분장 봉안하였다.

건봉사에 불치사리가 모셔지게된 연기이다.

사명대사와 도꾸가와의 정상회담의 결실로 조선과 일본은 300년간 화평의 시대를 맞이할수 있었다.

이제는 누가 나서서 남.북 평화교류 협력시대를 열고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우뚝 설것인가.

이제는 누가 아베에게 전쟁책임을 묻고 빼앗긴 문화재를 되찾아 올것인가?


기사및 사진출처 : 석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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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