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이념을 담은 인성(人性) 교육기관‘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은 동아시아에서 성리학이 교류한 사실과 함께, 그 정신과 활동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성리학 이념을 담은 인성(人性) 교육기관‘한국의 서원

성리학 이념을 담은 인성( 人性) 교육기관‘한국의 서원’한국의 서원은 하나가 아닌 9개 서원이 함께 어우러진 연속 유산으로 이제는 ‘하나를 위한 아홉’이라는 인식을 모두가 가져야 한다. 한국의 서원은 동아시아에서 성리학이 교류한 사실과 함께, 그 정신과 활동이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전통교육의 정신과 유교 건축의 전형이라는 유·무형의 가치를 모두 지녔다. 그러므로 단순히 한 국가의 유산이 아니라, 세계유산으로서 전 세계가 공유하고 함께 보호하여 인류의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만한 의미가 있다.


01.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安東 陶山書院 典敎堂 안동 도산서원 강학공간 의 중심인 보물 제210호 전교당의 모습

02. 중국 백록동서원 白鹿洞書院 산발을 따라 조성된 백록동 서원은 예스러운 건물과 누각, 아담한 정원이 키 높이로 자란 고목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10년 노력의 결실,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목록 등재

2019년 7월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된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Seowon, Neo-confucian Academies in Korea)’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하기로 결정하였다. 발표 당일 각 서원을 대표하는 유림은 도포와 갓을 갖춰 입고 등장했는데, 이 장면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리고 등재 순간 만세를 부르고 전통예법에 따라 예를 올리는 모습에 세계인은 박수를 보내며 축하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이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 준다는 점이 인정된다”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등재 결정과 함께 등재 이후 9개 서원의 통합관리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하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09년 등재 추진 논의를 시작으로 2012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록한 후 2015년 등재신청서를 제출하였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하 이코모스)의 ‘반려(Defer)’ 의견에 따라 2016년 등재신청을 자진 철회하였다. 이후 2018년 1월 재신청과 이코모스 심사를 거쳐 2019년 7월 마침내 등재에 성공하였다. 한 차례의 고배와 10년 노력의 산물인 셈이다.

03.사현대 思賢臺 백록동.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현대, 그리고 그 아래에는 백록동을 상징하는 흰 사슴상이 있는 동굴이 있다.

04. 패방 백록동. 서원의 이 패방을 지나면 장원교(壯元橋)가 있고 그 뒤 정학지문(正學之門)을 지나 공자 사당이 있다.



한국의 서원 vs 중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당시 중국대표단에서 다음과 같은 지지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중국은 이코모스 권고와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목록 등재, 결정문 초안을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우리는 세계유산목록에 새로운 유산을 등재시킨 한국 대표단에 축하를 보냅니다. 중국어로는 ‘슈위안(서원)’으로 불리는 성리학 교육기관이 중국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한국의 서원 역시 16~17세기에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의 보급과 현지화에 기여한 중요한 장소입니다. 이러한 서원은 자연환경과 잘 조화되어 독자적인 건축설계를 발전시킴으로써 한국에서 성리학적 이상이 꽃피도록 도왔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목록 등재가 아시아 지역과 전 세계 국가들 간에 더 많은 문화교류를 위한 촉매제가 되어 세계유산목록의 성리학 유산이 더 잘 대표되기를 기원합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서원은 성리학을 정립한 주희(朱熹, 1130 ~1200)가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한국 서원은 조선 중기 향촌에 근거지를 둔 사림(士林)이 성리학을 연구하고 선현(先賢)을 기리기 위해 설립했다. 한국 서원과 중국 서원은 ‘서원(書院)’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했지만, 각자의 독특한 문화전통 속에서 교육의 내용과 성격을 달리하였다.

05. 도동서원 환주문과 담장. 도동서원은 환주문을 가운데 두고 양 옆으로 토담이 축조되어 있다. 사당, 강당과 함께 보물 제350호로 지정될 만큼, 도동서원의 담장은 맛깔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06.필암서원 확연루. 출입문 겸 외삼문인 고풍스런 확연루(廓然樓)의 모습. 앞에는 홍살문이 세워져 있다.



