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을 품고 있는 옛 길 17

경상감영에서 전라감영으로 이동할 때 넘었던 팔량재길

사연을 품고 있는 옛 길 17

경상감영에서 전라감영으로 이동할 때 넘었던 팔량재길

팔량재는 전라북도 남원시 인월면 성산리와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사이에 있는 해발 513m의 고개이다. 소백산맥의 연비산(鳶飛山, 843m)과 그 남쪽의 삼봉산(三峰山, 1,187m)과의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팔령(八嶺)이라 불리기도 한다. 고갯마루에 있는 함양군의 마을 이름은 팔령이다. 전라북도 남원시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으로 이어지는 국도 제24호선이 통과한다. 국도 제24호선의 도로명은 팔량재를 경계로 나뉜다. 남원시 구간의 도로명은 황산로이고, 함양군 구간의 도로명은 함양로이다.


                                                                                     대동여 지도



팔량재 고개 정상부인 성산리에는 흥부전에서 흥부의 출생지로 알려진 흥부 마을과 흥부 소공원이 있다. 흥부의 고향으로 추정하는 첫 번째 근거가 판소리 흥보가 중 제비노정기다. 연재(女院峙, 여원치)를 넘어 비전을 지나 팔량재 밑에 당도, 흥보집을 빙빙 돌더니 저 제비 거동 보소라는 대목이다. 여원치(477m)는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고개이고, 팔량재 부근마을이다. 옛 운봉현은 형장 터가 있던 곳으로 성리에서 2㎞, 가난에 찌든 흥부가 매품을 팔았던 곳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흥보가 중 ‘전라도는 운봉이요, 경상도는 함양이라 운봉, 함양 두 얼품(두 지역이 맞닿은 곳)에 흥보가 사는지라’ 대목도 나온다. 남원시 아영면은 함양군 백전면과 경계다.


                                                                                    팔령산성                



이 고개는 천연적 요새를 형성해 일찍부터 군사상 요지로 기능했다. 신라시대에 쌓은 성의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남원시와 함양군의 경계부에 있는 성의 이름은 팔령산성이다. 현재 성벽은 대부분 무너졌으나 서북쪽의 일부 성벽은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다. 성 둘레는 약 500m에 달하며 넒이는 약 2,000여평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3m 정도이다. 팔령산성은 고려 말기와 임진왜란 때 왜군이 경상도 함양의 사근산성을 함락시키고 팔량재를 지나 운봉으로 진출하고자 할 때, 우리 군이 왜군을 격파한 곳이다. 팔령산성은 경상남도 기념물 제172호이다. 서쪽에는 성의 밖에서 안으로 오목하게 쌓아 올린 서문지(西門址)가 남아 있다. 성 안 일부는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남쪽은 소나무와 전나무숲으로 덮여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학자인 이중환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그 당시의 통행량을 참고해 팔량재를 죽령, 육십령, 조령과 함께 대재(大嶺)로 분류했다. 팔량재는 옛날부터 전라북도 동남부의 산간지대와 경상남도 서북부의 산간지대를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였다. 조선시대에는 팔량관(八良關)이 설치되어 동서를 오가는 사람과 물자를 통제하는 관문으로 기능했다. 조선시대에 공공업무를 위해 이용되던 역로에서는 사근도(沙斤道)의 한 구간에 포함되었다. 사근도는 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던 사근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역로이다. 수동면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면 함양읍에 도달하고 함양읍에서 국도 제24호선을 따라 팔량재로 이어진다.

함양군 함양읍 죽림리 내곡마을 근처에는 원촌이라는 마을이 있다. 원촌 마을 근처에는 주막골이 있다. 주막골은 원이 폐쇄된 뒤 여행객들을 위해 운영한 술막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덕신원(德信院)이 있었다.

경상감영이 있던 대구에서 전라감영이 있던 지금의 전라남도로 갈 때 팔량재를 넘어 이동했다. 지금은 팔량재의 옛길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국도 제24호선이 팔량재 옛길을 그대로 통과하기 때문이다.

원촌에서 함양 방면으로 조금 이동하면 국도 제24호선과 지방도 제1023호선이 만나는 곳의 남쪽에 지안 마을이 있다. 지안 마을에는 조선시대에 제한역(蹄閑驛)이 있었다. 제한역은 사근도에 속했던 역이다. 지안 마을의 남쪽으로는 지안재를 넘어 함양군 마천면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제한역은 남원에서 여원재와 팔량재를 넘어 함양으로 이어지는 오수도와 사근도의 결절점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오수도는 지금의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에 있던 오수역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역로이다.

팔량치의 북쪽으로 88올림픽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지리산 I.C.를 통해 인월로 연결되어 지리산을 찾는 주요한 교통로가 되고 있으며 소백산맥을 횡단하여 영남·호남의 교류가 원활하여졌다. 24번 국도는 동쪽으로 함양을 거쳐 대전∼진주간 고속도로에 직접 연결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뱀사골을 거쳐 전라남도의 구례로 연결되는 지리산을 통과하는 주요한 접근로로서 팔량치를 통과하는 국도는 여전히 그 구실이 크다. 팔량치 주변은 흥부 출생지, 전적지 피바위가 유명하며, 고랭지 채소, 감자, 흑돼지, 농공단지, 목기, 도자기, 유흥업, 음식업, 숙박업, 재래시장 등이 위치하고 있다.

팔량재는 팔랑치로 인식되기도 하는데, 이는 정확한 위치 정보가 아니다. 팔랑치라 불리는 고개는 지금의 팔량재에서 남쪽으로 산줄기를 따라 내려가면 바래봉의 남쪽에서 만날 수 있다. 팔랑치의 동쪽 남원시 산내면 기슭에는 팔랑이라는 마을이 있다. 삼한시대에 마한의 왕이 지리산 깊은 산속으로 피난하면서 지리산 기슭 남원시 산내면의 달궁에 궁전을 세우고 사방으로 적이 넘어오기 쉬운 고갯길마다 수비군을 세웠다. 북쪽 능선에는 8명의 장군을 배치했다고 해서 팔랑치(八郞峙)라는 이름이 생겨났다. 팔랑치는 팔령치라 불리기도 한다.      이미지 네이버캡쳐

<저작권자 ⓒ 한국역사문화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