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각스님과 이동현 목사, 프란치스코 교황

현각스님과 이동현 목사, 프란치스코 교황


어제 낮 경북 의성의 최고기온이 37.8도를 기록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더웠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의 태국이나 베트남의 8월 낮 기온도 이쯤 되는데, 거기는 하루에 몇 번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열기를 식힌다. 부천의 밤 12시의 기온은 29도. 열대야가 2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요즘은 수건으로 감싼 얼린 아이스팩을 껴안고 잔다. 열기를 꽤 식혀준다. 아무튼 몸의 적응력은 놀랍다. 오늘은 어젯밤보다 견딜만하다. 재앙에 가까운 날씨에도 어떻게든 견뎌내어 생존해내야 한다는, 생명 유지를 위한 어떤 메커니즘이 작동한 게 아닐까.

한 집단의 변화는 몸처럼 가뿐하지 않다.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정치가 작동하는 탓에 변화에 대한 감수성, 변화의 필요성과 시기, 방향, 방법을 놓고 갑론을박하기 마련이다. 이런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우며, 역사의 물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지난 주 종교계의 이슈를 압축하는 이름은 현각스님과 이동현 목사,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이들의 이름이 한국종교의 오늘의 역사에 작용하고 있다.


현각스님의 조계종의 기복, 전근대성 비판에 대한 논란이 이어졌다. 비판을 받아들여 종단 쇄신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바람은 쉬 이뤄지기 어려운 분위기로 흐르는 것 같다. 비판조차 단죄되는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조계종에 대한 비판은 애종‧애불이 아니라 ‘해종’으로 매도되는 무너진 ‘터널’의 시기.

현각스님

비판을 두려워하여 아예 입을 틀어막는 권력자의 횡포는 자신은 물론 주변의 인물들을 간신배로 만들며, 나아가 그 집단의 지성의 작동을 멈추게 한다. 지성의 불모지가 된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앙드레 지드가 스탈린 독재치하의 숙청을 목도하고, 갓난애를 씻은 물이 더럽다하여 그 물과 함께 애기까지 버린 것 같다고 논평한 것처럼, 폐허가 된다.

이동현 목사는 오래 전 여고생을 협박해 성관계를 맺은 사실이 폭로되자 사죄하고 자신이 설립한 청소년단체의 대표에서 물러났다. 또 신학대 교수와 여제자와의 위계적인 성관계 의혹이 제기되면서 개신교계의 추문 폭로가 확대되고 있다. 개신교계에 자리잡았던 하나의 금기가 허물어지는 계기가 될 것인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성 부제 임명을 위한 연구위원회를 설치했다. 여성의 부제 활동은 교리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의 선택이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천주교 내의 여성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325년 열렸던 이케아 공의회의 결의에 의해 여성 부제는 금지되었다. 1700년만에 여성 부제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견고한 남성중심주의가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은 국제장상연합회 총회에 참석해 여성 부제를 연구할 공식 위원회를 만들자는 제안에 대해 “좋다고 생각되네요”라며 동의했다. 그러면서 위원회에 여성이 꼭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데 그 말이 인상적이다. “내가 보기에는 결정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집행뿐 아니라 결정, 즉 여성이 수도자든 평신도든 간에 의사결정 과정에 포함되어야 제대로 된 결정이 나온다.… 왜냐하면 여성은 진실의 눈으로 삶을 본다. 우리는(남자들은) 그렇게 볼 수가 없다. 문제를 보는 방식, 사물을 보는 방식이 남성과 다르다. 서로 보완해야 한다. 의견을 모을 때 여성이 포함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세 사람의 움직임에 대한 세 종교의 책임 있는 기득권의 반응이 각각 다르다. 현각스님의 비판에 대해 조계종의 책임 있는 지위에 있는 이들은 말이 없다. 이동현 목사 사태를 접한 개신교계의 기득권도 말이 없는 가운데 개혁세력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득권이면서도 앞장서서 개혁을 열어가고 있다. 세 이름이 함축하고 있는 현상과 이에 대한 대응은 이후의 한국 종교지형의 변화를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도 있다.

기사출처 불교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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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문 기자 다른기사보기