중국의 서원은 송대에 사학으로 시작해 성리학의 발전과 함께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을 목적으로 하였으나, 명·청대에 관학화되어 국가의 통제 아래 운영되었고, 관료 양성을 위한 과거시험 준비 기관으로 변모하였다. 학문의 영역 또한 다변화되어 주자학과 양명학, 고증학이 공존했다. 그러나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 소수서원 건립 이후 성리학을 중심으로, 사립교육기관(사학)의 성격을 유지하며 심신의 수양을 통한 인격 도야에 치중하였다.

그리고 중국과 한국의 유학교육에 대한 지향점에서 서원 기능과 제향 의식의 차이가 나타난다. 중국의 서원은 강학을 중심으로 한 교육 기능이 강했지만, 한국의 서원은 교육 기능과 함께 선현에 대한 제향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중국 서원이 기본적으로 공자를 포함해 유학과 관련된 인물을 제향하면서 시대적 변천에 따라 지역의 토속신이나 인물을 추가로 배향하고, 제향공간을 카테고리별로 확장해 별도 공간을 마련하지만, 한국의 서원은 공자가 아닌 선현을 제향하며 이러한 전통이 각기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현재까지 이어 오고 있다.

중국과 한국의 서원은 공간구조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중국의 서원은 장서(도서관)-강학-유식공간이 중심축이 되고, 제향공간은 부속시설의 하나로 강학공간 옆에 병렬로 위치하지만, 한국의 서원은 제향-강학-교류 및 유식공간의 위계적 정형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목록 중 중국의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 1996년 루산국립공원), 숭양서원(嵩陽書院, 2010년 덩펑역사기념물군), 남호서원(南湖書院, 2000년 안후이성 시디춘과 훙춘 전통마을)과 북한에 숭양서원(崧陽書院, 2013년 개성역사유적지구)이 세계유산목록으로 등재된 유산의 일부 요소로 서원이 포함되어 있다.

07. 만대루에서 바라본 병산서원. 만대루 2층 다락 누마루에 오르면 한쪽으로는 병산과 낙동강이 펼쳐지는 주변 풍광을 다 끌어안을 수 있고 다른 한쪽으로는 서원 일곽을 한눈에 살필 수 있다. 한국서원 누마루 건축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9개 서원으로 구성된 연속유산 ‘한국의 서원’
한국에 현존하는 서원은 약 600여 개다. 그 중에서 19세기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書院毁撤令)에 훼손되지 않은 47개 서원 중, 다시 일제강점기 및 6·25전쟁 등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유무형의 가치를 온전히 보존하고 있는 9개 서원을 등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9개 서원은 서원 건립 초기에 해당하는 16세기 중반부터 약 1세기간 건립되어 한국 서원의 교육과 건축 유형을 선도했으며, 제향, 강학 외 사림 활동의 본거지로 서원 기능이 확대되는 모습을 증명하고 있다. 9개 서원은 모두 사액서원으로 현재 국가 사적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사액서원이란 임금이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을 내린 서원으로 국가에서 인정한 사설 교육기관이라고 볼 수 있다.

9개로 구성된 한국의 서원은 다음과 같다. 영주 소수서원(紹修書院, 1543)은 우리나라 최초, 함양 남계서원(溪書院, 1552)은 향촌의 사림이 자발적으로 설립, 경주 옥산서원(玉山書院, 1573)은 출판과 장서의 중심 기구로서 역할, 안동 도산서원(陶山書院, 1574)은 학문과 학파의 중심 기구로 발전, 장성 필암서원(筆巖書院, 1590)은 동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시작된 서원 운동이 서남부지역까지 확산, 달성 도동서원(道東書院, 1605)은 서원 교육방식의 실천윤리와 학풍을 정착 및 발전,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 1613)은 교육과 함께 사림의 공론장으로 기능 확대, 정읍 무성서원(武城書院, 1615)은 사림이 향촌 교화 활동을 통해 성리학적 사회질서를 구축, 논산 돈암서원(遯巖書院, 1634)은 예학 논의의 산실로 각각 대표된다.
출처 / 문화재청  글, 사진. 박진재(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팀장)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