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善若水) 상선약수

(上善若水) 상선약수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訴惡, 故幾於道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지만 공을 다투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

 

노자 『도덕경』 8장에 있는 말이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한다. 그러므로 道에 가깝다. 거할 때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잘 하고, 마음을 쓸 때는 그윽한 마음가짐을 잘 하고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사랑하기를 잘 하며, 말 할 때는 믿음직하기를 잘 하고, 다스릴 때는 질서 있게 하기를 잘 하고, 일 할 때는 능력 있게 하기를 잘 하고, 움직일 때는 타이밍 맞추기를 잘 한다. 대저 오로지 다투지 아니하니 허물이 없다."

 

『도덕경』의 저자 老子가 이같이 說破한 대상은 일반인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요즘 같은 종이가 없던 시절이었으며, 대나무로 만든 죽간(竹簡)이나 비단으로 만든 백서에 쓰인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당대의 최고위층이었다. 일종의 제왕학(帝王學)이라 할 수 있다. 왕에게 통치의 요결(要訣)을 제시하며 "물처럼 정치하라"고 권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에 딱 맞는 말이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 것, 부쟁(不爭)이 물의 특성이다. 사람들은 낮은 곳에 처하길 싫어한다. 하지만 물은 낮은 곳으로 가기를 스스럼 않는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절대 다툼이 생길 일이 없다.

높은 곳에 처하다 보니 내려 갈 줄을 모르니 썩고 있는 것이다.

 

노자(老子)는 자신이 주창한 도(道)의 상징적 이미지로 물을 잘 사용하였다. 『도덕경』 78장에서 "세상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데 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없다.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유연함이 단단함을 이긴다. 천하에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행하는 사람이 없다"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의 上은 위라는 뜻이고 善은 착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장 위에 있는 善은 가장 위대한 善이 된다. 약(若)은 ~이와 같다 ~ 또는 그와 같다 ~라는 의미인데 약수(若水)라 하면 "물과 같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상선약수(上善若水)는 "가장 위대한 선은 물과 같다"라는 말이다.

노자는 왜 가장 위대한 선을 물에 비유했을까? 그것은 물의 성질에 다음과 같은 특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 물은 공평함을 나타낸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은 수평(水平)을 유지하기 위함인데 물은 조금만 상하의 차가 있어도 반드시 아래로 흘러 수평(水平)을 유지한다. 수평(水平)은 곧 공평(公平)이다.

 

둘째, 물은 완전을 나타낸다.

물은 아래로 흐를 때 아주 작은 구덩이가 있어도 그것을 완전하게 채우면서 흘러간다. 그러므로 물이 수평을 이룰 때 그것은 완전함을 의미한다.

 

셋째, 물은 상황에 따라 한없이 변하면서도 본질을 잃지 않는다.

물이 네모난 그릇에 담기면 네모로 변하고 둥근 그릇에 담기면 둥글게 변한다. 그러나 그렇게 변한 물은 언제나 본래의 성질을 잃지 않고 있다.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물은 겸손(謙遜)하다.

물은 가장 중요한 생명의 근원이지만 언제나 아래로 흐르며 낮게 있는 모든 곳을 적셔준다. 언제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며 조용한 마음으로 기다린다. 알아주면 고맙고 알아주지 않아도 조용히 순종한다. 그래서 겸손이라 했다.

 

노자는 물처럼 다투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고 하면서 물의 정신을 시처럼 읊고 있다.

거선지(居善地) : 물은 낮은 곳으로 임한다.

심선연(心善淵) : 물은 연못처럼 깊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여선인(與善仁) : 물은 아낌없이 누구에게나 은혜를 베푼다.

언선신(言善信) : 물은 신뢰를 잃지 않는다.

정선치(正善治) : 물은 세상을 깨끗하게 해준다.

사선능(事善能) : 물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

동선시(動善時) : 물은 얼 때와 녹을 때를 안다.

 

상선약수(上善若水)가 뜻하는 바는

첫째, 유연함이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자기를 규정하지 않기에 어떤 상대도 받아들인다.

둘째, 겸손함이다.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그 공로를 다투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곳까지 즐거이 임하기에 도달하지 못하는 곳이 없다.

셋째, 기다림이다.

물은 흐를 줄을 알기에 멈추어 설 줄도 안다. 웅덩이를 만나면 그곳을 채울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다.

넷째, 여유(餘裕)다.

물은 바위를 뚫을 힘을 가졌으나 뚫으려 하지 않고 유유히 돌아간다.

