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을 일으켜 세우다

당간은 그 규모나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외관이 솟대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성한 구역을 나타내는 솟대와 같이 사찰의 경계에 높이 세웠다. 사찰 입구에 세워서 불법 수호의 상징물로 발전을 한 것이다.

당간지주(幢竿支柱), 돌을 일으켜 세우다

사찰 부근에 우뚝 서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쉽게 눈길이 가지 않는 곳이다. 당간은 그 규모나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전체적인 외관이 솟대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신성한 구역을 나타내는 솟대와 같이 사찰의 경계에 높이 세웠다. 사찰 입구에 세워서 불법 수호의 상징물로 발전을 한 것이다. 당을 걸어 일종의 장엄. 장식. 경계 및 상징적 의미로 건립이 되었다. 그리고 각 사찰의 사격과 종파적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 표현 방식이었다. 또한 의식과 행사 때에 당을 내다걸어 알리고 예불하는 한가지의 종류에 속한다고 본다.

* 당간지주(幢竿支柱) : 당(幢: 불화를 그린 기)을 걸던 당간을 지탱하기 위하여 당간 좌·우에 세우는 기둥.

* 당간(幢竿) : 당(幢)을 달아두는 장대.
찰간刹竿, 번간幡竿, 범장帆檣이라고도 한다.

당과 당간의 기원과 명칭을 밝히는데 있어서 주목해야 할 것은 깃발과 같은 형태뿐만 아니라 다양한 형식으로 불전을 장엄했던 번이다.

번(幡)은 범어로 Pataka의 한역으로 파다가(波多迦)이다. 여기서 말하는 번은 모든 깃발의 통칭으로 불보살의 위신과 공덕을 표현하는 장엄구이다. 일반적으로 그 표면에 불화가 그려지는데 깃발은 번, 회번(繪幡), 당번(幢幡)으로 통칭된다. 번은 개(蓋) 또는 당과 함께 불보살에게 올리는 장엄 공양으로 사용되었다.

당은 범어로 Dhvaja 또는 Keyu의 한역이며 태박약(駄縛若) 또는 계도(計都)로 음역이 된다. 그리고 보당(寶幢), 법당(法幢), 천당(天幢)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당은 절의 문앞에 세우는 깃발의 일종으로 불보살의 장엄에 일찍부터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깃발과 같았던 번은 고대 인도에서 왕이나 장군 또는 어떤 집단의 소속을 밝히고 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이 불교로 들어오면서 불가에서도 번의 형식이나 기능을 모방한 것으로 본다. 이후 인도에서 주로 불전을 장엄하였지만 번은 불교의 전파와 함께 중국으로 들어오고 한역되는 과정에서 군대의 지휘나 부대의 소속을 표시한 당과 유사함으로 인하여 당으로 번역돤 것이 아닌가 한다. 이에 따라 번 또는 당이 혼용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번은 주로 불전을 장엄하거나 또는 의식이나 행사 때 사찰을 장엄하기 위한 깃발과 같은 형태를 지칭하며 당은 별도의 조형물을 세워 그 정상부에 달았던 것으로 번보다 대형의 깃발을 의미한다. 즉 번과 당은 명확한 구분과 명칭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깃발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된 경우는 번이나 당은 재료나 형태, 용도에 따라 번, 당, 번개(幡蓋), 소번(小幡)등이 나온다.

당간에 대한 인식과 그 재료에 따라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었다. 즉 당, 당간, 철당, 석당, 석장(石檣), 동장(銅檣)등이다. 중국에서는 번찰(幡刹) 또는 번간지주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용어의 혼란은 당간과 당간지주의 정확한 명칭이 전래되지 않은 이유도 있지만 당간의 꼭대기에 달았던 깃발이 번과 당으로 혼용된 것에 기인한다. 두 지주 사이에 세우는 조형물도 당간 또는 철간으로 혼용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당간지주와 당간으로 정착이 되었다.

공주갑사 철당간(보물256호)

청주 용두사 철당간지주(국보41호)

보은 법주사 철당간지주

나주 동문밖 석당간지주 (보물 49호)

담양 읍내리 석당간지주 (보물 505호)

안성 칠장사 철당간지주(경기유형문화재 39호)

영광 단주리 석당간지주 (전남유형문화재 153호)

부안 서외리 석당간지주 (전북유형문화재 59호)


우리 나라애 남아 있는 당간지주는 대략 82기로 주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초까지 전국 대부분의 사찰에서 건립이 되었다. 그리고 당간과 지주를 함께 갖춘 것이 8기 정도 남아 있다. 공주 갑사 철당간지주(보물 256호), 청주 용두사 철당간지주, 보은 법주사 철당간지주, 나주 동문밖 석당간지주, 담양 읍내리 석당간지주, 안성 칠장사 철당간지주, 영광 단주리 석당간지주, 부안 서외리 석당간지주 등이 있다.

그리고 분황사 당간지주에는 간대석이 귀부형식으로 남아있다. 많이 파손되고 마모가 심하지만 독특한 수법으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경주 보문동 당간지주는 일부만 지표면 위로 나와있고 나머지는 깊게 매몰 되었는 것으로 보인다. 각 면을 정교하고 화려하게 다듬었다. 그리고 좌우에 연화문을 양각하였는데 통일 산라시대에 제작한 연화문 수막새나 각종 연화문 대석에 새겨진 문양과 매우 흡사하다.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당간지주를 좀 더 가까이 다가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이미지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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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상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