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의 발자취와 풍경 시장의 발자취와 풍경. 우리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시장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찾는 핸드폰부터 죽어서 입는 수의까지 우리의 일상은 시장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
다시 피는 녹두꽃, 그 역사의 희망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본 민의의 발현 19세기 말 나라 안팎의 극심한 정치적 혼란은 백성[民]들의 삶을 도탄(塗炭)에 빠트렸다. 생존권을 위협 당한 백성들은 동학이라는 이름 아래 뜻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한다.
삼국, 역사의 현장 죽주산성을 오르다. 일죽 IC에서 빠져나와 안성시내로 향하는 길의 오른쪽에 죽산면 매산리가 있다. 여기에 비봉산이 있고, 비봉산을 등지고 서 있는 미륵불이 있는데 이것이 태평미륵이다. 이 태평미륵이 등을 기대고 서 있는 죽산(매산리)
봄바람 가득한 고대왕국 백제의 산성에 오르다 봄바람 가득한 고대왕국 백제의 산성에 오르다. 우리나라에는 산성이 특히 많다. 높고 낮은 산이 많은 까닭이다. 고대왕국 백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백제 후기 부흥과 패망의 역사가 교차하는 부여에는 평상시
넉넉하고 허허로운 절집 앞뒤 산봉우리가 두 개여서 붙여진 절집 '쌍봉사’ 날마다 빠듯한 일정이다. 숨 돌릴 겨를이 없다. 육신이 피곤하다. 마음도 허하다. 벌써 지쳐만 간다. 속박으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다. 몸과 마음이 자연스레 절집으로 향한다
고려의 건국과 전라도의 탄생 설화로 보는 전라도라는 이름이 있기까지의 이야기 고려경종, 성종 대에 이르러 전라북도 일대를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 일대를 해양도(海陽道)로 바꾸었다. 이윽고 현종 9년인 1018년에 강남도와 해양도를 합쳐
소백산, 퇴계를 만나 행복했네 40년을 기다린 만남 퇴계 이황의 「유소백산록」 이황의 소백산 유람은 명종 4년 1549년 4월, 그의 나이 49세 때였다. 퇴계는 그 전해 11월에 풍기군수가 되어 다음 해부터 백운동서원에서 강학하게 되면서 그
장신구, 꾸밈을 넘어 삶을 담다 장신구는 아름다움을 목적으로 몸을 치장하는 복식 생활문화의 정점에 있었기에 장식성과 실용성을 바탕으로 정치, 경제, 사회, 종교 등의 분야에서 두루 사용됐다. 일차적 욕구인 ‘자신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한 장식적
‘신선이 자고 있는 누각’ 진안 수선루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진안 수선루(鎭安 睡仙樓)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다. 진안 수선루는 숙종 12년(1686) 건립되고 고종 25년(1888)과 고종 29년(1892) 중수된 정자로, 자연 암반으로 형성
용을 품은 비색청자숟가락 용을 품은 비색청자숟가락버들잎 모양의 술잎(숟가락의 음식을 떠서 입에 넣는 부분) 바닥면에 한 마리 반룡(蟠龍)이 발톱 세 개가 달린 앞발을 힘차게 뻗고 있다. 맑은 국을 뜰 때면 내달리는 용의 형상이 빛에 굴절되며 더욱 기운생동
우리 민족의 긍지를 담다.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 고대 그리스 청동투구(古代 그리스 靑銅, 이하 청동투구)는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제전 경기 때 승리를 기원하기 위해 동합금으로 높이 22cm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기원전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
봄소식을 남 먼저 전하는 선암사仙巖寺의 늙은 매화 우수, 경칩을 지나면 탐매(探梅)꾼들의 마음이 바빠진다. 봄을 여는 향기를 남보다 먼저 즐기고자 언제 어디로 걸을음 나설지 궁리하느라 말이다. 탐매나 심매(尋梅) 행각은 예부터 격조 높은 봄맞이 행사[
나는 벼슬 있는 자로소이다 신분제의 상징이 된 의복 衣服 7세기 당(唐)의 태종이 정관연간에 통일 제국을 다스리고자 편찬케 한 『양서(梁書)』, 『진서(陳書)』,『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수서(隋書)』 가운데 『주서(周書)』에
衣冠整齊(의관정제) 조상들의 의복과 삶에 담긴 의미 의관정제(衣冠整齊).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의미를 잘 몰랐다. 이제야 의관정제가 격식에 맞게 ‘옷차림(衣服, 服飾)’을 갖추고, ‘바르게 행동함(操身)’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일생의
국보 제211호 백지묵서 묘법연화경 (白紙墨書 妙法蓮華經) 묘법연화경은 줄여서 ‘법화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법화경'은 부처가 되는 길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음을 기본사상으로 하는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