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계 도래인이 일본에서 꽃 피운 불교문화
일본 나라 현 동대사
동대사가 있는 나라는 710년부터 784년까지 약 70년 정도 잠깐 일본의 수도였다. 이후 수도를 교토로 옮겨 그곳에서 784년부터 메이지유신(1868년) 전까지 천백 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일본의 수도로써 천년의 고도 또는 뚜껑 없는 박물관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하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핵폭탄 투하지역 중 교토도 지목되었지만, 만약 교토에 핵을 투하하면 천 년의 역사 유적지를 하룻밤 사이에 잿더미로 만들어버리는 것은 너무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로 교토를 빼고 대신 큐슈 나가사키를 추가시켰다. 운명의 장난으로 결국 히로시마 이후 나가사키에 두 번째 핵이 떨어졌으며 버티기 작전으로 일관하던 일본은 결국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웃지 못할 해프닝 일본의 왕(일본에서는 천황이라고 부름)은 인간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사실 사람이 자신은 인간이라고 선언함에 실소가 나오지만, 일본에서는 왕을 신성시하며 신격화한다. 그리고 일본국민들은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책임이 일왕에게도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절대로 그들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한 시의원이 일왕에게 잘못이 있다고 발언했다가 우익단체에 의해 총을 맞는 사건까지 있었다. 그러니 일본인에게 일왕이라는 존재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일본의 수도 동경은 수도가 된 지 150년 조금 넘었는데 관동대지진(1923년 9월 1일 11시 58분)과 동일본대지진(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으로 인하여 도시 전체가 파괴되고 복구됨을 반복한 까닭에 사실상 동경엔 역사 문화재가 많이 남아있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이 일본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느끼고 싶어 교토를 찾고 있다. 거기다 지리적 특성상 나라와 오사카가 붙어있어 3개의 관광 거점도시를 한 번에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나라 현은 상업의 도시 오사카의 위성도시이며 현청 소재지는 나라 시이다. 나라 현 인구 130만 명, 나라 시 인구 36만 명. 연간 나라를 방문하는 관광객은 1300만 명 정도로 나라현 인구대비 관광객 약 10배, 나라 시 인구대비 관광객 약 36배에 이른다. 유럽에 로마나 프랑스와 같이 관광으로 먹고사는 곳이 이곳 나라이다. 또한,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고대 나라의 역사기념물’로 등록되었다. 우리나라 순우리말 국가를 뜻하는 이름 ‘나라’는 고구려, 신라, 백제 삼국시대의 영향으로 세워진 일본 최초의 국가이다. 불교문화가 지배적인 이곳은 다른 어느 곳보다 불교와 관련된 사찰과 유적지가 많으며 당나라 수도 장안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진 거대한 수도였다.
사슴공원(나라공원) 안에 동대사가 있으며 이곳에 사슴은 사슴의 탈을 쓴 개로 보면 된다. 가끔 사람을 공격하니 사슴이 예쁘다고 무턱대고 만지고 먹이를 주었다간 공격을 당할 수 있다. 그래도 다행히 사슴에 이빨이 없어 사람을 해치지는 않는다. 일본의 신화 중 신이 사슴을 타고 내려왔다고 해서 이 사슴이 신격화되어 옛날 에도막부 시대(1600년~1867년) 때는 정부의 적극적인 사슴보호로 사슴을 죽이면 처형까지 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사슴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어서 개 팔자가 상팔자라는 말이 있듯이 이곳에 사슴 팔자는 상팔자다. 1880년 동서로 약 4km 남북으로 약 2km 정도의 넓은 지역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에 사슴 수는 약 1,200마리 정도 서식하고 있다.
동대사 입구엔 남대문이라는 커다란 정문이 있고 남대문에서 동대사로 가는 길목이 있는데 그 가운데 바닥에 깔린 검은색 돌로 난 길이 인도의 승려길, 바로 그 옆에 깔린 길은 중국의 승려, 그리고 그 옆에 다른 무늬로 깔린 돌의 길은 신라의 승려. 그리고 맨 끝에 깔린 돌은 일본의 승려가 다니던 길목으로 큰 법요 때 여러 나라의 승려를 초청해서 나아간 행차 길이다. 동대사는 752년에 완공되었는데 높이가 무려 50m 정도 되는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이다. 두 번의 화재로 소실되어 1709년 현재 모습으로 재건되었지만 복원된 건물은 원래 규모 2/3 크기에 불과하다. 당시 나라 현의 모든 인구와 돈을 동대사에 전부 투자해서 세계 최대 규모의 목조건물을 짓는데 성공했지만 구멍이 난 재정에 나라를 끝까지 수도로 지키는 데는 실패했다.