다섯째, 새로움이다.

살아 있는 물은 멈추지 않고 늘 흐른다. 그러기에 언제나 새롭다, 또한 늘 깨끗하고 청결하고 한결같다.

 

물처럼 산다는 것. 어쩌면 세상의 변화와 한 호흡으로 사는 자연스러운 인생의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물처럼 산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공을 세워서 자랑하려 하고 남들 위에 군림하려 하는 것이 상식이 되어버린 세상에선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노자가 파악한 물의 속성

老子 曰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노자 왈 인법지하고 지법천하고 천법도하고 도법자연이다.

(人法地 사람은 땅에서 본받는다.

즉 땅이 사람한테 선생이 된다는 뜻으로 사람은 땅을 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地法天 땅은 하늘을 배운다.

즉 땅은 하늘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땅은 하늘을 본받고,

天法道 하늘은 도를 본받는다는 것이다.

道法自然 도는 마지막으로 자연을 본받는다는 것이다.)

 

노자는 자연을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고 있다. 자연은 도를 가르치고, 도는 하늘을 가르치고, 하늘은 땅을 가르치고, 땅은 사람을 가르치고, 결국 사람은 땅과 하늘과 도와 자연에게서 배우는데, 그중 최고의 선생은 자연이라는 것이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라 하여 '최고의 선은 물과 같은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의 선함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결코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스스로 처신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 그 물의 진리를 배우라는 것이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머물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게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물, 그 속성을 보면,

물은 자신의 모양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릇에 따라, 물은 모양을 달리 한다.

물은 자신의 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모든 색을 그대로 비춘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만 흐른다. 낮은 곳으로만 흐르다가 물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드넓은 바다이다.

물은 고이면 썩는다. 항상 웃물이 아랫물로 바뀌어야 살아있는 물이다.

물은 스며들어 없어지면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바람과 같이 사라진다.

물은 무서운 힘을 갖고 있다. 물은 평상시에는 골이진 곳을 따라 흐르며 벼 이삭을 키우고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풀어준다. 그러나 한번 용트림하면 바위를 부수고 산을 무너뜨린다.

 

또한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즉, 가장 약한 힘인 듯 보이는 한 방울의 물들이 계속 떨어질 때,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환경도 변화 시킨다. 가장 힘없는 자가, 가장 강할 수 있다. 본질에서는, 강하고 약함이 다른 것이 아니니까.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힘들이 모여질 때만이, 그 힘들을 발휘할 수 있다.

 

사람도 이 물과 같이 모나지 않고 유연하게 다양한 사람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정의 앞에 주저하지 말고 용기 있게 대처하며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낮추는 현명한 삶을 살아야 한다.

 

상선약수(上善若水)와 처세(處世)

혼란한 시기의 민초들이 어떤 처세를 가져야 몸을 오래 보존할 수 있을까. 어제의 강국이 오늘의 약소국이 되고 오늘의 약소국이 내일의 강대국이 되는 흥하고 망하는 일이 다반사였던 춘추전국(春秋戰國)시대에 침략과 살육, 약탈과 강간의 아비규환 같은 세상을 살면서 당해야 했던 민초들의 절망과 비통을 생각해 보면 노자가 왜 보존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나를 알게 된다.

 

노자는 민초들이 몸을 보존하는 신존(身存)의 방법으로 외기신(外其身)과 후기신(後其身)을 든다. 외기신(外其身)은 세상의 밖에 몸을 둔다는 말로 명예나 이익, 시시비비의 일반 세상사에 끼어들지 말라는 뜻이다. 후기신(後其身)은 몸을 뒤로 둔다는 말로 사람들 앞에 나서지 말고 없는 듯이 살라는 뜻이다. 아무리 고고한 사상과 철학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라도 몸을 보존 못하고 죽음을 당한다면 사상이나 신념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혼란한 세상에서 몸 보존이 으뜸이 되는 이유다.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약수, 수선리만물이불쟁, 처중인지소악, 고기어도.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은데,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그 공을 서로”

다투지 않고,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처하는 까닭에 거의 도에 가깝다.)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불쟁, 고무우.

(거하는데 아주 낮은 곳(땅)을 찾고, 마음을 잘 다스리는데 깊은 연못같이 (고요히) 하고, (다른 사람에게) 주는데 잘 어짊(사사로움이 없는)으로 하고, 말을 하는데 잘 신뢰할 수 있게 하며, 바르게 함으로 잘 다스리고, 일을 도모함에 재능에 잘 맞게 하고, 움직임에 때를 잘 맞춘다. 무릇, (공을)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도다.)