동대사 대불전으로 들어가면 일본 최대 청동 좌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대불상의 높이는 16.2m 무게는 452톤이다. 불상의 한쪽 손바닥에 어른 16명이 올라갈 수 있으니 실로 엄청난 크기이다. 동대사에 불상을 보고 있으면 우리나라 경주에 있는 불국사가 생각이 난다. 일본의 동대사와 우리나라 불국사에 있는 불상은 쌍둥이 닮은꼴인데 이것은 인력과 기술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두 곳 모두 화엄종 총본산으로 자매결연까지 맺었다. 동대사에서 불국사의 설계도면이 발견된 사실을 비춰보았을 때 동대사를 완공하고 이어서 우리나라 불국사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동대사가 752년에 완공되었고, 불국사는 신라 김대성에 의해 751년 조성을 시작하여 774년에 완공되었다. 과거 일본과 우리나라는 불교라는 종교로 화친을 유지하고 공유하며 형제처럼 지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대불전을 둘러보고 나와 출입구로 나가면 왼쪽에 이월당과 삼월당으로 가는 길목이 있다. 동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 747년에 완성된 삼월당으로 정식명칭은 법화당이다. 동대사의 가장 기초가 된 곳이다. 료벤(良弁)스님은 동대사 첫 번째 주지 스님으로 동대사에 기초를 닦은 분이다. 로벤스님에 대한 전설이 하나 있는데 두 살 때 납치를 당해 버려져 발견된 장소가 이월당 앞에 있는 료벤스기(杉木)라는 삼나무이다. 그는 삼나무를 자신의 부모라고 생각해서 매일 참배했고 그 소문을 들은 어머니가 약 30년 동안 찾아 헤매던 잃어버린 아들을 이 삼나무 아래에서 재회했다고 한다. 또한, 행기스님은 현재까지도 일본에서 보살로 추앙받고 있으며 왕성한 포교활동으로 사회제반 시설인 고아원과 절 등을 건립해서 민중에 도움을 준 영웅으로 그의 제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그래서 당시의 야마토 정권의 성무천황은 권력에 위기를 느껴서 행기스팀을 탄압하고 옥에 가두었지만 결국 그의 대중성과 능력을 인정해 승려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위 대승정까지 오르게 되었다. 그는 민중들에게 불사를 권해서 협력하도록 하여 동대사 건립에 총사령관 역할을 했다.
이렇게 훌륭한 업적을 남긴 동대사에 두 명의 스님이 모두 백제계 도래인이다. 이러한 우리의 뛰어난 선조들이 다른 나라를 건너가 도래인이 되어 찬란한 불교의 역사를 꽃피웠다. 유행은 돌고 돈다. 마찬가지로 문화도 돌고 돈다. 타국의 문화와 역사가 돌고 돌아서 자국의 문화와 역사를 꽃피우게 할 수 있다. 무조건 일본이라고 배척하고 거들떠보지도 않는 도도한 선비 정신을 유지했다간 과거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당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암흑기였던 가슴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아끼고 사랑해서 지키고 보존하고 미래에 후대에까지 계승해야 한다.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에서 돈이 되는 값어치 있는 것은 다 빼앗아 가져갔던 것처럼 우리나라도 타국의 선진 기술과 선진 문명 좋은 것은 배척하지 않고 다 가져와서 우리나라의 부국강병을 이룩해야 한다. 나라가 부자가 되고 병사가 강해지면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만만한 침략 대상국이 될 수 없다.
우리나라 도래인이 일본으로 건너가 불교에 화려한 꽃을 피워서 후손인 나라의 시민들이 그 유적지를 관광 도시화해서 경제적 번영을 이루게 된 것처럼 일련정종이 우리나라에서 성공적으로 전파되어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을 구제하고 나아가 한국사회에 도움을 주는 훌륭한 종파로 성장했으면 한다. 일련정종이 한국사회에서 일본 종교로 비춰지는 따갑고 차가운 시선 속에 우리나라 안에서 결실을 맺어 꽃을 피워서 한국에 부국강병에 기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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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