 

노자가 도덕경 상선(上善)장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말이 바로 부쟁(不爭)이다. 부쟁(不爭)은 다투지 말라는 말로 적은 이익을 갖고 다투지 말고 남과 싸우지 말라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중 사람들이 제일 많이 이용하는 문구가 바로 이 상선약수(上善若水)인데 노자는 몸 보존하는 방법의 하나인 외기신(外其身)에 대한 부연 설명을 위해 쓴 것으로 생각된다.

 

골짜기의 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강물이 모여 바다가 되듯 적은 것이 모여 큰 것이 된다.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오판하는 독재자와 억압받는 힘없는 민중이 동시에 새겨야 할 물이 주는 좋은 교훈이다. 민초 한 사람 한 사람은 힘이 없어 언제나 당하고 사는 약한 존재이지만 의식을 깨우치면 무한한 힘으로 결집될 수 있다는 것을 알 때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리라. 부도덕과 무능력이 까발려진 이 현실에 이 나라를 이끈다는 높은 사람들은 이 진리를 빨리 깨우치길 바란다.

물은 모든 생물을 이롭게 하지만 때로는 모든 것을 쓸어버린다. 공기나 물이 없으면 생물이 존재할 수 없고 백성이 없으면 국가가 존재할 수도 없다. 물이 생물에게 절대적 존재이듯 위정자에겐 백성이 절대적 존재이어야만 한다. 권력을 쥔 자들이 국민을 우습게 보고 기만하면 언젠가는 국민들이 폭발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현대사에서 종종 보아왔다. 지금이 그 때가 아닌가 말이다.

 

태산 같은 둑을 무너뜨리는 것은 조금씩 스며드는 물에서 시작한다. 상대를 만나 설득시키고 이기는 것은 물이 스며드듯 조금씩 조금씩 부드럽게 영향을 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며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통용되는 사랑의 사회법칙일 것이다. 지나는 사람의 옷을 벗기는 것은 거센 바람이 아닌 따스한 태양이라는 이솝우화 즉 햇볕정책과 상통하는 내용이 되겠다. 북쪽에는 실패했지만 개인(個人)간에는 매우 유효한 처세술이다.

 

물은 때로는 암벽에 맞서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서 흐른다.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이 아닐 수 없다.

혼자서 살아가는 세상이 아닌, 너와 내가 어우러져 이뤄가는 세상에서, 나와 맞지 않는 불편한 부분들에 대해, 우린 과연 물처럼 뭇사람들도 꺼리는 낮은 곳으로 임하며,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기의 공을 굳이 드러내지 않을 수 있을까? 힘없는 작은 존재지만, 그치지 않고 멈추지 않는 끈기와 열정으로 바위와 같이 단단한 세상의 가치들을 변하게 할 수 있을까? 갑자기, 제자의 발을 씻기셨던 예수의 모습이 떠오른다.

 

상선약수와 비견되는 사상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에 비견되는 교훈으로 아래와 같은 유학의 사단(四端)이 있고 불교의 오온(五蘊)이 있으며 대승불교의 육바라밀(六波羅蜜) 등이 있다.

 

(1) 유학의 사단(四端)

맹자에 의하면, 인간의 본성에는 선천적으로 인, 의, 예, 지 사 덕의 싹이 되는 네 가지 마음이 있다고 보았다. 네 가지 마음(사단)이 없이는 인간이 아니라고 맹자는 파악하고 있다. 맹자의 인간관은 모든 인간은 본래부터 자연적 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것을 사단(四端)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사단(四端)은 자연적 본성을 갈고 닦는 네 가지 실마리 또는 싹, 선천적으로 내재한 마음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겸손하게 사양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시비를 가리는 마음

 

(2) 불교의 오온(五蘊)

불교에서는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를 색·수·상·행·식(色受相行識)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였는데, 이를 ‘오온(五蘊)’이라고 한다. 불교 사상에서는 현실적인 인간을 육체가 있어(色), 눈·귀·코·입·몸 등의 감각 기관으로 느끼는(受) 존재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표상하고(相), 의지하며(行), 인식하는(識) 등 다섯 가지의 요소로 이루어진 존재로 본다. 이것은 인간이 육체적인 존재인 동시에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물질적인 육체는 언제나 생·노·병·사의 무상(無常)함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불교 사상에서는 인간이 본래 불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있다. 불성이란 ‘부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우리의 마음이 겉으로 보기에는 불완전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깊은 곳에는 불성(佛性)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불성(佛性)은 심오하고 참된 법으로, 더 생기지도 않고 더 없어지지도 않는 본래의 마음인 것이다.

 

(3) 대승불교의 6 바라밀(六波羅蜜)

대승 불교에서는 ‘나’라는 의식을 벗어 버리고 궁극적으로 불성(佛性)을 깨닫기 위해서는 나보다는 남을 위해서 사는 수행 방법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나’가 없음을 철저히 인식하여 나의 이기심을 버리고 중생과 함께 하며, 보살의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이다. 바라밀이란 “저 언덕으로 간다.”는 뜻으로서, 욕망과 고통으로 얼룩진 이 쪽 언덕으로부터 해탈의 경지를 상징하는 저 쪽 언덕으로 가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즉, 보시(普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등 여섯 가지 바라밀을 실천한다는 것이다.

 

① 보시(普施)바라밀 : 자기 소유물을 필요한 사람에게 베풀어 주는 자비를 뜻하고.

② 지계(持戒)바라밀 : 계율을 잘 지키는 것을 뜻하며.

③ 인욕(忍辱)바라밀 : 괴로움을 받아들여 참는 것이고.

④ 정진(精進)바라밀 : 부지런히 노력하여 방일(放逸)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⑤ 선정(禪定)바라밀 : 선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을 말하고.

⑥ 반야(般若)바라밀 : 여섯 바라밀 중 반야바라밀은 보시에서 선정에 이르는 다섯 바라밀의 주도자로, 그들의 성립 기반이며, 이것이 지혜바라밀(智慧波羅蜜)이다.

 

동양의 도가사상은, 도가사상을 형성 발전시켜 온 노자와 장자의 사상을 말한다. 도가사상은 춘추 전국 시대 형성되어 유학과 더불어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고 있고, 주변 국가와 역사 발전에 있어서도 커다란 영향을 주고 있다. 도가사상은 규범을 중시하고 예절을 강조하는 유교와는 달리 현실세계를 탈피하여,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특성을 가진다.

 

도가사상의 핵심은 무위자연이다. 무위자연이란 인위적인 가식과 위선에서 탈피하여 도의 흐름에 거스르지 않고, 본래 자기의 모습대로 살아가는 것을 강조한다. 즉 자연의 흐름에 내맡기는 삶을 살아가며, 도의 법칙에 어긋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땅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땅은 하늘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하늘은 도를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고, 도는 자연을 법칙삼아 어긋나지 않는다."라는 말은 세상 모든 물체의 근본인 도의 원리에 따라 생활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노자의 상선약수(上善若水)‘으뜸이 되는 선은 물과 같다.’는 노자의 무위 사상을 물의 성질에 비유한 말로, 물의 겸허(謙虛)함을 배우고 부쟁(不爭)의 덕을 이루라는 가르침인 것이다. 노자의 자연은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 가해지지 않은 본래의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노자에 의하면, 인간이란 다른 만물과 마찬가지로 본래 소박하고 순수한 자연의 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덕은 덕성을 가리키며, 덕성은 사물의 본성을 의미하며, 이러한 본성은 자연의 도(道)가 만물을 생성하고 순환시키는 데 작용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하늘의 덕, 땅의 덕, 인간의 덕 등으로 말하는데, 이는 천지만물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덕성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무위자연은 인간이 의욕하는 특정의 가치와 욕구와 인위적인 절제보다는 현실에 존재하는 자연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중시여기는 삶의 자세를 강조하게 됨으로써 자연과 하나가 되는 과정을 강조한다. 즉 사람의 인위가 더해지지 않은 자연그대로의 상태가 가장 바람직하고, 여기에 따라 자연스레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본 것이다. 근자에 모방송의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날씨가 추워지면 물은 얼음이라는 딱딱한 고체가 되어 자신을 전혀 다르게 변화시킨다. 물은 흐르지 않고 고이게 되면 썩기 마련이지만, 물이 얼음이 되면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도 전혀 썩지 않고 수 만년을 견디어내며 그 속의 모든 생물체까지도 보존된다. 인간도 모진 고난이 닥치면 일시적으로 움츠려드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본성을 얼음과 같은 냉철한 이성으로 감추고 있다가 어느 때에 이르면 다시 분수가 되어 힘차게 솟구치고 폭포가 되어 세찬 소리로 흐르는 존재이다.

하지만 그때를 기다리기엔 참고 견디기가 너무 어렵고 힘든 시기다.  사진출처 / 인터넷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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